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2002
 
   간단한 작품 소개

여름이 끝나갈 무렵, 주인공 카시와기 코이치(柏木耕一)는 별거하고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해 최소한 49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시골에 내려가있게 된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주인공의 아버지의 손에 의해 자란, 즉 주인공의 사촌에 해당하는 4자매가 지내고 있었다. 한편 주인공은 카시와기 가의 저택에 오고 나서 밤마다 이상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파괴와 살육의 충동을 느끼며 점차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는 주인공. 그리고 때를 같이 해서 일어나기 시작한 연쇄살인 및 실종사건. 어린 시절에 남은 상처자욱 – 키즈아토 – 으로 인해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4명의 자매, 그리고 카시와기 가의 사람들이 부여받은 운명이란…

   비주얼 노벨

이 작품은 Leaf가 零(しずく)를 내놓은 이후 LVNS(Leaf Visual Novel Series)의 두 번째로서 1996년 7월 26일에 내놓았던 작품이다. 우선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도록 한다. 초창기의 비디오게임 중에는 텍스트 어드벤처가 있다. 그래픽이나 효과음 같은 것은 일절 존재치 않으며 모든 것은 텍스트에 의한 설명으로 진행되고 플레이어는 키워드의 입력을 통해 게임을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 어드벤처에서 발전한 것이 여기에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그래픽과 다양한 음악을 넣은 것이 Sierra사나 Lucasarts사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그래픽 어드벤처들이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일본의 츈소프트에서는 제절초와 카마이타치의 밤으로 유명한 사운드노벨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발매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고 하기에는 앞서 서술한 텍스트어드벤처에서 플레이어가 시나리오에 개입할 요소 혹은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고 약간의 이펙트를 첨가한 것에 불과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감각과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게임북을 통해 즐기는 감각의 분기 선택 등은 쉽게 플레이할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게임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형태의 재미를 선사했기에 나름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운드노벨이라는 장르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고 소수의 매니어들 사이에서만 알려지게 된다. 위의 두 작품이 발매된 플랫폼이 주로 대중성을 지향했던 수퍼패미컴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 뒤로 이 장르의 신작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PC용 18금 게임 제작사였으며 당시로서는 일반 유저들에게 거의 알려져있지 않던 Leaf사는 이 새로운 장르에 주목하고 기존의 사운드노벨에 비해 보다 시각적인 부분 – 배경 삽화, 캐릭터 설정 등 – 에 중점을 둔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의 게임을 내놓게 된다. 이 비주얼 노벨의 첫 작품이었던 시즈쿠는 그래픽은 굉장히 열악한 편이었지만 그 충격적인 시나리오 전개와 특유의 황폐한 분위기, 그리고 뛰어난 BGM 등으로 인해 ‘독전파’라는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며 소수이지만 상당히 열렬한 지지층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환경이 가정용 게임기에 비해 상당히 매니악한 유저가 주를 이루는 PC게임시장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Leaf에서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여기에 적는 키즈아토라는 작품이다. Leaf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메이저 제작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투하트와 화이트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저변에는 이 키즈아토라는 작품이 지닌 탄탄한 완성도를 통해 사용자들 사이에 은근하게 알려진 인지도가 결정적인 역활을 해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작품이 나올 시기만 해도 Leaf는 아직 영세적인 마이너 제작사였기에 그래픽 자체는 전편인 시즈쿠와 크게 다름 없이 굉장히 열악한 편이었지만 그 완성도는 전편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러한 노벨 계열 게임 사상 최고의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투하트 이후에 후발주자로서 비주얼노벨 시리즈를 내놓았던 Key의 일련의 작품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왔던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이 역력하게 보이는 F.O.G사의 쿠온노키즈나 같은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를 떠올려보면 이 작품이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키즈아토

