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2003
 
   필자와 Ultima 시리즈

오늘날의 PC용 RPG라는 장르가 생겨날 수 있었던 원동력, 비디오게임사상 최고의 RPG 등등 그 어떤 호화찬란한 수식어를 붙여도 절대 과분하지 않을 아마도 유일한 게임, 그것이 바로 Ultima 시리즈이며 그중에서도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바로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Ultima IV : Quest of the Avatar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집에서 Apple 2 PC를 가지고 많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던 당시 처음에 주로 하던 게임은 단순한 슈팅이나 액션 등의 아케이드 게임 류였다. 물론 이들은 쉽고 재미있었으며 이러한 류의 게임의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당시로서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고 금방 질려버리는 게임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이 몰입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접하게 된 이 Ultima IV:Quest of the Avatar라는 게임은 그러한 필자의 게임관을 송두리채 뒤엎어버리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때까지 접했던 단순한 ‘게임’과는 달리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뭔가 때려부수는 장면 또한 나오지 않았으며 그래픽 또한 단조롭기 짝이 없었기에(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후일 깨닫게 됐지만)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은 곧 경이로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영어실력이 거의 전무했다고 봐야 할 그 당시(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오로지 잡지의 공략본(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부실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아주 약간의 기반지식은 얻을 수 있었다.)에 의지해서 플레이를 해가면서 각 키보드에 할당된 커맨드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계단을 내려가는 명령이 할당된 키보드가 D(escend)라는 사실을 발견한 친구의 전화를 일요일 아침에 받고 기뻐서 그 친구 집으로 달려갔을 심정을 생각해보라) 게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돼고 동료를 하나 하나 발견해나가면서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단서를 모아나간다. 처음엔 그야말로 알 수 없었던 게임이 그때까지 해봤던 게임들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으로서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 필자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의식 자체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작품은 필자가 플레이해본 가장 위대한 게임으로 남아있다. 이만하면 필자가 이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됐으리라 여기니 각설하고 이제부터 이 게임이 어째서 위대한 작품인지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Ultima 시리즈란?

우선 간단히 Ultima란 어떤 작품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이 시리즈는 Richard Garriot이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1979년 APPLE II PC를 이용해서 AKALABETH라는 간단한 환타지 RPG 형태의 습작을 만들었으며 이를 토대로 해서 그 다음 해에 최초의 2D Field형 RPG 게임인 Ultima 1을 개발했다. 그 뒤로 II와 III가 뒤이어져 발매됐는데 III에서는 시리즈 최초의 파티제도가 도입됐고 마법을 다변화하는 등 기존의 I,II에 비해 매우 탄탄한 구성을 보여줌으로써 후일 나오게 되는 IV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만한 수준은 아닌, 여기까지의 Ultima 시리즈는 그야말로 습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Ultima의 위대함은 바로 이 Ultima IV : Quest of the Avatar로부터 시작된다.

Ultima시리즈의 세계는 Britannia대륙이라는 가상의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Ultima IV에서의 브리타니아 대륙은 과거 사악한 마법사 Mondain, Mondain의 제자 Minax, 대지의 뱀 Exodus라는 세 차례에 걸친 거대한 위협을 다른 세계에서 나타난 용사(즉 Ultima I,II,III에서의 플레이어)의 출현에 의해 격퇴하고 Richard Garriot이 자신의 분신으로 삼은 Lord British라는 강력한 왕에 의해 과거 소규모 도시국가가 난립해있던 세계가 하나로 통일됐으며 지금은 8개의 주요 도시에서 각각 고유의 미덕과 특화된 직업을 발전시키고있으며 미덕들을 3진리로서 정립시키는 등 문물양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있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Lord British는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다시금 이세계의 인물, 즉 플레이어인 당신을 소환해왔으며 당신은 8가지의 미덕을 완성시키고 Great Stygian Abyss라는 거대한 지하미궁 속에 잠들어있다는 궁극의 지혜의 성전(Codex of Ultimate Wisdom)을 찾아내 당신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이뤄야 한다. 즉 당신의 목적은 그러한 이상적인 인간의 완성형, Avatar가 되는 것이며 이 작품의 부제인 Quest of the Avatar 또한 그러한 ‘Avatar가 되기 위한 수행’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Ultima IV의 윤리성과 사회성

이상에서 알 수 있지만 이 게임은 그 목적조차 다른 게임들의 상궤에서 벗어나있다. 심지어 기존의 Ultima시리즈에서조차 플레이어는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지 이러한 플레이어 자신의 궁극적인 인격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작품은 존재치 않았다. 물론 Ultima III에서 최종적으로 대지의 뱀 Exodus를 격퇴하는 일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퍼즐풀이를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본작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리처드 개리옷 – 로드 브리티쉬는 초로 기존의 게임들의 상념에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고찰을 게임상에 도입할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러한 의도는 본 작품에서 최초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특유의 철학성은 작품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행하는 행동에 도덕성(Morality)을 부여하게 된다. 게임의 결말은 8가지 미덕의 완성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게임 내에서의 행동에 따라 이러한 부분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전투에서 도망을 가거나 비호전적인 생물에게 선공을 가하는 행위, 거짓말을 하거나 교만하거나 눈먼 약초상인에게 약초의 제값을 지불하지 않거나 하는 행위 등을 저지르면 악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겸손하거나 정직한 대답을 하고 치료소에서 헌혈을 하거나 거지에게 적선을 하면 좋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어떤 행동을 하든지 플레이어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지만 그에 따른 인과응보가 철저하다. 이러한 윤리성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언제나 자신의 캐릭터의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된다.

