9월 292002
 
제목은 모처에 있던 조금 다메한 내용의 대화에서 인용. 그 대화내용과는 별 관계 없지만..

어쨌든 동원 예비군 훈련이란 것을 받고 왔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생 예비군 훈련을 받았었고 올해가 4년차이기에 최초이자 최후의 동원 훈련인 셈입니다. 참고로 군 미필자 내지 여성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예비군이란 육군의 경우 26개월,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나라를 위해 뼈빠지게 혹사한 장정들을 전역 이후에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고 1년에 일정 기간을 끌어내어 다시 고생시키는 악랄한 제도인 겁니다. 그래도 군대에서 떠난지 꽤 되는 사회인들이고 다들 자기 생활 있는 사람들이라 현역들처럼 군기를 엄격히 다스린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굉장히 널럴하게 놀다오는 편입니다만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적어보겠습니다.

8월 29일(월)

새벽 7시경 안양 공설운동장에 도착하다. 많은 예비역들이 모여있었고 대절한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배가 고파 인근의 LG25에서 삼각김밥 두 개와 음료수를 사먹었는데 알고 보니 예비역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눠주고있다는 엄청난 삽질로 시작한 하루였다. 덤으로 말하자면 그때 먹은 빵과 음료수는 지난 4일간 먹은 식사 중 가장 맛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어쨌든 들어가니까 PCS소지자는 맡겨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맡겨둔다면 예비역이 아니다! 라는 심정으로 그냥 갖고들어갔더니 수신상태가 매우 불량해서 안 터지는 지역이었다 젠장. 심심하면 전화나 하면서 노닥거리려던 계획 무산. 그래도 011이나 017은 잘 터지는 걸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최근의 카이카드의 서비스가 너무나 충실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입소식. 무려 완전군장을 메고 했다. 간만에 저런 걸 메고 서있으려니 그날 하루종일 어깨 욱신거려 죽는줄 알았다. 어쨌든 첫날 일과를 그럭저럭 마치고 밥을 먹어보니 눈물나게 맛없었다. 현역시절 부대밥은 물론 논산훈련소 밥만도 못했다. 게다가 간만에 전투화를 신고 다니니까 발뒷꿈치가 까져서 쓰라리고 욱신거리는 게 심상치가 않았다. 여러모로 고생의 조짐이 보이는 하루였음.

덤으로 말하자면 무려 PX병이 대학 후배(같은 학번이긴 해도 나이차는 꽤 나는..;)였다. 어쨌든 세상은 좁다.

8월 27일(화)

둘째날.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내심 실내교육으로 끝내길 바라며 좋아했지만 일과시간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그치는 비. 그러나 교육집합을 하고 나니 다시 폭우. 하루종일 저런 과정을 반복하며 대강 비를 피할 만한 곳에 들어가서 하루를 보냈음. 아침식사때 우유가 나오는데 밥이 너무나 맛없어서 그런지 그 200ml짜리 서울우유가 천하의 진미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후쯤 발뒷꿈치가 아파서 도저히 전투화를 신고는 정상적인 보행이 곤란해져서 운동화를 신고 다니기 시작. 조금 살만해짐. 저녁이 되서 전화나 걸어보려고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리면서 그 부대에 주둔하고있는 어떤 병장과 노닥거렸는데 부대 내에서 전화가 잘 터지는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어디 주차장, 테니스장 뒤, 어디 산 위 등등등. 그리고 막사 3층의 어떤 지점에서 외계인과 교신하는 자세로 PCS를 치켜들면 터지더라 등등. 예비군들이 들고다니는 PCS가 잘 터지는 지역까지 샅샅이 파악하고있는 걸 보니 역시 병장 짬밥이란 다르구나 하고 생각.

8월 28일(수)

아침에 안개가 끼었다. 날씨 덥겠구나 하고 직감.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어쨌든 점호를 하는데 국군도수체조는 그렇다 치는데 무려 ‘구보’를 시키는 것이었다. 제대로 뛸 리가 만무한 예비역들. 일부 인원이 중간에 샛길로 빠지는데 이를 어떤 중위가 잡으려 했으나 놀라운 속도로 멀찌감치 빠져있어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샛길이 있음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불찰을 탓하며 풀코스를 다 돌았다. 아침식사때 전날 PX에서 사둔 참치를 뜯어먹었는데 이 참치마저 더럽게 맛없었다. 실망이다 사조 바베큐맛 참치. 역시 동원이 최고란 말인가..-_-

어쨌든 오늘의 일과는 전투준비태세 후 집결지 이동 및 소산 어쩌고. 군장을 쌌지만 당연히 무게 나가는 야삽과 수통 등은 분리하려고 했으나 군장검사까지 한다. 군장검사때만 달아놓고 끝나자마자 다시 분리. 그상태로 집합했고 또 군장검사. 그러나 배째고 버텨서 그냥 넘어갔다. -_- 오전은 그리하여 부대 뒷쪽의 공터에 짱박혀서 넘어갔지만 문제는 오후였다. 군장을 메고 부대 밖의 어디론가로 가서 집결하는데 무려 ‘행군대형’으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걸어가는데 끝이 없다. 행군이 따로 없었다..T.T 게다가 마지막엔 그 완전군장을 메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죽을맛이었다. 줄잡아 4~5km는 걸어간 느낌이었음. 어쨌든 들어오자마자 샤워하고 땀냄새나는 군복 다시입기 싫어서 저녁식사집합도 안 했지만 어쨌든 야간교육이 있었기에 그 옷도 다시 입어야했다.

8월 27일(목)

마지막날. 역시 날은 맑았고 구보를 시키려 했으나 이제는 시작하기 전에 미리 열외해버렸다. 무슨 예비역들 데리고 다니면서 사사건건 FM으로 하려고드는데 피곤해 죽는줄 알았음. 적절히 요령껏 째긴 했지만 피곤한 3박4일간이었다. 오전엔 정신교육만으로 끝내고 교통비와 소집 필증을 수령받은 후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옴.

이걸로 최초이자 최후의 동원훈련이 끝났다. 내년부터 5년차에 들어가기에 아마도 향방쪽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직 예비군의 악몽은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다. 너덜너덜해진 발뒷꿈치는 정상적인 보행을 가로막으며 아직도 날 괴롭히고있다. 어찌됐든 끝내고 나니 속편하다.

1. Rm :….그러게 예비군 훈련에 관해서는 전문가에 묻고 가야지.. [08/29]
2. Starless :참고로 말하자면 밤 9시까지 FM으로 전부 교육함..-_- [08/29]
3. 룬 :……끝없는 삽질의 연속이었군 (…..-_-;) [08/30]
4. 김안전 :그래도 그부대 예산이 좋군요. 우리는 기껏해야 계란에 요구르트인데… [09/02]
5. Synodia :….인재의 국가적 손실이라는 기분이 드는군요 -_-;;; [09/08]
6. 룬 :저건 “인재의 국가적 손실” 이 아니고 인재의 “육체적 정신적 고문” 인 겁니다. –;;; [09/09]
7. m괴인 :요즘엔 동원이 이렇게도 하나요? 2년전까지 동원받을때는 잠자느라 목아픈게 제일 힘든 시련이었는데…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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