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003
 
세가가 변하고 있다. 세가 엔터프라이제스라는 회사명은 1960년대 쥬크박스 제조업체였던 Service and Games사와 볼링장 경영을 하고 있던 로젠 엔터프라이제스라는 회사가 합병하면서 생긴 명칭이다. 쥬크박스는 게임기, 볼링장은 어뮤즈먼트 테마파크에 비유될 수 있으며 이는 항상 세가의 주력 사업이었고 그동안 세가는 초기의 취지를 그대로 충실히 따라간 의외로 전통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세가는 1983년에 8비트 게임기 SG-1000을 발매하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뛰어든 이래 세가 마스터 시스템, 메가 드라이브, 세가새턴을 거쳐 지금의 드림캐스트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관여해왔다. 그러나 언제나 업소용 게임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을 선보이며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는 메가드라이브시절까지는 닌텐도에게 밀리더니 세가새턴 이후로는 후발주자인 소니에게 크게 역전당하고 드림캐스트에 이르러서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언제나 게임기 시장에서는 2인자였던 세가, 그러나 그 세가를 지지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세가의 게임들에 매료되어 세가의 게임을 선호하게 된 일부의 열렬한 매니어층으로 인해 세가는 매니악한 제작사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러한 매니어들에게 힘입어 Nec의 PC-FX, 마츠시타의 3DO, FM-Towns Marty 등의 게임기들이 사장되어 가는 가운데에서도 계속 자체적인 게임기를 개발, 보유하면서 그 소프트를 개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세가의 저력에 대한 놀라움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세가는 얼마전 회사의 정식 명칭을 ‘세가’ 로 변경하였다.
세가의 전 사장이었던 이리마지리 쇼이치로(入交昭一郞)씨는 원래 혼다 기술 연구 공업의 전무와 부사장을 역임해 한 때 사장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1993년 6월 세가로 옮겨와서 98년 2월에 사장에 취임했었다. 그는 이전에는 게임이라는 것을 우습게 여겼으나 최초로 세가 본사를 방문했을 당시 스즈키 유가 권유해서 버츄어 레이싱의 테스트 기체를 타보고 나서 인식을 바꾸고 게임업계라는 것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고 사장 취임 당시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세가 사장 재직 당시에도 드림캐스트 홍보, 비바리움사를 끌어들여서 시맨을 발매하는 등 여러 가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3년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위기에 처한 회사의 경영실적을 고려해보면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경영이 부진하자 부회장으로 물러나고 실질적인 CSK그룹의 총수인 오카와 이사오(大川 功)회장이 직접 세가의 사장을 겸임하면서 진두지휘에 나섰다. 한편으로 세가측은 이리마지리 전 사장은 부회장직에 취임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게임기와 어뮤즈먼트사업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고속 통신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지휘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오카와 이사오 사장은 이전부터 네트웍과 정보화산업에 대해 상당히 중요성을 역설해왔으며 실제로 자신의 포켓머니 15억엔을 들여 전 직원에게 PC를 나누어줬다는 일화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세가에서는 옛날 메가드라이브시절부터 메가모뎀을 통해 네트웍 게임을 공급했던 전례가 있고 이번에 드림캐스트에서도 가정용게임기 사상 최초로 모뎀을 내장하고 나와서 네트웍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는 점은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카와 사장은 앞으로 세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네트웍 사업에 중점적으로 두고 있고 그 일환으로 행해진 것이 주식회사 세가 CSK그룹의 네트웍 프로바이더인 주식회사 ISAO(Interactive Services for Amusement Online)의 창립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sega.com(세가닷컴), 유럽쪽에서는 드림 애리너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드림캐스트를 단말기로 사용해서 학교와 가정을 네트웍으로 연결하는 기획을 추진중이며 기존의 모뎀의 느린 속도를 극복하기 위해 드림캐스트용 케이블 모뎀을 개발하여 CATV회선을 이용한 고속 통신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세가의 네트웍에 대한 움직임은 일본이 네트웍 보급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가가 일본 내에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제패하는데 실패하고 계속적인 경영부진이 잇따르자 이제는 경쟁 업체를 따라잡기보다는 아예 독자적인 차별화 노선을 걷겠다는 생각과 오카와사장의 네트웍 사업에 대한 높은 열의가 맞물려 일어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네트워크화를 대변하는 게임이 바로 환타지 스타 온 라인이다. 