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2002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남들은 메이저리그다 박찬호다 혹은 일본 프로야구다 말이 많지만 나는 우리나라 야구가 좋다. 솔직히 수준은 해외 야구보다 떨어지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근 수 년간 우수 선수들이 모조리 해외로 빠져나가버리는 바람에 더욱 재미 없어진 것도 사실이다. 해외로 나간 자원이 대부분 투수라는 점으로 인해 극도의 투저타고현상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올해 열렸던 월드컵으로 인해 현재 국내 프로야구는 관중 동원면에서도 극도의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외 야구보다는 국내 프로야구가 좋다. 아무리 재미 없어지고 수준이 떨어져도 같은 땅에서 숨쉬는 좋아하는 팀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 더 좋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 팀은 바로 LG Twins이다.

내가 왜 트윈스의 팬이 됐는지를 생각해본다. 트윈스의 전신은 프로야구 원년에 창단했던 MBC청룡이었다. 당시 청룡에는 김재박이라는 걸출한 유격수가 있었고 4할타율의 신화를 기록한 백인천이 있었으며 원년 개막전 만루홈런의 주인공 이종도가 있었다. 특별히 야구에 열광했던 건 아니지만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청룡이라는 팀에 대해 의식하고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90년 MBC청룡은 LG그룹(당시 럭키금성)에 의해 인수되고 LG트윈스로 팀 이름이 바뀌게 된다. 역시 당시에도 야구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어쨌든 창단 첫해 우승을 거머쥐게 되고 거 어린 시절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김재박이 우승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쨌든 역시 이때까지만 해도 야구에 큰 관심은 없었다.

고2였던 93년 어느날의 일이었다. 간만에 야자를 하지 않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왔던 그날 나는 심심해서 TV를 틀었는데 TV에서는 프로야구 경기의 중계를 하고 있었다. LG와 해태의 경기였고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당시 LG는 해태에게 치열한 추격전을 벌이며 1위의 자리를 넘보고있었다. 그만큼 빅게임이었고 전국적으로 팬을 보유한 명문구단 해태와 새로이 떠오르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의 인기구단 LG였기에 그 열기는 더욱 치열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 경기는 박빙의 승부였다. 아슬아슬한 가운데 1점차로 뒤진 LG. 아마도 루상에 주자가 나가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타석에는 왠지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선수가 서있었다. 그는 3루타를 쳐서 동점을 만들고 홈까지 쇄도하려 들다가 멈추는 듯 했으나 당시 외야수의 악송구로 인해 공은 포수의 뒤로 넘어가버리고 그 선수는 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리고 호쾌한 슬라이딩, 그러나 슬라이딩의 거리는 짧았고 홈을 약 50cm 앞에 두고 멈춰버렸다. 그래서 홈플레이트를 버둥버둥 기어가면서 홈인을 했고 그날 경기는 LG가 1점차 승리를 했으며 나는 그 홈인하고 나서 싱글거리던 선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선수의 이름은 송구홍이었다.

그로부터 조금씩 관심을 지니고 지켜보게 된 야구 경기, 그러나 그 해 LG는 후반기에 체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며 연패를 하고 4위까지 떨어졌다. 준플레이오프에서 OB를 꺾고 올라갔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에게 패배했고 그 삼성은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친 끝에 해태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93시즌은 끝이 났다.

다음해, 나는 고3이 됐고 프로야구 ’94시즌이 개막됐다. 반에서 야구를 좋아하던 친구들은 나에게 어느 팀의 팬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그 전까지 특별히 어느 팀을 응원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나 그때는 자신있게 LG를 좋아한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개막 당시 중위권 전력으로 예상되던 트윈스는 그 해 의외의 승승장구를 거두며 초반부터 1위로 치고 올라간다. 그리고 어느날 나는 스포츠신문을 통해 대 롯데전 15-1의 대승 소식과 그 경기에서 신인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면서 6타수 5안타를 쳐낸 서용빈이라는 선수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서용빈은 유지현 김재현과 함께 사상 유례없는 신인돌풍 – 신인3인방 – 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마시절 화려한 명성을 날린 다른 두 명과는 달리 프로 입단 당시에는 거의 무명이었던 이 선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루수로서 장타력은 부족하고 발도 느리지만 오직 뛰어난 타격 테크닉으로 3할을 기록하던 그의 모습이 대단히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결국 LG는 그해 1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서용빈은 타격 4위, 최다안타 2위(역대 신인 최다안타, 아직도 깨지지 않았음) 등 전인미답의 경지를 밟으며 팀내 최고의 교타자의 이미지를 굳힌다. 무엇보다 94년 태평양과 벌였던 한국시리즈, 그는 매 경기마다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4연승으로 우승을 거두는 가운데 세 차례의 1점차승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 비록 한국시리즈 MVP의 자리는 8이닝 가까이 투구를 하면서 단 2안타만을 내주면서 무실점으로 1승 2세이브를 기록한 김용수가 차지했지만 타격에 있어서는 서용빈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손쉬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95시즌에도 그는 2년생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해지도록 좋은 활약을 하면서 2년 연속 3할과 전경기 출장을 기록한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이광환 전 감독의 조급증과 무리한 운영으로 인해 롯데에게 패배했지만 서용빈 개인으로서는 그리 나쁜 시즌은 아니었다. 그러나 ’96년에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시즌 내내 부진하더니 결국 중반에 도중하차하고 만다.

