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2004
 
  중국의 무협소설을 보면 대체로 주인공은 억압받는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의인으로 등장한다. 김용의 녹정기에 등장하는 위소보나 고룡의 무협소설의 주인공들 같은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꼭 근현대의 신무협이 아니더라도 고전인 수호지 같은 경우를 봐도 악한 관리에 저항하고 백성들을 보호하는 의적들을 볼 수 있고 우리나라에는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판관 포청천의 경우도 저러한 의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행태를 보고있자면 과연 저 나라 사람들이 과연 그런 의협적인 인물들의 나라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월드컵 당시 중국의 축구팬들이 벌인 작태나 한중전에서 한국 응원단에게 벌인 난동,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여러 모습들은 과연 대국을 자처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를 보자.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279&hotissue_item_id=9900&office_id=105&article_id=0000001100§ion_id=7


습득 현찰 돌려줬다가, 이혼 당한 남자

[팝뉴스 2004-12-23 12:05]  

습득한 돈을 돌려준 한 남성이 가정 파탄을 맞게 되었다.
22일 DPA 통신이 ‘차이나 데일리’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럭 운전을 하는 한 중국 남자가 길에서 가방을 주었다.

그 속에는 휴대폰과 한화 360만원 가량의 현찰이 들어 있었고, 남자는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다.

하지만 난징에 거주하는 이 소박한 남자의 선행이 가정 불화를 야기했다. 아내와 가족들은 그 돈으로 빚이나 갚지 왜 굴러온 복을 차버렸냐고 쏘아붙인 것. 특히 아내는 남편에게 멍청하다 비난했다고 한다.

부부의 갈등은 6개월간 지속되었으며 아내는 ‘견딜 수 없이 멍청한’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버렸다.

팝뉴스 김민수 기자


  저 남자는 돈을 잃어 곤란해하고 있을 사람을 위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의협(義俠)의 개념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도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다. 즉 오히려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하는 사회가 오늘날의 중국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중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며 개중에는 저 기사의 남자와 같은 사람들도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무협지의 주인공들과 같은 뛰어난 무공과 지모를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조금 시각을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협소설들에 등장하는 의리의 사나이들이 아닌 평범한 일반적인 대중들의 성격을 봐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룡팔부에서 소봉이 거란인임이 밝혀지자 그때까지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던 군웅들의 태도가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부분들, 연성결과 비호외전의 보물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조차 안중에 없는 무리들, 소오강호의 겉으로는 명문정파를 표방하면서 실은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를 벌이는 각 문파의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저들은 작품 내에서는 독자들의 비난 내지 조롱을 받는 대상으로서 존재하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

  다시 관점을 돌려 한국의 무협을 살펴보자. 한국 무협소설들은 중국 무협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지만 그 성격은 매우 다른 한국인들만의 정서가 담긴 독특한 형태로 발전돼온 장르라 할 수 있다. 한국 무협이 중국 무협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을 들자면 중국의 무협은 주인공 개인을 중시함에 반해 한국무협은 주인공이 이끄는 조직을 중시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무협에서 천애 고아인 주인공이 절정의 무공을 쌓는 과정은 그리 길게 묘사되지 않는다.  반면에 주인공이 특정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돼서 여타 세력을 흡수하고 조직을 키워나가 마지막에 숙적이 이끄는 집단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숙적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보통 1~2페이지로 끝마치기 마련이다.

  이상이 한국 무협의 클리셰이지만 여기에서 왜 한국 무협이 이런 형식을 취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주인공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다 – 조직을 이끌어 키워낸다는 과정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뛰어난 통솔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인 발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고 자기 발전에 대한 열의도 높은 반면 그들이 조직으로서 뭉칠 때는 그다지 좋은 화합을 이룬다고 보긴 힘들었으며 특히 통솔자의 리더쉽은 여기에서 언제나 항상 문제시돼왔던 부분이다. 그렇다고 집단이기주의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특성 또한 일장일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종류의 얘기는 여기서는 접어두도록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뛰어난 리더를 갈망해왔지만 그러한 염원이 실현된 일은 역사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이웃나라인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무협이라는 장르는 없지만 대신 자신의 이상을 부르짖으며 싸운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와 우정과 근성을 부르짖는 열혈물이 있다. 그러나 저 나라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만만치 않게 배신과 암투로 점철된 역사를 자랑한다. 좁아터진 땅덩이가 수십개의 다이묘들의 세력으로 갈려 백여년간의 전란을 치렀던 전국시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 종식을 목전에 뒀지만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배신당해 죽었으며 아케치 미츠히데는 다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토벌당한다. 토요토미의 천하로 결말이 나는가 싶더니 후계자가 어리다는 빈틈을 탄 도쿠가와에 의해 다시 한 번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그들에게 있어 신선조나 쥬신구라 같은 이야기들은 더욱 값져보인다. 지난 월드컵의 예를 들어봐도 정작 한 편의 열혈물 같은 스토리를 실현한 것은 우리나라였지 일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의 스포츠물에는 언제나 그런 감동적인 드라마들이 나오지만 현실의 일본 국민들이 월드컵에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있어 이런 열광은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선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보면 왜 중국의 무협에서 이토록 많은 의협지사가 등장하는지의 답이 명약관화해진다. 의와 협이야말로 대개의 중국인들이 갖지 못한 특질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이러한 의협지사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모습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중국인이 나쁘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중국인들 중에도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좋은 사람들은 있을 것이며 다른 나라에도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이 주류에 속하느냐 비주류에 속하느냐에 따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협지사들이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는 중국사회였기 때문에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상적인 의협지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2 Responses to “중국무협의 의협(義俠)이란 개념에 관한 소고”

  1. 오오 한시 번역에, 급기야 컬럼까지..

  2. SKy // 아뇨 뭐 그냥 취미삼아 하는 거고 워낙에 졸역, 졸문이라 그다지 대단할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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