세가 브랜드 RPG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환타지스타 시리즈는 메가드라이브로 나왔던 ‘환타지스타 – 천년기의 끝으로’에서 완결이 난 상태였지만 인터넷 서명운동 등 팬들의 꾸준한 후속편 발매 요구가 있었고 거기에 부응함과 동시에 세가의 네트웍 사업의 일환으로서 행해지는 것이 환타지 스타 온 라인의 발매인 것이다. 이미 전뇌전기 버츄어 온 오라토리오 탱그램 등으로 드림캐스트를 통해 네트웍 대전을 실시해오긴 했지만 가정용 게임기에서 본격적인 온라인 머드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획기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2001년 3월까지 드림 캐스트용의 네트웍 게임을 70타이틀 이상 발매하겠다고 발표한 바가 있으며 세가가 운영하는 게임센터 사이를 광섬유로 연결, 게임센터와 다른 지점의 게임센터, 혹은 인터넷을 통해 드림캐스트 유저와의 대전을 펼치는 것도 가능해지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네트웍 사업과 더불어 오카와 사장 취임 이후 주목할만한 움직임이라면 역시 세가의 개발부서들이 9개의 자회사로 분할된다는 것이다. 세가에는 스즈키 유와 버츄어 파이터, 쉔무 등으로 유명한 AM2연구소, 나카 유지(中 裕司)의 소닉팀, 전뇌전기 버츄어 온과 세가랠리 챔피언쉽 등으로 잘 알려진 AM3 등 여러 개의 개발부서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들 하나 하나가 각자 고유의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 각자의 개발력 또한 일본 유수의 제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다. 세가가 가정용 게임기시장에서 여태까지 견뎌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들 개발팀들이 만들어내는 뛰어난 수준의 게임들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중 AM2를 제외한 다른 개발부서를 자회사로 독립시킨다는 것은 세가로서는 일종의 자구책에 해당된다. 아직 100% 세가 출자, 기자재도 세가로부터 대여, 사원들은 본사로부터의 출장, 저작권 또한 세가에게 있다는 형식의 사실상 독립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편이지만 실적을 올린 회사에게는 자주 개발의 재량권을 주고 주식 공개를 허용한다는 식으로 자체 경쟁을 유도해서 개발 부서 형식으로 남을 경우에 비대해진 규모로 인해 타성에 젖게 될 요인을 제거한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도 갑작스럽게 완전히 독립시켜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 점진적으로 진행해나가는 편이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세가의 분사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각 개발 팀간의 자연스러운 경쟁을 유발해서 비대해진 회사의 분위기에 따라서 타성에 젖게 될 요인을 제거하고 좀 더 양질의 소프트 개발을 유도할 수도 있을 테지만 일부에서는 이 일로 인해 세가가 게임기 개발에서 손을 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또한 분사화의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유력한 것이 경비의 문제라고 한다. 세가의 게임 제작자들은 엄청난 경비를 소요한다. 금전감각이 없이 막대한 돈을 그저 뿌리고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쉔무가 게임의 퀄리티는 논외로 치고서 막대한 경비를 소모하고도 그만한 수익을 거두지 못한 것이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옛날처럼 매니어 지향의 게임을 만들어도 적절히 팔아서 이익을 남기던 시절에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사화를 시키고 독자적으로 경영을 시킴으로써 경제감각을 익히게 함으로써 스스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오카와 회장 겸 사장의 독재라고 보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즉 이리마지리 사장은 나카야마 하야오(內山準雄) 전 사장이 지니고 있던 세가에 대한 영향력이 새턴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이의 실패를 계기로 약화됨에 따라 이를 빌미 삼아 세가를 빼앗기 위해 오카와 사장에게 이용당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리마지리 사장이 취임한 부회장이라는 자리가 나카야마 전 사장이 있던 자리라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서 그동안 세가라는 회사와 세가의 게임이 지금에 이르도록 할 수 있게 하는데 지대한 공로를 했던 나카야마사장과는 달리 오카와 사장은 게임을 그저 돈줄로밖에 보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세가에게 있어 이제 과거의 게임을 고집하는 팬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직 네트웍 세계를 봐주는 사람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의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변해 가는 세가에 기존의 세가팬들 또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요소이다.

