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2002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넘어오면서 너무나 큰 실망을 안겨줬던 Final Fantasy 시리즈. 그리고 갈수록 게임 자체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면에만 치중하면서 점차 재미가 없어졌던 스퀘어의 게임들. 그리하여 더이상 스퀘어에게 기대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마음을 비우고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 2로 넘어온 FF의 첫 작품인 이 FF 10을 뒤늦게 클리어했다.

우선 감상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쁘지는 않다. 독단적인 견해겠지만 4시간 하고 때려치웠던 FF 7이나 얼마 해보지도 않고 할 맛을 잃게 만든 FF 8에 비하면 나름대로 끝까지 붙들고 앉아있을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캐릭터 성장시스템이 참신하다. 마치 보드게임 말판놀이를 하는 느낌의 스피어반이라는 곳에서 캐릭터가 스킬포인트를 얻을 때마다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한 포인트의 패러미터 상승 스피어를 발동시켜서 성장을 시킨다. 기본적으로 각 캐릭터마다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있지만 게임의 후반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영역을 마지막까지 클리어한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의 영역으로 들어서서 그쪽 캐릭터의 영역을 키울 수 있다는 부분이 좋다. 즉 캐릭터 고유의 특성을 따라 키울 수 있지만 원한다면 다른 형태의 캐릭터로도 얼마든지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전투의 밸런스가 좋다. 저런 형태의 노가다 시스템이 잘 발달된 게임은 자칫하다간 게임을 위한 전투가 아닌 전투를 위한 게임이 돼버릴 가능성이 크지만 이 경우는 특별한 레벨노가다 없이도 적절한 긴장감을 느끼며 대부분의 전투는 클리어가 가능하도록 밸런스가 잘 맞춰져있다. 또한 다인수의 캐릭터를 전장에 교대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특정 캐릭터만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를 캐릭터와 몬스터간의 상성 설정과 전투에 참가한 캐릭터는 경험치 분할이 아닌 무조건 같은 경험치를 받도록 해서 자연스럽게 여러 캐릭터를 돌려가면서 전투에 참가시키도록 유도한다는 발상으로 해결한 부분은  매우 훌륭했다. 또한 전투에서 기존의 ATB라는 거품을 빼고 택틱스오우거식의 WT와 유사한 행동치 개념을 넣었기 때문에 괜히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대면서 플레이하는 전투가 아닌 다음 캐릭터의 행동순서를 보면서 느긋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전략적인 전투라는 부분 또한 매우 마음에 든다.

그러나 문제는 필드에서의 이동이다. 모든 필드에서는 시점이 고정돼있다. 이는 3D로 이루어진 필드라는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원하는 곳을 볼 수 없다는 문제는 보는 이에게 갑갑함마저 느끼게 해준다. 또한 필드에서 이동하다가 갑자기 강제적으로 시점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순간적인 혼동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가끔씩 짜증이 나기도 했다. 또한 FF시리즈의 상징물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 비공정이 전혀 그 맛을 살리지 못하고있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시종일관 걸어다니기 혹은 기껏해야 초코보 내지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중반 이후 드디어 비공정을 얻고 하늘을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편리하게 이동할 때에는 일말의 엑스터시마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 비공정의 시각적 연출을 통해 이동을 할 때에는 어딘가 ‘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비공정이 기껏해야 어디로 이동하라고 입력하면 그리로 이동해버리는 워프장치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비공정의 존재 의미가 뭔지가 의심스럽다.

또한 필드에서의 CG 캐릭터의 모델링이 어색하다. 물론 인체의 묘사에 중점을 둔 작품은 아니지만 과장되고 단조로운 패턴의 동작은 이 게임에서 비주얼적인 측면을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특히 자체 폴리곤 부분과 동영상으로 삽입된 CG무비 부분의 격차가 극심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왕 제대로 된 3D게임을 만들고자 했다면, 그리고 스퀘어의 기술력을 생각하면 좀 더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의 패턴을 만들어야 했다.

