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2003
 

1. Lunar the Silver Star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Mega CD  발매일 : 1992/6/26  가격 : 7800엔

이 작품은 세가가 당시 주력기종이었던 Mega Drive의 CD-ROM 기기인 메가시디를 발매하기 이전부터 주목을 모으던 작품이다. 경쟁사였던 닌텐도의 게임기에 비해 고정적인 팬을 확보할 수 있는 장르인 RPG가 취약했던 당시 세가의 입장에서는 간판 시리즈였던 Phantasy Star 시리즈 이외에 또 다른 간판 타이틀이 필요했던 상황이었고 따라서 메가시디의 발매에 맞춰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작사인 게임아츠사의 내부사정과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인해 발매일은 차일 피일 미루어지고 결국 발매는 메가시디 발매 이듬해의 6월, 거의 반 년 이후에나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 게임을 동시발매타이틀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 메가시디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각설하고 작품 자체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이 게임은 애초에 매체를 CD ROM으로 잡은 탓에 당시 사용자들은 화려한(당시 기준으로서는 초당 12~13프레임의 애니메이션만 나와도 화려한 것이었다.) 동영상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동영상은 매우 간소한 편이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발매됐던 스퀘어의 Final Fantasy 5처럼 SD캐릭터의 액션 같은 것도 없이 게임의 진행은 대부분 텍스트 위주로 이루어진다. 당연하게도 그 점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는 실망감을 느끼면서 이 작품을 ‘기대 이하’로 취급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 게임의 그런 부분은 제작자의 성향에 기인한다. 즉 디렉터였던 미야치 요이치씨가 추구하는 게임의 성향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모 아는 분의 표현을 빌어 굳이 비교하자면 Dragon Quest식의, 즉 이야기의 흐름을 ‘보고 듣는’것을 통해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받아들이는 방식을 선호했고 이러한 성향이 게임에 그대로 반영됐기에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예상 외로 비주얼신이 적었던 문제는 그러한 제작자의 성향으로 인한 문제이며 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일 뿐이지 게임 자체의 결함이라고 볼 수는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텍스트를 위주로 하는 전개’로서 이 게임의 시나리오 전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간단한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루나라는 세계에는 알테나라는 여신이 있으며 여신은 매번 인간으로 환생해서 세상을 다스린다. 여신은 네 마리의 용의 수호를 받고 있으며 이 네 마리의 용을 인정을 받은 이는 여신의 절대적인 수호자 드래곤 마스터가 된다. 부르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아레스라는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전대의 드래곤마스터 다인을 존경해왔으며 자신도 언젠가 모험을 떠나 드래곤 마스터가 되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역시 부르그 마을에는 루나라는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으며 아레스의 소꿉친구이기도 했다. 어느날 아레스는 친구 라무스의 꼬임에 넘어가 백룡의 동굴에 용의 보석을 얻기 위해 들어가고 이는 모든 모험의 실마리가 된다.

이상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루나라는 소녀는 알테나의 환생체이며 주인공 아레스는 드래곤 마스터가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고전적인 소재 – 즉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도 설명한 제작자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녔다는 부분과도 일치한다. 주인공 아레스는 많은 고난을 겪고 최후의 보스를 쓰러뜨리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세계를 구하는 것은 여신과 드래곤마스터가 아닌 ‘소녀를 생각하는 소년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다른 게임에 비해 몇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첫째가 전투 시스템이다. 이후의 루나 EB와 그란디아로 계승 발전되면서 이어지는 이 전투 시스템은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 자체의 전투시스템은 그렇게까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후일의 작품 – 특히 그란디아의 훌륭한 전투시스템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게다가 필드와 전투 사이에서 로딩이 없이 상당히 스무스한 연결을 이루어냄으로써 전투로 인해 게임의 흐름이 끊어질 염려를 최소화하고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음악이다. 작곡가인 이와다레 노리유키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이 게임의 음악은 CD의 오디오트랙에 미디연주곡으로 들어가있으며 게임의 세계관과 각 지역의 특색을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진 이와다레씨와 게임아츠의 만남은 놀라운 시너지효과를 일궈내면서 후속작들로 이어지게 된다.