캐릭터메이킹 또한 독특하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도입부에서 집시의 마차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한 집시 여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그 질문 속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가치관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고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도시가 결정된다. 기존의 TRPG식 주사위굴리기의 캐릭터메이킹에서 벗어난 이러한 캐릭터메이킹은 도입부에서 작품의 세계와 윤리관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그러한 윤리성과 함께 특기할만한 부분은 인물들의 사회성이다. 오늘날의 MMORPG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됐지만 당시의 비디오게임에서 그러한 사회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NPC들은 여타의 RPG처럼 순순히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마을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직업, 외관 등의 일상적인 잡담을 통해 단서를 얻어내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물론 그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지니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플레이어의 노력에 의해 알아내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MMORPG들이 추구하는 사회성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던 작품이 바로 이 Ultima IV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차기작인 Ultima V에서는 밤과 낮의 존재가 생기고 그 시간대에 따라 실제 자신의 작업장과 집 사이를 오가는 마을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함으로써 더욱 수준높은 사회성을 띄게 되기도 한다.

   Ultima IV의 세계관과 시스템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환타지물로서의 Ultima 시리즈다. 전의 3작은 이 작품에 비하면 그야말로 습작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따라서 스토리나 세계관 또한 명확하게 체계화돼있지는 않았다. 그러한 세계관이 최초로 정립된 작품이 바로 본작이며 이후 Avatar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이 세계에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있고 그 두 개의 달의 모양에 따라 Moongate라는 세계의 각지를 연결해주는 문이 열린다. Exodus의 격퇴 이후 세계에는 대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이후 Ultima시리즈에 등장하는 Britannia 대륙의 지형이 정립된다. 8개의 도시에서 추구하는 각각의 미덕과 직업이 보여주는 생활상은 무대의 세계관을 한층 빛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고대 영국의 지명들에서 따온 도시명들과 Druid의 존재는 켈트의 신비스러움이 느껴지게 한다. 각각 다른 효능을 지닌 8가지 마법의 시약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고 이 약초의 조합을 통해 제조한 조합물을 이용해 마법을 캐스팅함으로써 환타지라는 세계감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시스템적인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특히 이 마법시스템은 V에서 고대 켈트인들의 Rune문자를 이용한 주문 조합의 요소를 더함으로써 더욱 깊은 완성도를 보이게 된다.

사실 Ultima IV의 시스템 자체는 몇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III까지의 시스템을 집대성하고 거기에 약간의 보완을 가했을 뿐이지 어떤 획기적인 발전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 자체만을 놓고 보면 다음 작품인 V에서 놀라운 발전과 완성도를 보여주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Ultima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반열에 IV를 올려두고있으며 차기작인 V는 그 다음으로 놓는다. IV의 시스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IV에서 보여주는 시스템이 시리즈의 세계관의 정립에 직결돼있고 이후의 시리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대화시스템이다. 전작까지는 단순히 말을 걸면 일방적으로 몇마디의 정보를 전달받았던 것에 비해 전술했듯이 이 작품의 대화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한 편이며 처음에는 뭘 해야할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대화의 요령을 터득해감에 따라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게임은 물론 오늘날의 게임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플레이감각을 선사한다. 역시 전술한 마법시스템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후로 8가지 마법시약의 존재는 Ultima시리즈의 마법의 상징처럼 돼버렸으며 가장 대표적인 MMORPG로 꼽히는 Ultima On-Line에서까지 그 영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비단 마법시약뿐만이 아니더라도 기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작이 이후의 시리즈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끝으로

Ultima IV가 발매된 것은 1985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이미 18년이나 되는 세월이 흐른 지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게임계에 있어서 이 작품은 이미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사용자 편의적인 인터페이스가 발달한 시대는 아니었고 지금 와서 플레이하기에는 불편한 면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단순한 고전게임에 대한 향수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측면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의 게임이라면 이 작품이 오늘날의 PC용RPG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이 작품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많은 새롭고도 놀라운 시도가 들어있으며 특히 그 스토리는 정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도입은 이 글 내에서도 몇번인가 언급했지만 특히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후속작인 Ultima V : Warriors of Destiny의 발매와 더불어 극한의 완성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Ultima 시리즈는 오늘날에도 영원한 RPG의 바이블로 남아있게 된다.

aniki: 울티마 만세!! 만세!!  [02/17-05:59]

 Leave a Reply

You may use these HTML tags and attributes: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 <strike> <strong>

(required)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