그러나 ’97년, 그는 되살아났다. 여전히 장타력은 부족하지만 타팀의 1~20홈런을 쳐내는 타자들과 비슷한 수의 타점을 기록하는 클러칭 능력을 자랑하면서 다시 3할을 기록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97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 LG는 1점차로 뒤지고있었고 9회말 투아웃에 주자는 1,2루. 마운드에는 LG킬러로서 명성이 높았던 성준이 올라있었다. 삼성으로서는 아웃카운트 하나만 더 잡아내면 바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상황이었다. 좌타자는 좌투수에 약하다는 통념에 따라 서용빈의 타석에서 감독은 대타를 내려고 했지만 서용빈은 여기서 항명을 한다. 방망이를 꼭 붙들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수도 있었지만 감독은 선수의 뜻을 존중해줬고 결과는 서용빈의 끝내기 2루타였다. 그때 느꼈던 그 카리스마와 감동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94년 영광의 주역들인 당시 신인 3인방이 다시 뭉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있던 찰나, 그때부터 서용빈 수난의 세월이 시작된다. 부상, 병역파동, 기타 등등. 2년을 통채로 결장하더니 그 이후로 제대로 동계훈련조차 참여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한 공백과 훈련부족 속에서도 2001 시즌에 복귀한 그는 3할은 안 되도 적어도 평균 이상의 타율은 기록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올 시즌, 그는 시즌 중반까지 3할을 넘나드는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대한민국 남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병역문제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오는 19일이면 그는 공익근무로 입대하게 되고 오늘(14일)은 그의 고별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경기 자체는 후반에 집중력을 발휘한 LG의 승리였으며 서용빈은 3타석 1사사구 무안타로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다. 어느덧 30줄에 접어든 그가 또다시 3년 가까운 공백을 겪게 된다면 선수생명은 사실상 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LG 트윈스 팀의 입장에서도 당장 그의 공백을 매울만한 마땅한 선수는 보이지 않으며 이 기회에 장타력 있는 유망한 신인을 키우는 편이 나을 거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그는 내가 야구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선수였다. 한때 매일같이 스포츠신문의 기록표를 뒤적였던 것도 서용빈의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은 그가 몇개의 안타를 기록했는지, 타율의 변동은 어땠는지, 타격순위 몇위에 올라있는지.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각종 기록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야구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기량 측면을 떠나 완전한 무명의 선수가 묵묵히 노력한 끝에 어느날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는 것 또한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신데렐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빠른 발도 강한 힘도 지니지 못한 선수가 오로지 자신의 타격 기술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는 것 또한 흥미진진하기도 했었다. 그가 장타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1루수로서는 쓸모없는 선수취급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지만 난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는다. 적어도 국내에서 가장 긴 펜스거리를 자랑하는 잠실구장에서 매년 꾸준히 두 자리의 홈런을 기록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 매년 2~30개의 홈런을 기록하던 슬러거라고 해도 LG나 두산으로 이적해오면 홈런의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양준혁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기동력과 정교함을 갖춘 가운데 양념처럼 조화되는 장타력이지 무작정 슬러거들만 모인다고 해서(사실상 잠실에서 그만큼 홈런을 때려내는 슬러거라는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지경이기에 현실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되는 것은 아니다. 전년도 우승을 차지하고 올해도 시즌 중반까지 1위를 넘보던 두산이 지금 추락하고있는 이유도 그러한 조화를 상실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도 서용빈 같은 스타일의 타자의 가치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오늘은 그의 고별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대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3년 뒤에도 돌아와서 주전으로 뛰는 것은 사실상 무리겠지만 그의 뛰어난 타격 재능이라면 최소한 지금은 은퇴한 김영직 같은 스타일의 대타요원으로라도 요긴하게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잠실구장에서 그를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며 이 무의미하게 장황한 글을 마친다.


오늘 입장객에게 나눠준 그의 등번호 62번이 적힌 수건. 조금 늦게 들어가서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 장 줏어오는 것에는 성공했다(..)

1. 이가진 :… 잘 다녀오세요 서용빈 선수 /~ [08/16]
2. 룬 :감동스러운 그것이었지. 무려 *** 통 에서 찾은 그 수건은 (….) [08/16]
3. 룬 :하지만 그의 복귀를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기다릴거야. 암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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