내용적인 면을 놓고 따지자면 스토리 자체는 나쁘진 않다. 무한의 절망이 반복되는 가운데 잠깐동안 찾아올 평화를 위해 구극소환을 얻고자 하는 소환사들과 그 소환사를 호위하는 가드들의 이야기. 그러나 그 구극소환을 위해선 소환사의 목숨을 필요로 했고 구극소환수를 얻는 대가란 소환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의 희생. 그리고 그 소환사가 다시 신이 된다. 그 반복된 고리를 깨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부분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었지만 특이한 것은 주인공 또한 그 소환수들의 ‘꿈’이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그는 사라져야 했지만 마지막에 그가 동료들에게 보여줬던 태도는 꽤나 인상적이었으며 그때까지 가볍기만 하고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못했던 티더라는 캐릭터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유나라는 캐릭터는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소환사를 아버지로 뒀고 소환사가 따르는 인습을 그대로 답습하려 한다. 그리고 시모어가 청혼을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뜻이 아닌 ‘스피라의 민중들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희생해서 청혼을 받아들이려 한다. 필자는 이러한 류의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매우 싫어한다. 또한 시종일관 수시로 읊조리는 대사가 ‘고멘나사이’ 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길줄 알아야 남 또한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히려 괜찮은 게 조연들이다. 특히 아론, 멋진 중년의 절정을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멋지다. 이런 아저씨가 젊은 시절에는 그저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는 걸 생각하면 세월의 힘이란 놀랍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외 다른 조연들도 나름대로 그 이미지가 잘 전달됐다고 본다. 오히려 유나라는 캐릭터를 어거지로 띄우려고 하는 부분들만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게다가 이는 전문 성우가 아닌 아이돌스타(라 추정되는 인물)을 주연급 인물들 역으로 기용하면서 어색한 연기와 함께 더욱 불만스럽게 불거져온다. 이는 세가의 쉔무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며 목소리만을 연기하는데 있어서는 당연히 전문 성우를 기용했어야 한다.

이번 FF X에서 기존의 시리즈에 비해 가장 큰 차이를 들자면 역시 어떤 토속적인 느낌, 지역색이라는 것을 살리려 애쓰고 있다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환타지의 세계관이었던 5탄까지. 산업혁명과 기계문명, 그리고 환타지세계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6탄, 사이버펑크적인 느낌을 주던 7,8탄. 그리고 다시 과거의 환타지로 돌아간 9탄에 비하자면 상당히 독특한 구조다. 이러한 느낌은 Game Arts사의 루나시리즈 혹은 그란디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요소이다. 물론 게임아츠의 작품들처럼 그런 지역색이 생생하게 살아 느껴진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기존의 FF시리즈에 비교해볼 때 이색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음악에 대해 논하자면 역시 개인적으로 우에마츠 노부오의 음악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에마츠 노부오 특유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음악이긴 하지만 그저 그럴 뿐이고 어떤 새로움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그다지 인상적인 음악도 아니다. 그래도 이번 작품에서는 FF시리즈 사상 최초로 다른 음악 스탭이 참여하고 있어서 곳곳에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느껴지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던 곡은 메인테마인 자나르칸드에서와 곡 제목은 잘 모르지만 마지막 제크토와의 전투에서 흘렀던 락 풍의 BGM정도였으며 그 외에는 이렇다할 괜찮은 곡은 없었다. 어쨌든 우에마츠 노부오의 음악은 ‘FF’라는 게임 덕분에 평가절상된 것이지 그의 음악 자체가 천재성을 띄고 있거나 어떤 불후의 명곡을 남긴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나름대로 실력은 있는 편이고 가끔씩 괜찮은 곡도 쓰는 편이기에 취향에 따라서 괜찮게 들을 수도 있긴 하다.

FF 11은 온라인게임의 형식으로 나온다고 하기 때문에 별로 관심은 없다. 오히려 FF 12를 마츠노 야스미(*)가 디렉터를 맡는다는 설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게임 자체는 범속해졌지만 아직은 이름값만으로도 200만개는 팔리는 ‘초대작’ 소프트 FF시리즈. 아마도 완결편으로 내정돼있는 12에서는 그 이름값에 걸맞는 멋진 작품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이만 줄일까 한다.

* 마츠노 야스미 : 이 페이지의 오우거배틀란에서 ‘퀘스트 스탭의 스퀘어 이적소동’ 참조

  3 Responses to “[2002/3/13] Final Fantasy X”

  1. … 이거랑 전혀 관련없는 리플이지만;;

  2. 아까 조각조각난 링크를 타고 게시판을 훑었는데,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3. 잡담/게스트란을 찾았으나 이미 창을 닫아버린.. ;; 여기다 끄적이고 갑니다. 아무튼 FFX는 샀는데, 너무 복잡해서 엔딩은 못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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