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42007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를 주종족으로 플레이한다. 원래 초기에는 다들 그렇듯 지구인인 테란으로 플레이하다가 하이템플러라는 유닛에 반해 프로토스로 한 번 종족전향을 한 이후 시나리오상에서도 프로토스의 전개에 반해 결국 프로토스 빠돌이가 된 형편이다.

온게임넷과 MBC게임 등에서의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간의 리그전 내지 토너먼트전이 정착된 이래 프로토스 팬들의 숙원이 있었다면 바로 ‘프로토스가 저그를 잡고 우승하는 걸 보는 일’이었다. 온게임넷 이전 투니버스 시절에 김동수가 봉준구를 상대로 우승한 일이 있지만 지금처럼 프로리그가 체계화돼있지도 않았고 선수들의 기량도 지금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던 시절이다. 이후로 프로토스가 저그를 잡고 우승하는 일은 없었다. 테란 상대로 온게임넷에서 김동수, 박정석, 오영종이 각각 임요환을 각각 잡고 우승한 바 있고 MBC게임에서는 강민이 이윤열을 잡고 우승한 일이 있다. 그 외 온게임넷에서 박용욱이 강민, 강민이 전태규를 잡으며 동족전에서 이겨 우승한 일이 있을 뿐이고 저그를 잡고 우승한 일은 김동수 이후로는 없었다.

프로토스는 저그라는 종족에 약하다. 상호간에 취할 수 있는 전략전술의 가지수도 저그가 훨씬 많고 상대가 뭘 하고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정찰의 용이성에서도 초반부터 오버로드라는 공중유닛을 보유한 저그쪽이 유리하다. 프로토스가 저그를 이기기 위해서는 단 한 차례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쳐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동급의 프로토스 대 저그에서는 대체로 저그가 2:1 가까이 되는 차이로 압도하는 편이며 단판승부가 아닌 3판양승 내지 5판3선승제의 게임이 돼버리면 저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마재윤이라는 저그 역사를 통틀어 최강으로 손꼽히는 플레이어가 상대가 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재윤의 대 프로토스전 승률 87.5%, 5판3선승제에서 프로토스가 마재윤을 이길 확률 2.69%라는 수치가 모든 걸 말해준다. 저 성적이 평범한 프로토스도 아닌 강민, 박정석 등 S급 프로토스들을 상대로 거둔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프로토스로 마재윤을 잡기는 더더욱 암담해진다.

프로토스 플레이어의 수는 타종족에 비해 적은 편이다. 게다가 종족간 상성도 테란과는 대충 5:5수준을 유지하지만 저그에게는 크게 밀리는 편이고 따라서 그 상성을 뚫고 치고 올라오는 수는 더욱 적어진다. 애초에 프로토스에 뉴페이스가 적은 이유도 그런 부분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름을 날리는 프로토스 플레이어들도 대체로 아마추어나 프로 2군리그쯤 되는 곳에서 오랫동안 전전해본 경험을 지녔다. 그 와중에 이번 MSL에 첫 진출한 김택용이라는 비교적 무명의 선수는 16강전에서 첫상대인 강민에게 패배하면서 패자조로 떨어졌다. 아무도 그가 계속 선전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패자조에서 꾸준하게 상대를 물리치고 다시 올라온 그는 4강전까지 살아남은 강민을 상대로 3-0 스윕을 거두며 멋지게 리벤지에 성공한다.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강민을 상대로 완벽하게 강민식 전략전술을 펼치며 승리함으로써 강민을 뛰어넘었음을 보여줬다. 프로토스계에 정말 오래간만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승전이 시작됐다. 김택용이 마재윤을 이기길 기원한 사람은 제법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택용이 마재윤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진지하게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마재윤에게는 혹독한 스케줄이니 온게임넷에서의 이윤열과의 결승 이후 1주일만에 또 결승이라느니 하는 핸디캡이 있긴 했지만 그가 내뿜는 본좌로서의 포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였을 뿐이다. 오히려 김택용쪽은 처음으로 치뤄보는 메이저대회 결승전이라는 점, 마재윤이라는 절대강자를 상대로 한다는 점 등 여러 모로 큰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기적절한 운영과 칼같은 타이밍으로 마재윤의 본좌포스를 누르고 결국 3-0 완승을 거두며 첫 우승을 거뒀다. 프로토스계에 진정한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앞서 설명한 여러 어려웠던 조건들 때문에 그의 이번 우승은 더욱 빛을 발하는 바이며 이번 단 한 번의 우승만으로도 그는 프로토스 본좌의 자리에 오르기 충분할 지경이다.

김택용 스타일의 강점은 플레이가 유연하다는 점이다. 그의 빌드 스타일 자체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존의 빌드들을 사용하면서도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그의 사고의 유연함은 마치 강민과 박정석의 장점만을 섞어놓은듯한 느낌을 준다. 프로토스 자체는 굉장히 딱딱하고 체제를 바꾸기 힘든 경직된 종족이다. 결국 프로토스로 유연한 운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는 상대의 의도와 게임 흐름을 미리 앞서 읽고 그에 맞춰 다음 행동을 정해나가는 판단력이 여타 선수들과 비교가 안 되게 뛰어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로토스는 저그가 뮤탈로 나올지 히드라로 나올지에 따라 대응을 완전히 다르게 가져가야 하는데 마재윤과의 이번 결승의 경우 마재윤이 뮤탈을 뽑고 프로토스 본진으로 첫 쇄도하는 순간에 맞춰 본진에서 캐논이 정확하게 완성되고 커세어 3대가 대기하고 있던 장면, 두 번째 멀티를 가져가는데 저그가 이를 공격한다고 병력을 모아 치고들어가는 순간 저그의 본진에 셔틀로 1다크템플러를 드롭해서 본진의 드론을 모두 썰어버리는 쾌거를 거두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는 상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예측하고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플레이들이다. 이런 유연한 플레이방식 덕분에 그가 단순히 반짝스타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앞서도 말했듯 뉴페이스가 부족한 프로토스에 김택용이라는 신성의 등장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앞으로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다른 프로토스들(특히 강민)의 플레이 스타일에 어떤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주목해봐야 할 것이다. 새로운 영웅의 출현에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3 Responses to “김택용 MSL 우승 – 새로운 영웅의 출현”

  1. 스타리그의 애청자도 아니고 블리자드 게임 애호가도 아니지만 절대 강자에게 맞서는 숙적(?)의 출현이라 반가운 일 같습니다. 간만에 아주 감동적인 경기를 보신듯 하군요.

  2. 나는 울었어….ㅠ_ㅠ

    살이 빠지도록…

    그런데 태굥이 진짜 잘하긴 하드라. 푸켓몬스터라고 놀리던 사람들… 많이 놀랐을 듯.

    지난 강민의 …푸켓 여행 이후 프로리그 9연승 같은 기록작성 같은걸로 볼때… 푸켓에는 분명 시간과 정신의 방이 있는거라고 생각해.

  3.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 스타리그도 WWE 처럼 짜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너무 드라마적인 연출이 많아서 말이지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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