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12002
 
그동안 말 많고 탈 많았던 NC소프트의 MMORPG 리니지가 18금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NC의 주식은 대폭 하락한 추세이며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면서 분분해 하고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거의 악의 축처럼 인식돼오던 NC의 리니지, 과연 모든 것은 NC와 리니지만의 문제였을까? 이 일의 원인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보도록 한다. 참고로 필자는 NC를 옹호하는 입장도 절대 아니며 리니지라는 게임을 그리 좋아하거나 높이 평가하진 않는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1. 문제의 발단, 아이템 현거래와 PK

지금 당장 아무 검색엔진에나 들어가서 ‘현거래’라는 검색어를 입력해보자. 수많은 아이템 현거래 사이트에서 다양한 아이템이 고가에 매매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현거래는 말 그대로 게임상에서 나오는 아이템 혹은 돈을 실제의 현금을 통해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게임을 오랫동안 플레이해오다가 접으려는 플레이어는 그동안 자신이 들인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고싶어할 테고 게임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직장생활 등의 이유로 인해 게임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없는 사회인들은 적은 수고로도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기 위해 그러한 아이템을 구입하고자 한다. 이러한 서로간의 이해관계를 통해 수요와 공급이 성립되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다. 어쨌든 자기 돈 자기가 쓰겠다는데 말릴 이유 같은 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음부터 생긴다. 온라인게임이 ‘돈이 되는’시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버리자 여기에 조폭 등의 세력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 학생들을 게임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데려다가 PC에서 온종일 게임을 시키면서 아이템을 ‘생산’, 이를 현거래로 판매하면서 ‘아이템 장사’를 한다. 혹은 그런 현거래를 통해 돈만 받고 아이템은 주지 않고 내빼는 사기를 행한다. 또한 어린 학생들이 돈맛을 보게 되면서 아이템장사에 연연하는 등의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PK란 Player Killing, 즉 가상의 공간인 온라인 게임 상에서 자신이 플레이하는 캐릭터로 상대방 이 플레이하는 캐릭터를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 또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요소를 게임상에서 재현해놓은 것이며 따라서 PK란 게임성의 일부일 뿐이지 PK라는 시스템을 넣는 자체가 비도덕적인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니지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은 플레이어가 게임상에서 죽었을 때 지니고있던 아이템의 일부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시스템상의 문제이며 이를 악용해 고의적으로 PK를 행한 후 아이템을 빼앗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게다가 자신이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 상대의 신원을 추적해서 실제로 만나 린치를 가하는 등의 소위 ‘현피(현실 PK)’라고 불리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리니지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되기 일로였다.

2. NC소프트만의 문제인가

이번 18금 판정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대체적으로 ‘잘 된 일이다’라는 쪽이 많다. 리니지로 인해 많은 사회문제가 일어났고 고로 마땅히 받아야 할 조치를 받았다는 반응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게임 제작사는 검찰청이 아니다. 현실에서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사용자를 일일이 잡아서 신고해야 할 의무도 없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운영진에서 사용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시간으로 추적을 하면서 현거래를 단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걸핏하면 조폭이 난입해서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의 사태가 일어나는, 그래서 철창살로 엄중하게 막혀있고 직원 전용 카드키로만 출입이 가능한 NC소프트의 사옥을 본 일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제작사 차원에서 이를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시스템 상에서 최대한 예방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NC소프트는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다. 플레이어간의 아이템 트레이드를 시스템상으로 막아버리고 플레이어의 사망시 아이템을 떨구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러한 현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격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치 못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게임은 게임, 온라인은 온라인이다. 게임을 만들어가는 것은 제작사이지만 온라인게임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것은 사용자이다. 사용자가 시스템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지 제작사가 사용자로 하여금 현거래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로 게임의 본질적인 부분, 즉 게임성 자체를 바꾸도록 강요하거나 혹은 그런 문제로 인해 제작사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이는 게임이라는 엄연한 예술장르에 대한 침해이기도 하다. 물론 국내의 정서에 있어서 사용자끼리 서로 죽고 죽인다는 개념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따라서 18금 판정은 옳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PK의 당위성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독자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다. 문제는 이렇게 갑작스런 18금 판정을 받게 된 과정에 있다.

3. 어이없는 심의기준

1999년 4월 17일 이전까지 모든 게임에 대한 심의 권한은 정보통신부 산하의 정보통신 윤리위원회가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이후 발안된 소위 ‘음비게법’에 의해 이 권한은 문화관광부 산하의 영상등급위원회로 넘어가고 이에 반발한 정통부와의 타협안에 의해 온라인게임의 심의 권한만은 정통부가 그대로 지니고있는 것으로 결정됐다. 간단히 말해 정통부는 사후심의, 문광부는 사전심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정통부가 심의하는 게임만은 예외적으로 문광부의 심의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2년 3월 27일에 개정된 음비게법에 의해 이러한 조항은 삭제되고 기존에 정통윤의 심의를 받아 청소년 이용가로 이미 5년 가까이 서비스를 해온 리니지가 영등위의 ‘사전심의’의 대상이 돼서 18세 이용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관련 법령을 참조하기 바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일뿐더러 이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 논리를 따르자면 앞으로 나오는 모든 온라인게임은 사전심의를 받아야하고 온라인게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있는 사소한 패치 하나를 위해서도 영등위의 사전심의를 받아야한다. 이는 비단 NC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온라인게임에 있어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문제인 것이다. 아직 온라인게임 등급분류의 심의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히 제시돼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비합리적인 전례를 남긴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다. 제작사는 새로운 시스템의 구현방식에서 많은 제약을 받게 되고 문제점 수정을 위한 간단한 패치 하나 하기도 힘들어진다.

4. 맺으며

결국 이번 리니지의 18금 판정은 정통부과 문광부의 밥그릇싸움에 의한 결과이며 그 희생양으로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NC소프트가 지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짙다. 그러한 NC소프트이지만 어쨌든 일개 게임회사에 불과하기에 이렇다할 법적인 대항 없이 타협안(캐릭터 사망시 아이템 드롭 삭제)을 제시한 현실에서 앞으로 타사에서 나올 게임들 또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기왕 심의를 하려면 명백하고 합리적인 심의기준을 마련한 후 ‘온라인게임’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지니고있는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적법한 절차에 의한 심의를 받게 해야 함이 옳다.

아스테: 유리만 깨는 줄 아나. 총도 쏘고 갔다네 -_- (야 그래도 우린 베란트보다는 낫다- 하하하! 하고 있다가 뒤통수맞은 기분)  [11/01-01:05]
룬: ……미국에서나 있을법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군 -_-; 하지만 정말 저 심의라는 건 너무 암울한데 –;  [11/0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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