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12003
 
2002/5/22(수)

Grandia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SegaSaturn, Playstation

이 게임이 발매된 1997년 12월 18일로부터 만으로 벌써 4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필자가 이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본 것은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1998년 10월 무렵이었다. 이 홈페이지에도 일본의 게임비평지에 실렸던 비평의 번역글이 올라와있고 나 자신도 모 게임잡지를 통해 이 작품의 비평을 쓴 일이 몇번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흘러간 게임의 비평을 또 쓰게 되는 이유는 첫째는 하고픈 이야기를 만족스럽게 전달해낸 일이 없었다는 이유일 테고 둘째로는 그만큼 계속해서 애착을 지니게 만드는 작품이 이 그란디아라는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몇번이고 망설이다가, 내가 이 게임을 해보고 받은 감동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주저하다가 결국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기게 된다.

모험, 희망, 꿈, 우정, 사랑. 이제는 진부한 테마이다. 수많은 동화, 만화, 기타 여러 가지 매체들 – 주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 을 통해 너무나 많이 쓰여온 테마이다. 이러한 소재에 식상한 사람들 – 여기서는 게이머 – 은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찾기 시작하고 게임들 또한 그러한 노선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게임들에서는 무겁고 진지한 테마를 다루려 애쓰게 되고 게이머들은 ‘가벼운’ 작품은 취급하려 들지도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게임 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그렇게 우리를 설레이게 만들었던 최초의 소재들, 모험을 위시한 그러한 이야기들은 점차 잊혀지게 된다. 그러한 와중에서 그 진부한 ‘모험’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들고 나온 작품, 그것이 바로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당시로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자체가 ‘모험’일 수도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당시 나오던 게임들은 그런 ‘무겁고 심오한’ 분위기를 주류로 하고 있었고 게다가 같은 해에 발매된 Square사의 Final Fantasy 7의 성공으로 인해 당시 업체들의 분위기는 FF7과 유사한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면 팔린다는 인식이 퍼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너도나도 그러한 타성에 젖은 아류작들만을 내놓는다면 과연 게임이란 걸 하는 재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런 어줍잖은 진지함과 무거움이 양산되는 가운데(물론 개중에는 오우거배틀 같은 훌륭한 작품도 있었지만..) 과연 할만한 게임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런 와중에서 나온 게임이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며 그러한 현실은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더이상 모험이 없으며 세계의 끝 너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설정으로 반영되게 된다. 작품의 스케일과 제작기간, 그리고 퀄리티로 볼 때 단순히 판매량만으로만 보면 100만개는 당연히 넘겼어야 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결국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며 말하자면 ‘모험’이란 단어는 모험으로 끝났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작품을 그러한 척도로만 평가해야 하는가?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에는 단순한 상업적인 측면을 뛰어넘은,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게임의 배경은 우리가 사는 현실로 따지면 대략 산업혁명을 전후한 정도의 느낌을 주는 시대가 된다. 거기에는 과거 ‘정령’과 ‘광익인(光翼人)’의 힘을 이용해 엔쥬르라는 위대한 고대문명을 이룩한 자들이 있었고 그러한 고대문명의 유적들을 발굴해내는 모험가들이 있었다. 대륙의 끝에는 ‘세계의 끝’이라고 불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있고 사람들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흘러가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세상엔 더이상 모험이라는 것을 할 여지는 없으며 모험가란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도중 항구도시 팜에 사는 저스틴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위대한 모험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이 소년은 자신은 위대한 모험가가 되겠다고 늘 큰소리치며 마을에서 말썽꾸러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소년의 가장 큰 보물은 아버지의 유물인 정령석. 그리고 엔쥬르 문명의 유적을 발굴한 할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모험가가 되는 것이 소년의 가장 끈 쿰이다. 그러던 도중 어느날 가라일 군의 유적 발굴 현장에서 아렌트의 리에테라는 미소녀와 만나게 되고 세계에 ‘끝’이란 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 저스틴은 드디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척 보기에도 진부해보이는 이 스토리. 실제로 플레이를 해봐도 스토리 자체에 어떤 참신함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플레이를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침식을 잊고 이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이 이 게임을 그리도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기법적인 측면에서 따져보자면 우선 그 연출력을 평가할 수 있다. 시기적절하게 나오는 동영상, 그러면서도 그 동영상에만 의지하지 않고 그 전후의 연결을 절묘하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이와다레 노리유키씨의 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게다가 시스템이 참신하다. 360도로 3D 필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이곳저곳 헤매보기도 하면서 3D 필드 특유의 ‘보고싶은 곳을 보고 가고싶은 곳으로 간다’는 느낌을 훌륭하게 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전투시스템 중에서는 그 어떤 게임보다도 독창적이고 훌륭하며 박진감 넘치게 디자인됐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리하여 스토리와 스토리가 연결되는 고리에서 플레이어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게 되고 다시금 스토리가 전개되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다시 그 적절한 연출에 감동을 받으면서 스토리를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기법적인 측면이라고만 보기에는 이 게임의 스토리는 매우 탄탄한 설정들을 바탕에 두고 있다. 고대문명, 정령석, 광익인, 가이아.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차 이 작품의 환타지물로서의 ‘세계’를 느끼면서 그 내용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러한 탄탄한 설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은 ‘행복한’ 작품이다. 주인공 저스틴의 행동을 보고있으면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웃음이 나오게 된다. 또한 소년의 마음에 동조되어 어린 시절에 품었던 ‘모험’에 대한 동경이 되살아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변해간다. 덕분에 세상은 구원받고 결국에 가서는 모두가 –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조차 – 행복해진다. 단순한 진지함이나 무거움이 아닌, 때로는 이렇게 플레이하면서 감동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고 행복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게임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게이머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게임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하여 이 게임은 그러한 ‘세계의 끝’이라는 터부를 멋지게 깨부수고 플레이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Game Arts라는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근래 찾아보기 힘든 제작사, 그리고 미야지 타케시라는 뛰어난 디렉터가 아니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희대의 초절명작이 바로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감동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플레이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역대 일본 RPG 최고의 수작으로도 꼽고있는 작품이니 아직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구해서 해보도록 하자.

모종의 인물: 늦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  [05/25-01:28]
룬: 맞아. 진한 감동이 밀려오지 (……다 안깬사람이 할 소리냐 이게 –;… 근데 사실인걸!)  [06/17-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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