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2006
 
관련기사 : 진흥고 정영일 23K, ‘한국야구 신기록’
출처 : 하얀까마귀 아저씨 블로그

옛날에 본 야구만화 중 4번타자 왕종훈(원제 ‘4P 다나카군’)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키도 작고 평범해보이던 주인공이 알고 보니 상당한 재능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 노력을 통해 팀의 주축으로 성장해서 이겨나간다는 전형적인 스포츠근성물이다. 대충 10여권은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보던 도중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다.

원판을 못본 관계로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고 번역판에서의 이름이 ‘원통한’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3학년 선배가 있다. 140km대의 직구에 낙차 큰 포크볼을 던지는 초고교급 투수다. 하지만 어깨에 이상이 생겨서 무리한 투구는 삼가다가 주인공에게 연습투구 도중 볼이 가볍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끈해서 전력투구를 하다 어깨가 다시 악화된다. (여기서부터 왜 고교생이 팔에 무리가 가는 변화구를 던지다 어깨가 맛가게 되는 상황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딴지를 걸 수도 있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러던 도중 주인공이 속한 고교의 팀은 갑자원대회 지역예선의 결승전에 진출하고 팀은 중요한 고비를 맞게 된다. 대충 주인공은 페이스가 흔들려서 난타당할 위기에 처한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자 여기서 놀랍게도 그 어깨부상으로 닥터스톱이 걸린 투수는 팀의 승리를 위해 등판을 자청한다. 결국 위기를 넘기고 경기는 승리로 끝나면서 팀은 갑자원 본선에 진출하지만 그 선배의 투수생명은 끝장나고 만다. 아무리 만화 줄거리상이라고 해도 그야말로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 한 초고교급 투수의 생명이 끝장나는 걸 작가가 태연하게 미화하면서 그려내는 장면에 치를 떨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한국 야구에서 혹사로 인해 한순간 반짝 하고 사라진 투수를 들자면 샐 수 없이 많다. 83년 30승을 거두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를 시즌 2위로 이끌었던 장명부는 다음시즌부터는 그 능글맞은 투구를 보여줄 수 없었다. 84년 롯데 대 삼성의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거두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최동원도 투수로서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91년 다승과 구원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쥔 송진우는 물론 지금은 재기에 성공해서 많은 야구팬들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몇년간 그때의 혹사 후유증에 허덕여야 했다. 원년에 22승을 거두며 OB의 원년우승을 이끈 박철순 또한 이후 혹사 후유증으로 인한 허리 디스크 수술 후 재기하기까지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95년에 선발20승을 거두면서 언터처블의 구위를 자랑했던 LG 이상훈은 당시 감독의 막판 조급증으로 인해 무리한 4일등판을 강행하다 이후 다시는 95년 같은 구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해태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임창용은 3년 연속으로 40세이브 이상을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지만 결국 그 후유증으로 지금은 평범 이하의 투수로 전락한 판이다.

프로야구만의 얘기는 아니다. 아마시절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으나 혹사 후유증으로 어깨가 망가지고 연습생으로 프로에 간신히 입단 후 눈물겨운 재기의 노력을 보였으나 결국 완전부활에는 실패했던 김도완이라는 투수가 있었다. 경남상고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며 한양대로 진학했으나 결국 투수로서 활동은 못하고 평범한 타자로 전락한 김건덕이란 선수도 있었다. 구대성과 정민태도 당시 한양대 및 국가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 시절 혹사로 인해 프로 입단 후 재활을 위해 한 시즌을 공쳐야 했다. 이승엽은 원래 고교시절 투수였으나 어깨상태가 좋지 못해 프로에서 당분간 타자로 뛰다 어깨 회복되면 투수로 뛰기로 했는데 오히려 타자로 재능을 보여 정착한 케이스다. 박찬호의 경우도 특이한데 박찬호는 구대성과 정민태의 한양대 2년 후배였다. 그런데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에서 중퇴하고 메이저리그로 가버렸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대학에서 등판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또한 고교시절에도 공만 빠르고 제구력은 떨어지는 투수였기 때문에 에이스급 활약을 펼치며 경기마다 등판한 건 아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덕분에 박찬호는 뛰어난 스터프를 지녔으면서도 어깨가 상하지 않고 싱싱한 상태로 MLB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는 그가 투수로서 롱런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됐다. 만약 그가 그의 자질을 눈여겨본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체계적인 MLB의 선수육성코스를 밟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 선동렬의 경우는 아마와 프로를 통틀어 상당한 혹사를 당했지만 선천적으로 유연한 체질 덕에 장수한 케이스다. 그런 그도 92년에 팔에 이상을 느끼고서 스스로 몸을 사리며 자중한 일이 있다. 비록 한 시즌을 공치긴 했지만 만약에 그때 이전의 최동원처럼 무리해서 던졌다면 오늘날 그정도의 불멸의 기록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의 태양으로 떠오를 수 있었을지 미지수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혹사로 인해 5~10년 이상 더 뛸 수 있을 기회를 잃었는지 모른다. 이런 현실은 변해야만 한다. 한 선수의 인생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좋은 선수가 오래도록 활약해서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며 선수 개개인의 선수생명을 보호한다는 인권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장기적인 안목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고교, 대학야구 대회들에 선수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서 어린 시절부터 혹사당하고 투수로서의 생명이 꺾이는 일을 막아야한다. 이를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스템이 몇가지 있다.