2. Lunar Eternal Blue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Mega CD  발매일 : 1994/12/22  가격 : 9800엔

전작이 게임의 세계관에 있어서 ‘루나’라는 무대를 소개하고 ‘여신과 드래곤마스터’의 존재를 소개하는 작품이었다면 후속편인 이 작품은 보다 심도있게 작품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전편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푸른 별의 존재,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결의한 여신 알테나의 선택과 그 이후. 그리고 루시아.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뜻깊은 작품이다. 거의 사장세에 접어가고 있던 메가 드라이브와 메가시디의 말기에 나온 그야말로 최후의 걸작. 또한 루나라는 세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이 발매되던 당시 잡지에 실렸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애초에 3부작 구성으로 기획하고 있었으며 전편이 1부, 이번 편이 2부에 해당하며 작품의 말미에 애초에 기획했던 3부의 내용을 합쳐서 넣은 형식을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2부와 3부의 내용은 거의 이어지는 부분이고 그렇게 뭉뚱그려놓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2부 마지막의 여운을 느끼면서 감동의 대미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편에 비해 캐릭터의 개성이 상당히 비중있게 다가온다. 전편은 이야기의 구도 자체는 훌륭했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전달하는데는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야기의 볼륨 자체도 짧은 편이었고 플레이어의 상상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이러한 일본식의 ‘이야기’를 즐기는 RPG에서 그런 부분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될 소지가 많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그런 캐릭터 하나 하나의 배경스토리들이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그것이 단순한 배경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큰 줄기 – 바로 루시아가 인간에게 감화돼가는 과정에 연결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점은 가레온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다. 전편에서 마법황제로 등장해서 여신을 이용해 세계를 폭주시켰던 악역이자 최종보스였던 남자. 그는 두 작품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단 두 명의 인물 중 하나이다. 백룡 나루가 평범한 인간이었던 히이로와 초인적인 존재들 – 여신과 수호룡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면 가레온은 그런 히이로를 채찍질해가면서 조파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로 키워내는, 말하자면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주인공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왜 그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개과천선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힘에 도취해서 이성을 잃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으며 역시 ‘힘’에 의지하려고 했던 루시아를 계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시아,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핵심적인 키워드를 지닌 인물이다. 전편에 비해 세련된 비주얼을 중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작품의 메인테마는 고전적이다. 전편에 비해 평균연령이 높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거기에 전편처럼 여신과 드래곤 마스터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테마를 보여준다. 루시아는 전편의 알테나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만 ‘인간’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히이로 일행과의 모험을 통해 점차 인간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히이로를 믿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푸른 별로 돌아가 버리고 히이로는 다시 루시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난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숨바꼭질하는 설정 같으면서도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용사물의 패턴에서 상당히 일탈해있으며 그 덕분에 플레이어는 뻔해보이면서도 루시아라는 캐릭터에게 연민과 동정, 애증과 숭배감 등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의 단락에서도 언급했지만 루나 EB는 전편인 SS와 비교해서 상당히 비주얼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다. 전편에서 시디롬매체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비주얼신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의식한 탓인지 본편에서는 상당량의 비주얼신이 들어가있다. 그것도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동영상으로 코딩하는 방식이 아닌 프레임 하나하나를 일일이 극한의 도트노가다를 해가면서 그려내서 최대한 깨끗한 화상을 보여주고있다는 점은 제작사인 게임아츠 전통의 놀라운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본작의 전투시스템은 전편의 전투와 그란디아를 놓고 봤을 때 중간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란디아와 같은 세미리얼타임은 아니고 전편과 같은 턴제 전투를 취하고 있지만 필살기의 존재, 적의 공격패턴을 파악 후 공격 우선순위를 중시하면서 행동을 결정하는 전략적인 전투, 그리고 전투시의 영역의 활용에 따른 우열의 변화 등은 그란디아에서 보이는 전투시스템에 상당히 근접해있으면서 전작을 충실히 계승 발전한 것이다. 또한 전투의 템포가 매우 좋아서 역시 전편 못지 않은 스무스한 전개가 가능하다.

음악의 퀄리티 또한 상승해있다. 전편과 같은 오디오트랙 음원이 아닌 샘플링파일을 스트리밍 재생하고있고 16비트기기의 하드웨어적 한계로 인해 음질 자체는 열악한 편이지만 이는 작곡자 이와다레 노리유키씨가 작곡한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음악을 빠짐 없이 모두 넣기 위해 선택한 피치 못할 방법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시기의 이와다레씨의 작곡감각은 절정에 달해있었고 덕분에 장면 장면마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아지경에 몰입해있을 수 있었으며 절대 음악에 게임이 뒤덮이지 않고 게임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훌륭하다.

이후로 이 시리즈는 세가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통해 리메이크된 바 있지만 그 어느 작품도 메가시디판의 원작만한 감동을 일궈내진 못했다. 무엇보다 이식을 원 제작사인 게임아츠에서 직접 한 게 아닌 카도카와측에서 맡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덕분에 이 메가시디로 나왔던 루나 시리즈는 팬들의 가슴 속에 그야말로 ‘환상의 명작’으로 자리잡고있는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마지막, 너저분한 몰골로 거꾸로 매달려 크리스탈을 두들기고있던 히이로의 모습은 필자의 게임인생에 있어 손가락으로 꼽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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