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42009
 

자고로 싸우는 미소녀란 언제나 남성들을 설레이게 만드는 설정이기 마련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몽환전사 바리스의 아소 유코,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의 춘리, 버파시리즈의 파이, 사무라이쇼다운 시리즈의 나코루루 등 수많은 게임 속에 등장한 여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인상에 남았던 게임 속의 여전사 캐릭터들에 대한 잡상을 비정기적으로 써볼까 합니다.


오늘은 그 첫편으로 SEGA의 걸작RPG 환타지스타 II의 히로인 ‘네이’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이하 부분에서는 환타지스타 2의 중요한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사실 네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자면 먼저 환타지스타 2라는 작품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가드라이브 최초의 RPG이자 6메가비트라는 당시로서는 방대한 용량을 자랑했던 이 작품은 당시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SF RPG였다는 점, 콘솔용 RPG에서 캐릭터에 포커스를 맞추고 스토리가  서술된 거의 최초의 작품이었다는 점, 전투에서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박진감 넘치는 연출, 그리고 스토리 자체가 가지는 비극성 등 여러 가지 의미에서 게임사에 남을 명작입니다.  언제고 이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리뷰를 한 번 써야하겠지만 여기에서는 간략히 이정도로만 해두겠습니다.




아무튼 환타지스타 시리즈의 무대는 알골태양계라는 가상의 태양계입니다. 알골태양계에는 팔마, 모타비아, 데조리스라는 3개의 행성이 있고 2편의 이야기는 과거 사막으로 뒤덮여있던 모타비아에서 시작됩니다. 수퍼컴퓨터 마더브레인의 관리를 통해 푸르름이 넘치는 행성으로 거듭난 모타비아에는 최근 들어 유전공학 연구의 부작용으로 태어난 바이오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었고 모타비아 주정부의 에이전트인 주인공 유시스는 이 바이오몬스터 발생의 원인 조사를 의뢰받습니다.

유시스는 이 조사를 의뢰받기 7개월 전에 사람들에게 박해받던 어린 소녀를 구해준 일이 있습니다. 소녀는 인간과 바이오몬스터의 유전자합성에 의해 태어났으며 그 특이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박해받고있었고 지금은 생후 불과 2년만에 성인 여성의 외모를 갖게 됐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네이입니다. 작품 내 설명에 따르자면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독일어의 Nein에서 따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작품 내에 독일어를 베이스로 한 스킬명 등이 등장합니다.)

네이는 바이오몬스터 발생의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 착수한 유시스를 따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유시스 일행은 바이오몬스터 대량 발생의 원인이 기상 조절 시스템에 의한 기온의 온난화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기상시스템을 조사하러 갑니다. 그리고 기상시스템의 폭주의 원인은 한 인간과 바이오몬스터의 유전자 합체로 태어난 자에 의한 소행이었음이 밝혀집니다. 그 이름은 ‘네이퍼스트’, 네이의 모체였던 겁니다. 네이퍼스트는 괴물과도 같은 자신을 만들어낸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있었고 그로 인해 바이오몬스터의 대량발생이라는 사태를 일으키게 된 겁니다.

그런 네이퍼스트의 폭주를 막고자 네이는 네이퍼스트와의 1:1 결투를 벌입니다. 그러나 네이는 그 대결에서 패배하고 숨을 거둡니다. 네이퍼스트는 분노한 주인공 일행에게 쓰러지지만 네이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참고로 환타지스타 2에서는 죽은 사람을 클론으로 기억과 능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만 네이는 모체인 네이퍼스트의 생명활동이 정지된 영향으로 클론으로의 재생조차 불가능해진 상태였습니다. 즉 설사 대결에서 네이가 승리했다고 하더라도 네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당시 일본의 가벼운 콘솔용 RPG에서라면 이러한 히로인의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게임 마지막까지도 언젠가 네이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플레이했지만 결국 그러한 기대감은 산산조각이 나게 됩니다. 오히려 게임의 엔딩조차도 그런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먼, 많은 여운을 남기지만 어떻게 보면 절망에 가까운 상황이 연출됩니다. 특히 게임 중반에 알골태양계 3행성 중 가장 번영했던, 인류의 지구에 가까운 행성이라 할 수 있는 팔마는 마더브레인의 책략으로 아예 행성이 폭파당하는 대참사를 겪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 파괴의 여파는 시리즈 4편인 천년기의 끝으로에서 잘 보여줍니다.