1. 투구이닝 or 투구수 제한을 둔다.
지난 WBC대회에서 제일 인상적인 룰이었다. 물론 자기네 투수들이 나가서 부상이라도 당하는 일을 원치 않았던 MLB 커미셔너들의 입김이 작용한 부분이지만 에이스급 투수가 연일 등판함으로 인해 선수생명이 단축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인 방책이었다고 본다. 고교야구에 가뜩이나 선수도 없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거센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에이스 한두명보다는 다수의 탄탄하고 고른 투수진을 갖춘 팀에게 유리해지도록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보다 폭넓은 선수 육성을 유도할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상대 투수 투구수 늘리기 작전으로 나올 경우가 있으니 5이닝 전까진 투구수 제한이 없다가 5이닝 이상 투구한 상태에서는 투구수 100개를 넘기면 자동으로 투수를 교체해야 한다든지 하는 방식의 룰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ㅏ.

2. 예선은 리그전 형식으로 진행하고 한 경기당 이닝수를 줄인다. 9이닝 경기는 8강전부터
경기의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방책이라고 볼 수 있다. 무승부가 없는 토너먼트에서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에 연장전이 벌어지고 투수에게 무리한 투구를 강요하게 된다. 팀을 수 개조로 나눠 조별 리그를 벌이고 각 조의 상위팀으로 8강을 편성해 거기부터 토너먼트전을 벌이는 거다. 각 고교 팀 입장에서도 초전에 탈락하는 아쉬움을 줄일 수 있고 예선에선 9이닝 내에 승부를 내지 못하더라도 무승부처리를 하고 바로 경기를 끝냄으로써 선수가 혹사당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3. 경기 사이에는 반드시 1일 이상의 휴식일을 둔다.
프로야구처럼 5인의 선발진이 로테이션으로 던질 수 있을 만큼 선수자원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실행해야만 하는 정책이 아닐까 싶다. 한 팀의 경기에는 반드시 하루 이상의 휴식일을 의무적으로 넣도록 대진표를 편성하고 4강이나 결승 같은 대회에서는 적어도 2일 이상 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현 시스템에서는 한 투수가 3~4일 연속으로 등판해서 완투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실 이런 현실에는 대학 진학을 위한 엘리트스포츠 시스템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이거야말로 하루 이틀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한 두 마디 말로 대책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워낙 고질적인 문제인지라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하도록 한다. 다만 위에 언급한 형태의 제도라도 도입을 함으로써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보다 오래도록 선수생활을 이어가서 야구팬들을 즐겁게 해줄 가능성을 보다 높여갔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4 Responses to “안습의 고교야구”

  1. 어찌보면 당연하기 해야 될… “1일 이상의 휴식일” 같은 선수 보호

    차원의 규칙은 하나도 없는… 그저 승리만 바라보는 고교야구.

    23k 를 일궈낸 투수도 물론 훌륭하고, 그걸 나무랄 수는 없지만,

    네 말대로 우리나라 고교야구의 현실이 너무나 안습인거지…

  2. 염종석도 있지요. 그때 정말 파릇파릇 했는데..

  3. 아아아아 박충식~~~

  4. 룬 // 얼마나 많은 유망주들이 혹사 속에서 묻혀갔는지 T.T

    schopen // 염종석도 고생 많이 했죠. 수술하고 재기하고 다시 부진에 빠지고. 그 슬라이더가 대체 얼마나 팔에 무리를 줬던 건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psychiccer // 93년 한국시리즈 T.T 당시 제 3자 입장이었던 저조차 그 경기 보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박충식이야 다음해 14승하면서 잘나갔지만 결국 롱런은 못했죠. 이강철급 언더핸드로 커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쉬운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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