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2003
 
당연한 얘기지만 김용은 중국인이다. 그의 작품들은 중국인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며 그렇기에 중국인의 사상, 감정, 역사, 지리, 생활 등이 녹아 들어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느끼게 되는 한 가지의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인 특유의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관한 것이다. 김용의 작품들에는 집필된 시기에 따라 조금씩 확대 해석되는 변모한 중화사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그의 작품들 – 주로 녹정기 – 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알아보도록 하자.

김용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면 주로 한인 우월주의가 바탕에 깔린 일반적인 형태의 중화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중국 대륙이 이민족에 점거 당했고 그에 항쟁하던 시대를 그리고 있다. 데뷔작인 서검은구록에서는 만청(滿淸)에 대항하는 홍화회(紅花會)라는 가상의 조직을 내세우고 야사에나 등장할 소재인 건륭한인설(乾隆漢人說)을 사실처럼 쓰고 있으며 심지어 건륭을 주인공 진가락의 형제로 설정하고 있다. 사조영웅전 3부작에서는 남송(南宋)으로부터 원에 이르는 여진족과 몽고에 대한 항쟁을 그리고 있으며 이러한 시대를 민중들에게 있어서의 암흑기로 묘사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이들 이민족을 물리쳐야 하는 사명에 불타는 영웅들로 설정돼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은 그의 후기작품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게 된다. 천룡팔부에서는 주인공인 소봉의 출생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고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하는 부분, 한족만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여러 장면들에서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념의 변화는 그가 마지막으로 완결지은 작품인 녹정기에서 극에 달하게 된다. 주인공 위소보는 기녀원에서 자란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다. 마지막 장면에서 위소보가 그의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보자.

위소보는 어머니를 방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다짜고짜 물었다.
[어머니, 나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지요?]

위춘방은 눈을 부릅떴다.

[내가 어떻게 아니?]

위소보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니가 뱃속에 나를 잉태하기 전에 어떤 손님들을 받았나요?]
[그때 너의 어머니는 매우 예뻤단다. 그래서 매일 여러 손님들이 찾아들곤 했는데 내가 어찌 그들 모두를 기억할 수 있겠느냐?]
[그 손님들은 모두 한인들이었나요?]

위춘방은 말했다.

[물론 한나라 사람도 있었고, 만주의 벼슬아치도 있었으며, 또 몽고의 무관도 있었다.]
[외국의 귀신 같은 작자는 없었나요?]

위춘방은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너의 에미가 썩어 문드러진 갈보인 줄 아느냐? 외국 귀신들마저도 받게? 빌어먹을! 나찰귀, 홍모귀(紅毛鬼) 들이 여춘원으로 들어올 때마다 이 에미는 빗자루로 그들을 쓸어 냈단다.]

위소보는 그제서야 안심을 했다.

[그것 참 잘하셨습니다.]

위춘방은 고개를 쳐들고 옛일을 희상해 보다가 말했다.

[회족(回族) 사람이 있어서 종종 나를 찾아왔는데 그의 얼굴 모습이 매우 준수했단다. 나는 종종 너를 볼 때마다 너의 잘생긴 코가 그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

위소보는 말했다.

[그러면 한인, 만주인, 몽고인, 거기에다가 회족 사람까지 있었군요? 그럼 서장 사람은 없었나요?]

위춘방은 크게 의기 양양해져서 말했다.

[어째서 없었겠느냐? 그 서장의 라마는 침대 위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불경을 외웠지. 불경을 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눈동자를 슬금슬금 굴려서 나를 쳐다보았단다. 너의 눈동자가 흘금거리는 것을 볼 때면 그 라마를 보는 것 같다니까!]