세가라는 회사는 자체적인 게임 개발능력으로만 놓고 따지면 일본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회사에서 게임센터와 게임기용을 합쳐서 매년 100타이틀 이상의 게임을 발매할 만큼 많은 개발라인을 지니고 있고 이중 일본에서도 탑클래스로 꼽히는 실력 있는 제작자를 여러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소니에게 참패한 전례가 보여주듯이 게임기시장이란 자체적인 게임 개발능력만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더 뛰어난 서드파티를 끌어들일 수 있느냐, 얼마나 홍보, 판매전략을 잘 세우느냐에 따라 그 우열이 결정되는 것이다. 오리진 시스템의 울티마 온라인의 성공, 블리저드사의 배틀 넷을 통한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의 네트웍플레이 등 세계적인 게임의 흐름이 ‘네트웍’ 으로 대변되는 추세의 흐름에 따라 일본쪽에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네트웍 프로바이더로의 변신을 선언하고 나선 세가의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6 Responses to “변해가는 세가, 그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1. 예 Toejam and Earl 맞습니다. 게임 전반에 흐르는 펑키한 음악이 아주 끝내줬던 게임이지요. 다만 지나치게 컬트해서 그다지 한국에서 인기는 없었습니다만..8MB 롬팩이었죠. 삼성전자에서 붙여놓은 이름 재밌는게 많았습니다. (지금 들으면 상당히 황당한 것들이긴 하지만)

  2. 93년이던가 94년이던가요..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본어 게임 수입 금지’로 게임시장이 폭탄을 맞고 휘청거리다가 플스가 출시되고, 플스의 서민시디가 풀리면서 판이 개판이 되고 동시에 저는 고등학교에 가면서 게임에서 손을 떼었었지요. 🙂

  3. 2000년 언젠가의 월간 게이머즈에 실렸던 글입니다. 당시 중국에 가 계시던 모 님께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자신이 했어야 할 원고를 제게 청탁하신 일이 있었기에 쓰게 된 글이고 개인적으로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게 써진 편이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세가는 드림캐스트 포기선언을 했고 오카와회장은 별세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지금과는 실정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 제가 이리마지리 쇼이치로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아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 부분은 약간 얼버무리면서 썼고 실제 잡지에 실렸을 때는 약간 수정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4. 저도 세가 매니아중의 한명이었습니다. 메가드라이브 시절의…세가 라는 이름 하나를 믿고 소프트를 살 때도 많았었지요. 홀이와 뚱이라는 세가 아메리카의 게임을 아시는지..;; 삼국지열전, 수퍼리그91, 수퍼모나코GP 등등 제가 좋아했던 게임들은 다 세가의 것들이었는데… 아쉬운 일입니다.

  5. [+schopen] 세가를 좋아하신다면 저의 마음의 동지! 홀이와 뚱이라면 Toejam and Earl을 말하는 건가요. 게임은 안 해봐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양키게임 특유의 맛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세가어메리카 최고의 작품은 역시 에코 더 돌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정말 멋진 게임들 많습니다만 지금 돌아가고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 아플 따름이죠.

  6. [+schopen] 흐흐 옛날 생각 나는군요.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극장개봉되고 DVD와 음반이 정식으로 발매되는 세상이 됐으니 확실히 격세지감이 들긴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샤이닝포스 대화집’의 조악한 번역이라든지 부실한 패키지 디자인 등을 생각하면 여전히 삼성에 좋은 감정이 남진 않습니다. 그래도 환타지스타 한글화 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믿을 수 없는 일도 해주긴 했으니까 나름대로 많이 노력한 거겠죠.

 Leave a Reply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

(required)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