Elf의 동급생 시리즈 이후 이 계열의 게임들은 대체적으로 멀티히로인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히로인을 공략한다는 점, 혹은 여러 차례의 반복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러한 멀티 히로인 시스템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너무나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나리오 구성에 있어서 뛰어난 부분이 바로 이 점에 있다. 히로인 4인에게는 각각 다른 전개가 준비돼있고 거기에는 각각의 배드엔드와 해피엔드가 존재한다 – 이 자체로는 다른 게임들과 차별점을 둘 수 없다. 그러나 이 4인의 시나리오에는 각각 다른 캐릭터의 시나리오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얽혀있는 사실들이 등장하며 모든 히로인의 트루엔드를 본 이후 추가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이 게임의 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보면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플레이어는 흩어져있는 퍼즐의 조각을 모두 맞춘 것과도 같은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다른 게임에서도 이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몇가지 예를 보자. F.O.G사의 쿠온노키즈나 같은 경우에는 3인의 히로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 히로인인 타카하라 마요가 시나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큰 나머지 다른 2인의 히로인을 공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지경이다. Key의 Kanon 같은 경우는 이러한 유기적인 시나리오의 연계를 어느 정도 시도하고있긴 하지만 역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Key의 Air에서는 쿠온노키즈나와 마찬가지로 주 히로인 카미오 미스즈의 비중이 너무나 커서 게임의 중반 이후로는 다른 두 히로인의 존재 의의가 무색해진다. Topcat의 ‘끝없이 푸른 이 하늘 아래서'(통칭 靑空-아오조라)의 경우는 이러한 시나리오의 횡적인 연결 자체는 상당히 밀접하게 이루어지고있긴 하지만 정작 시나리오의 극적 긴장감 자체가 떨어져서 플레이어에게 몰입도를 제공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시나리오의 밀접한 횡적인 연결과 극적인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이 키즈아토의 시나리오 구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다른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배경이 되는 계절이 가을인만큼 작품의 곳곳에서 전작인 시즈쿠의 황폐함과는 또 다른 황량한 느낌이 물씬 베어나온다. 여기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술한 속된 말로 ‘구린’ 그래픽도 한 몫을 하고 있으며 배경음악 또한 그런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하고있다. 특유의 황량함 속에서 이야기는 윤회전생물과 오컬트와 SF와 바이올런스적인 분위기가 얽혀있는 독특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이러한 분위기는 전술한 시나리오 구성과 맞물려 플레이어에게 다른 게임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이 작품의 음악은 소위 리프3인방 – 시모카와 나오야, 나카가미 카즈히데, 이시카와 신야 – 라는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 화이트앨범까지 LVNS의 음악을 담당하면서(물론 이후의 작품들에 손을 안 댄 것은 아니지만 3인이 함께 작업을 한 것은 화이트앨범까지. 참고로 전작 시즈쿠에는 Key의 음악 담당인 오리토 신지도 참여하고 있다.) 이 계열에서는 보기 드물게 – 오히려 웬만한 메이저 게임 제작사의 작품들의 퀄리티를 훨씬 능가하는 – 뛰어난 퀄리티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야기의 분위기 고조에 시각적, 청각적인 효과를 함께 요구하는 이 장르의 게임에 있어서 이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맺으며

이 작품 이후로 Leaf의 작품들은 상당히 밝은 이야기를 그리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지만 Leaf의 제작진들은 여전히 이 작품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올해(2002년) 10월에 Leaf에서는 그래픽을 일신한 이 작품의 리뉴얼판을 내놓았으며 실패작이긴 하지만 과거의 분위기로 회귀를 시도했던 타소가레와 같은 작품을 내놓은 일도 있다. 그만큼 키즈아토는 많은 의미를 지니는 작품인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의 그 복잡미묘한 기분은 글로 표현할 성격의 것이 아니며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언하며 이만 마치도록 한다.

  2 Responses to “[2002/12/15] 痕(きずあと)”

  1. 블로그 구경 잘하고 갑니다.
    블로그들이 서로 떨어져있는 것이 몹시 아쉬워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 블로그들을 비교해보는 포스팅을 올려볼까 하는데
    카테고리나 rss위젯부분좀 칼무리로 담아가도 될까요?

    • RSS란 게 그걸 위해 있는 기능이죠. RSS와 트랙백이 없으면 블로그란 그저 기존의 인터넷 게시판과 차이가 없는 개인 일기장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얼마든지 가져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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