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2003
 
내가 김용소설을 만났을 때

아마도 내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집에 있던 소설책들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재밌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뭔가 재밌는 책이 없나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님이 영웅문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셨고 당시 읽어본 무협지라고는 만화가게에서 빌려봤던 양자강이라는 그렇고 그런(그래도 처음이었기에 제목까지 기억한다.) 무협지뿐이었기에 별 기대는 안 하고 그냥 생각 없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침식을 이룰 수가 없었다. 너무나 재미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게임과 만화와 영화와 소설들을 접해왔지만 순수하게 ‘재미’라는 측면에 있어서만 해도 김용의 소설처럼 빠져들게 하는 작품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보다가 다음 권이 보이지 않으면 그날 밤은 답답해서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너무나 재미있게 영웅문을 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웅문 3부를 모두 독파하게 됐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도 뿌듯하게 가슴에 남는 여운, ‘아 이런 것이 진정한 감동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김용의 다른 작품이 없을까 알아보게 됐다.

그렇게 해서 김용의 작품들을 하나 둘 찾아 읽어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빌려 읽기만 하던 책들을 결국 한 질 두 질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사서 소장하게 된 작품은 읽고 또 읽어도 무궁무진한 재미가 있고 절대로 질리지 않았으며 볼 때마다 그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김용의 작품들을 읽는 데에는 상당한 수준의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 덕분에 중국 역사의 개요가 보이게 됐고 한문도 꽤나 많이 읽을 줄 알게 됐으며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 했다. 그 뿐 아니라 독서라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는 이후 독서를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삼게 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해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 나는 이렇게 훌륭한 책을 모두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같은 반 애들에게도 책을 마구 빌려주고 김용의 작품을 홍보하려고 애를 썼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김용의 작품을 보게 된 아이들도 더러 있긴 했지만 대개는 ‘무협지 따위가’ 라는 식으로 대하면서 김용 소설의 문학성에 대해서 떠드는 나를 이상한 놈 취급하고는 했다. 특히 국어 선생님이 그런 태도를 보이면 정말로 가슴이 아팠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차례의 좌절을 겪은 후 나는 김용의 소설들을 그냥 혼자서만 고이 간직하면서 보기로 결심했다. 책도 험하게 보는 녀석들이 많아서 상할 대로 상한 책은 새로 사기도 했고 번역본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매일 같이 읽던 김용의 소설들도 점점 보는 빈도가 뜸해져서 이제는 가끔씩 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편당 최소 10여번 이상씩은 읽었다고 생각한다. 6~7번 정도 읽을 때까지는 이번이 몇번째 읽는 건지 새보던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어느날 보고싶으면 찾아 읽는다. 지금 가슴아픈 건 군대를 제대하고 나니 전질을 모아놨던 김용소설의 상당수가 없어져있다는 것이다. 다시 사모아야 할 텐데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어쨌든 게임과는 별도로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게 될 것, 그것이 김용소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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