이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위소보는 다수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어느 민족에 해당되는지조차 알 수 없게 설정돼있다. 이러한 위소보의 애매한 출생 설정은 그가 반드시 반청복명이라는 대의명분에 얽매여야 할 이유가 없었고 만주족인 강희제와의 우정과 한인을 대표하는 조직인 천지회에 대한 의리 사이에서 갈등했던 부분에 대한 당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용의 기존의 작품에서 보이던 한인 우월주의를 통한 중화사상이 점차 확대 해석되어 중국이라는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의 중화사상으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결국 김용이 이 보다 포괄적인 중화사상에서 강조하는 것은 서양 문물에 대한 경각심이며 동양인이 절대 그들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정성공이 대만의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는 일화에 대한 부분, 위소보가 러시아에 건너가서 폭동을 선동하는 부분, 그리고 후일 위소보가 흑룡강 일대에 출정해서 승리를 거두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는 부분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다음은 녹정기에서 네르친스크 조약 중 국경선 결정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흑룡강 일대의 땅을 러시아가 점거하고 있었으니 러시아의 땅이라는 말에 협상에 참가하고 있던 색액도가 갑자기 그렇게 따지자면 모스크바는 중국의 땅이라면서 반박하는 부분이다.

[이 징기스칸은 우리 중국에서 원태조(元太祖)라고 부르고 있소. 왜냐하면 그는 우리 중국에서 원나라를 창건하신 태조이기 때문이오. 그는 몽고사람이오. 귀사도 방금 말했지만 만주 사람이나 몽고 사람, 그리고 한인은 모두 중국 사람이며 전혀 차이가 없다고 했소. 그때 몽고의 기마병은 서쪽을 정벌하였는데 한때 나찰 군사와 크게 몇 번 싸운 적이 있소. 귀국의 역사책에 똑똑하게 기술되어 있을 것이오. 그 몇 차례의 커다란 싸움에서 우리 중국인이 이겼소? 아니면 귀국의 나찰인이 이겼소?]
비요다라는 잠자코 있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몽고인이겠죠.]

색액도는 말했다.

[몽고인은 중국 사람이오.]

비요다라는 한참 동안 눈을 부릅뜨고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위소보는 옛날의 일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와 같은 말을 듣자 새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중국 사람과 나찰 사람이 싸움을 한다면 나찰 사람은 반드시 지게 마련이오. 그대들의 재간은 확실히 뒤떨어지지요. 다음에 다시 싸운다면 우리들은 그저 한 손으로 싸워도 충분할 것이오. 그렇지 않을 때는 쌍방의 격차가 너무나 심해 싸워도 아무런 재미가 없을 것이외다.]

이 장면을 통해서 김용은 자신의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이민족에 대해 그어왔던 경계선을 없애고 그들을 명확히 ‘중국인’이라는 틀에 묶고 있으며 당시 강대국이었던 러시아를 징기스칸에 대한 인용을 통해 기존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한족 – 이민족의 구도, 즉 한족보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중국인 – 서양인의 구도로 옮겨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민족의 한족 지배에 대한 관점도 달라진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초기의 작품들은 ‘이민족에게 지배받던 시대 = 암흑기’라는 단조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족이 차별대우를 당했던 원, 한족이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조공을 바쳐야했던 남송 시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왕조 교체기때마다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중국 역사상 과연 그것이 한족만으로 이루어지던 시대보다 암울했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위소보와 강희의 대화를 통해 한인으로 이루어진 왕조라도 어리석은 황제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며 그 때마다 민중들은 고생했어야 했다는 점을 역설한다. 오히려 녹정기에 등장하는 대내적으로 강희제는 민생을 안정시키고 내란을 제압하며 대외적으로 중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명군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의 김용이 직접 썼던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다.

나의 초기 작품들은 한나라 왕조의 정통성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매우 강했다. 하지만 후기에 이르러서는 중화민족의 각 민족을 한 울타리로 보는 관념이 기조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모두 나의 역사관이 세월을 거쳐 진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천룡팔부(天龍八部)><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녹정기(鹿鼎記)>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녹정기>의 주인공 ‘위소보’의 부친이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서장족 중 하나일 가능성이라든지, 제1부 소설<서검은구록>에서의 주인공인 ‘진가락’이 후에 회교로 귀의한다는 설정을 해놓아 민족의 관념에서 좀더 자유로워졌다.