사실 이 작품에는 그러한 절망과 세계 멸망의 메시지가 가득합니다. 이후 1990년대에 중후반에 나온 세기말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특히 화이날환타지 7이 이 작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거라는 설이 환타지스타 시리즈의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력한 편입니다. 절망적인 세계관, 그란츠와 메기드에 대비되는 홀리와 메테오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히로인의 죽음이라는 점이 큽니다.

게임플레이의 측면에서 네이를 평가하자면 환타지세계의 엘프를 연상시키는 뾰족한 귀와 제법 노출도가 있는 그녀의 복장, 클로를 장비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적을 도륙하는 모습 등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게임 초반부터 그녀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받게 됩니다. 전투에서도 활용도가 높아서 2년만에 성인이 됐다는 설정에 걸맞는 빠른 레벨업속도와 높은 민첩성, 강력한 공격력에다 간단한 회복스킬까지 지닌 편리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게임 중반에 영원히 이탈하게 될 때의 상실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당장 파티플레이의 강력한 전력 하나가 빠져나가니 손실도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중도에 이탈하고서도 그녀의 존재감은 게임 종반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주인공이 마더브레인 파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떠나게 된 동기를 부여해준 것도 네이였고 게임상에 존재하는 최강무기의 이름 앞에는 모두 ‘네이’가 붙습니다. 이런 여러 요인으로 인해 90년대 초반 메가드라이브 관련잡지의 앙케이트에서 히로인 인기순위에서 그녀는 한동안(루나 더 실버스타 등장 이전까지) 부동의 1위를 지킨 바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후속작인 환타지스타 시리즈의 4편 천년기의 끝으로에 등장하는 히로인 파르는 결국 2의 제작진이 네이에 대해 지닌 미안한 마음으로 인해 태어난 캐릭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뉴맨이라는 인간과 바이오몬스터의 혼혈로 태어난 새로운 종족이라는 설정과 외모 또한 네이와 흡사한데 그녀는 결국 주인공 루디와 해피엔딩으로 맺어집니다. 그런 점을 보면 제작진에게도 네이라는 캐릭터는 각별한 의미를 지녔던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강렬한 여운으로 인해 네이는 아직도 제가 유년기에 플레이한 게임의 히로인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히로인입니다. 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이고 그렇기에 더욱 기억에 남게 되고 떠올릴 때마다 애절함을 느끼게 됩니다.

덧. 네이는 하기와라 카즈시의 만화 바스타드에 나오는 뇌제 아시에스 네이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덧 2. 다음편은 몽환전사 바리스의 아소 유코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 쓸지 장담은 못합니다.

  3 Responses to “게임 속의 여전사들 #1 네이 from Phantasy Star II ~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끝으로”

  1. 제가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때인가? 클리어하는데만 6개월이 넘게 걸려서 더 기억에 남네요-_-;
    당시 메가드라이브 팬에서 게임 히스토리를 소개하며 일본에서도 클리어한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극악한 던전 구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창기 일본 RPG에 대해 비우호적인 북미에서도 환타지 스타 1, 2만큼은 상당히 높게 평가 하더군요.
    성인 취향의 플롯, 히로인의 죽음 그리고 1편의 경우이지만 RPG 최초의 여성 주인공 등
    세가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게임이지만 역설적으로 세가에서 나왔기에 발목 잡힌 게임이 아닌가 합니다.

    … 그런데 버그로 네이를 살릴 수는 있다고 하네요…(쿨럭)

    • 난이도가 상당히 높긴 했습니다. 던전의 구성이 복잡해서 저만 해도 모눈종이에 지도 그려가면서 했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전투 난이도도 굉장히 높아서 새 지역에 들어가면 종종 있는 과도하게 강한 적 때문에 전멸한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나마 몇 가지 꽁수를 알아내서 TP소모를 줄이고 나서야 간신히 순조롭게 전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애플시절 양키RPG만을 접했던 제가 최초로 본격적으로 접한 게임기용 RPG가 환타지스타 2이기도 했는데 이전의 이스 등을 통해 접했던 일제RPG들과 느낌이 상당히 달랐었죠.

      1편의 주인공 알리사 란딜도 언제고 다뤄보고픈 히로인입니다. 2편 오프닝 주인공의 꿈 속에서 싸우는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기도 했고요. 여성주인공은 애니메이션 환몽전기 레다와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 등 당시 일종의 트렌드였던 여전사물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네이 살리는 버그야 저도 알지만 왠지 쓰고싶진 않더군요. 그녀의 안면을 방해하고싶진 않은 기분이랄까. 그저 Rest in Peace를 바랄 뿐입니다.

  2. ニュ?マン은 ‘뉴맨’보다는 ‘휴먼’의 파생격인 ‘뉴먼’으로 읽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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