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32004
 
임재범은 전 시나위 보컬이자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는 국내 최고의 남성 보컬리스트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국내 뮤지션 중에서는 드물게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 듣는 편이었으며 그때마다 실망을 느껴본 일도 없었다. 아무튼 지난 10월 31일은 그의 오래간만의 라이브공연이 있던 날이었고 나는 그곳에 다녀왔다. 원래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가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때마침 회사에서 선착순으로 표를 나눠준다는 전체메일을 보고 잽싸게 신청해서 공짜표를 얻는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한 시각에 입장해서 좌석을 확인해봤다. R석은 아니고 S석이었지만 공짜이니 그런 것까지 연연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S석 중에서는 가장 최후미의 3층정도에 위치한 무대는 꽤 멀리 보이는 자리였다. ‘이게 어디가 S냐! B석이나 C석은 아예 없는 공연이었단 말이냐’ 하는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쨌든 공짜니까 그러려니 하고 참아주고 마음만은 앞쪽 너머에 보이는 R석의 제일 앞쪽으로 날아가서 공연 내내 함께 열광하며 헤드뱅잉을 하고있었다. 아무튼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공인 임재범이 무대에 등장했고 첫곡으로 ‘비상’을 부르기 시작했다.

임재범의 가창력에 대해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것도 라이브로 듣는 것이었다. 죽여주게 멋졌다. 특유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원숙함과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10월에 발매된 5집의 수록곡들을 불렀다. 처음 듣는 곡들이었는지라 곡명은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Rock에 가까웠으며 간만에 가슴떨리는 흥분을 느끼게 해주는 곡들이었다. 5집을 구입해서 들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으로 부른 곡이 그날의 논란의 여지가 될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그대는 어디에’. 잘 알려졌다시피 임재범의 음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이다. 고음 뿐만 아니라 저음 또한 거의 완벽한 처리를 해내는 그의 음역은 그야말로 괴물급이고 이번에도 그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저 곡의 하일라이트이자 가장 고음 영역에서 발성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전날 공연에서 무리를 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잘 안 나와 죄송하다는 멘트를 하긴 했지만 아쉬운 마음은 금할 길이 없었다. 더이상 젊은 나이는 아닌 만큼 이틀간의 공연이었으면 나름대로 배분을 하는 게 프로의 자세가 아니었을지. 그래도 전술한 바와 같이 목소리 자체는 더욱 원숙함을 뿜어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내내 전율했고 아쉬움을 달래며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시나위, 아시아나, 외인부대 등 80년대 한국 헤비메틀을 주도하던 시절의 곡들이 이어졌다. 나름대로 임재범의 변천사라고 해야 할까, 젊은 시절 파워풀하게 부르던 노래들을 지금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건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외인부대시절 불렀고 솔로데뷔 후 1집에도 실렸던 곡인 ‘Julie’에서도 다시 고음역 발성이 안 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전술한대로 더욱 원숙하게 곡을 소화해내는 데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앨범에 실린 몇곡을 부른 뒤 마지막 앵콜로 ‘이밤이 지나면’과 (아마도) 5집의 다른 곡을 부른 뒤 공연이 끝났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좋은 공연이었으며 다음 기회에는 보다 완전한 컨디션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길 기대한다. 라이브로 그 곡들을 듣고 와서 집에 와 음악을 틀어보니 도저히 맛이 안 나는 게 라이브에서 빛나는 가수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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