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2002
 

http://www.imagica.com/shop/tutu/1990년대 후반 이후 미디어 전반의 질적하락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고있습니다. 게임, 만화, 영화, 음악 등등 어디를 보아도 이전만한 신선함은 느껴지지 않고 발상의 한계에 부딪쳐있으며 그러다보니 자꾸만 과거의 것으로 회귀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만 그조차도 여의치 않은 편입니다. 이 점에 대해 깊게 얘기하자면 터무니없이 길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로 이 정도로만 간략히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하여튼 그런 와중에서도 가끔씩 뒤통수를 강타하면서 아직 완전히 희망을 버릴 시기는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나오곤 하는데 지금 얘기하는 프린세스 츄츄라는 애니메이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츄츄란 정확히는 Tutu, 발레리나들이 무대에서 입는 스커트 모양의 의상을 말하는 것이며 튀튀라고 읽어야 정확할 겁니다. 어쨌든 이 작품은 그러한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발레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발레라 하면 모 열혈 만화 작가가 그린 발레의 우아함과는 일절 거리가 먼 호러 발레만화를 연상할 수도 있고 혹은 본격적인 발레의 세계를 그린 또 다른 만화를 연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동화와 현실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린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한 이야기를 쓰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자와 큰 까마귀가 싸우는 이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끝맺음짓기 전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야기속의 왕자와 까마귀는 이대로는 있을 수 없다면서 이야기 밖으로 뛰쳐나오고 맙니다. 왕자는 자신의 심장을 칼로 산산조각내는 금단의 방법을 사용해서 까마귀를 봉인하지만 왕자의 흩어진 심장은 마을의 곳곳에 흩어지고 마음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오리 – 진짜 오리입니다 – 는 죽었어야 할 터인 작가 드롯셀마이어 – 발레극 호두까기인형에 나오는 소녀 클라라의 삼촌의 이름과 같습니다 – 의 힘에 의해 인간의 소녀가, 그리고 왕자의 흩어진 마음을 되돌려줄 유일한 존재인 프린세스 츄츄가 됩니다. 그러나 프린세스 츄츄는 왕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사라져버릴 운명에 처해있고 그렇기에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꺼리지 않고 받아들일 유일한 존재가 평소에 왕자님을 동경하고 있던 주인공인 아히루(오리)뿐이었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많은 동화들과 발레극들에서 그 모티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아히루의 컨셉트는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 등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중간중간에 실존하는 발레극의 줄거리를 차용한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4화의 지젤에서 그로기상태에 빠지고 11화 라 실피드에서 한 번 다운당했다가 1부인 ‘알의 장’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3화 백조의 호수에서 넉아웃당했다고나 할까요. 그러한 내용의 배치가 너무나 절묘해서 사람의 혼을 빼놓습니다. 참고로 각 발레극의 스토리 설명을 볼 수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웹사이트상에 있는 링크를 덧붙입니다.

게다가 장면 장면마다 쓰인 클래식 곡들이 너무나 분위기에 잘 어울립니다. 제일 많이 사용되고있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해 주로 19세기의 표제음악들이 BGM으로 쓰이고 있으며 시각적인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하는 이러한 음악들의 절묘한 배치는 작품의 분위기를 1류의 작곡가가 이 작품만을 위해 따로 곡을 작곡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잘 어울리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할 정도로 뛰어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뛰어난 점은 그런 음악과 함께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있는 훌륭한 작화와 장면 장면의 연출입니다. 미소녀전사 세라문, 마법사 Tai 등에서 총감독을 맡았던 사토 쥰이치와 작화감독 혹은 캐릭터디자이너를 맡았던 이토 이쿠코씨의 역량은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있습니다. 이 작품의 핵이라 할 수 있기에 조금만 어설퍼도 작품 전체를 망칠 우려까지 있는 발레 동작의 묘사를 위해 제작진은 일본의 미노리 발레스튜디오라는 곳의 협찬을 얻고 있고 덕분에 이 점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화 지젤에서 윌리의 소녀와 루우가 춤추던 장면이나 13화 백조의 호수에서 기사와 흑조의 군무 장면 등의 연출과 음악의 매칭을 너무나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부분은 아무리 글로 전달하려고 해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리라 여깁니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이라면 성우들의 연기력입니다. 이 점은 전술한 미디어 전반의 질적 하락에도 연결돼있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일본에서 90년대 후반 이후에 데뷔한 성우들의 연기력은 그 이전에 데뷔한 중견 성우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편이고 목소리의 개성 또한 부족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래도 중견 성우라 할만한 사람은 고양이선생님의 마츠모토 야스노리씨나 에델 역의 히라마츠 아키코 정도이며 이들의 연기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주역급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신인급 성우들을 기용하고 있고 덕분에 중요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있어선 어딘가 역량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아직 미완인 상태이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이제 2부인 ‘새끼오리의 장'(원래는 ‘병아리’라는 뜻인 雛(ひな)라는 단어가 사용됐지만 일단은 편의상 이렇게) 방영에 돌입한 상태이며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남겨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저 인기에 따른 연장방영 같은 것이 아닌 애초에 계획된 특정한 구성 상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바이고 지금까지 방영된 부분만을 놓고 봐도 개인적으로는 소녀혁명 우테나 이후 최고의 TV 애니메이션이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아마도 이런 페이스는 엔딩까지 유지될 것이라 예측하는 바이며 그렇기에 빨리 결말을 보게 될 날을 기대합니다.

P.S. 여담입니다만 현재 2부는 1주일에 반 화, 즉 15분에 조금 못미치는 분량을 방영하고있으며 그 잔혹한 방영 페이스 덕분에 차라리 2주일에 1화분을 방영하라고 절규하고있을 정도입니다.

P.S.2 사용한 이미지는 이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 메인메뉴화면에서 긁어온 것입니다.

  3 Responses to “[2002/11/26] 프린세스 츄츄”

  1. 모 열혈작가의 호러 발래란 혹시 스바루….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ㅋㅋ

  2. 같은 감독의 ‘카레이도 스타’ 는 보셨습니까?

    츄츄도 좋지만..개인적으로는 츄츄보다 더 높게 치는 작품입니다.

  3. 디온 // 봤습니다.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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