어떤 민족, 어떤 종교, 어떤 직업이든 그 어느 곳에서든지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나쁜 황제가 있으면 좋은 황제도 있고, 몹쓸 대관이 있으면, 백성을 정말로 사랑하는 대관도 있을 것이다. 책 속에 나오는 한족, 만주족, 거란족, 몽고족, 서장족 등 역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스님, 도사, 라마승, 서생, 무사 등 모든 등장인물은 각양각색의 개성과 품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독자들은 주인공들을 딱 둘로 나누어, 좋고 나쁜 사람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각각의 상황을 추론하여 전체 집단을 판단하는데, 이는 절대로 작가의 본 뜻은 아니다.
역사상의 사건과 인물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송과 요나라 때, 원과 명나라 때, 그리고 명과 청나라 때에 한족과 거란, 몽고, 만주족 등 사이에 격렬한 민족투쟁이 있었다. 몽고와 만주족은 종교를 정치도구로 이용했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모든 부분들은 모두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관념과 생각들이며, 이는 후세나 현대인의 관념을 그대로 본따 묘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역사와 민족에 관한 시각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변하고 있고 중국인이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기에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조금 거리낌이 일어나는 사상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글에 담겨있는 사상의 함축도는 더욱 높아지고 원숙해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런 작가의 사상의 변화를 직접 읽으면서 느껴보는 것 또한 김용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4 Responses to “김용소설에서 보이는 중화사상”

  1. 처음 뵙겠습니다. 음 읽어보니 근래에 동북공정이 생각나서 좋게만은 볼 수가 없군요. 중화주의자가 근래의 시류에 편승했다고 보여지는 건 편견일까요?

  2. 열혈 // 무슨 뜻으로 말씀하신 건지는 잘 알겠습니다만 김용 선생이 저 작품을 쓴 건 1970년대 초반이고 동북공정 운운 하는 게 화두로 떠오른 건 채 수 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근래의 시류에 편승했다고 하는 건 상당한 어폐가 있습니다.

    제가 역사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깊이 아는 바는 아니지만 말씀하신 동북공정의 뜻이 중국 내의 극우적인 민족사관에 근거한 자국 중심의 역사 왜곡을 뜻하는 것이라면 김용의 작품들은 그러한 내용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김용의 원작들에서 보이는 역사관에 대한 이해를 지니셨다면 길게 설명드릴 필요는 없으리라고 봅니다만 제가 이 글에서 쓰고자 했던 내용은 그러한 시대별 작품에서 보이는 민족관의 변화의 흥미로움이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 사상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습니다만 김용도 중국인인 만큼 소설에 중국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들어간 건 사실입니다만 거기에서 의도적으로 타국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이 들어간 건 아닙니다.

  3. 영웅문을 보다가 천룡팔부를 보면서 느꼈던 점이 다 이야기 되었군요. 그런데 영웅문이 천룡팔부보다 먼저 써진 것은 맞나요?? 제가 자세한 정보는 잘 몰라서요 ^^;;
    제 생각에는 영웅문에서 보여진 중화사상과 자민족 중심주의적이던 태도가  천룡팔부를 통해서 달라졌음을 느꼈거든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 예 사조영웅전 3부작은 김용의 15작품 중 비교적 초중반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대충 사조영웅전이 서검은구록과 벽혈검을 집필한 다음이고 의천도룡기가 중반쯤에 해당합니다. 천룡팔부는 녹정기, 월녀검, 협객행과 소오강호 이전에 집필된 작품입니다.

      아무튼 예전에 끄적였던 잡문에 공감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김용의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놓고 보면 작가의 사상의 변화가 보이는 게 꽤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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