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2010
 

지난 주말에 보고왔다. 원작도 그렇긴 하지만 영어 말장난이 하도 심해서 영화를 100% 이해했다고 보긴 힘든 상태기도 하고 영화가 쉬운 듯 난해한 구석이 있어서 정말 제대로 된 감상은 한 번 더 보고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 안 쓰면 언제 쓰나 싶어 날림 감상이나마 적어둔다.  당연하지만 내용누설 다수 있으니 가림.



고전의 주인공이 성장해서 과거를 돌아본다는 식의 전개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기에 그 자체로 신선한 것은 아니었지만 앨리스라는 아동을 위한 환상을 대표하는 고전과 자신만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팀버튼의 만남은 개봉 전부터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사실 앨리스가 아니라도 팀버튼의 영화는 일단 챙겨보는지라 더욱 그렇다.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봤던 부분은 역시 팀버튼의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주얼이다. 3D 상영관에서 본 앨리스는 영상미로 극찬을 받았던 아바타에 스펙터클함이나 가상세계의 창조라는 측면에서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입체감을 활용한 연출이라는 점에서는 아바타 이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싶었다. 게다가 팀버튼 특유의 환상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아트웍 덕분에 눈은 충분히 즐거운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붉은 여왕의 트럼프 병사 디자인에 꽤 감동했고 마지막 결전장면의 거대 체스판에 또 다시 감동했다.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Underland가 아닐까 싶다. 원래 루이스 캐롤이 최초에 앨리스 리델이라는 소녀에게 써줬던 앨리스의 원제목은 Alice’s Adventure Under Ground였고 언더랜드는 저기서 유래한 명칭으로 보인다. 이 작품에서의 언더랜드는 말하자면 앨리스의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자 앨리스의 유년기를 상징한다. 동시에 앨리스가 성인으로서의 자아를 되찾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재밌는 해석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앨리스라는 작품에 대해 지닌 로망을 가차없이 깨버리는 해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앨리스라는 캐롤의 고전보다는 그 앨리스를 팀버튼 식으로 재해석한 팀버튼의 영화로 봐야 한다. 팀버튼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양면성인데 가위손에서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에드워드와 그에 대해 180도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선악의 경계에 서있는 배트맨과 조커와 캣우먼과 펭귄, 빅피쉬에서 아버지의 허풍 속에 숨겨져있던 진실 등등. 그래서 그의 영화는 아름다우면서 감동적이지만 때로는 놀랄만큼 섬뜩하면서 잔혹하다. 이런 극단적인 대비는 팀버튼이 컬트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앨리스에서도 그런 양면성의 대비는 잘 나타난다. 하얀 여왕과 붉은 여왕은 대립하지만 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는 부분을 지닌 표리일체의 존재다. 잔혹해보이는 붉은 여왕은 사실 외롭고 여리기 짝이 없는 존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잔혹해지지 못했기에 하얀 여왕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반대로 하얀 여왕은 아름답고 순수해보이지만 자신의 적에게는 가차없이 잔혹해지고 또한 앨리스 세계의 각종 기괴한 아이템(주로 사이즈 조절에 관한..)을 만들어낸 강력한 마녀이기도 하다.  전술했듯 앨리스는 소녀와 성인의 경계에 서있으며 언더랜드라는 세계는 이 경계선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팀버튼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런 대비를 즐겨온 나로선 덕분에 꽤 즐겁게 볼 수 있었지만 작품 전체의 완성도에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앨리스가 하얀 여왕의 챔피언이 돼서 붉은 여왕과 결전을 벌이게 되는 부분은 전개상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떻게 보면 분위기상 등 떠밀리는 점이 묘하게 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결국 결말에서 자신의 뜻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앨리스와 일치되는 느낌은 아니다. 결말도 그렇고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줘야 하는 입장인 디즈니와의 각본상의 타협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팀버튼의 삐딱함이 어디 간 건 아니다. 표현방식이 부드러워졌다 뿐이지 전술했듯 영화의 곳곳에 설치된 장치들은 이 영화가 팀버튼의 영화임을 역설한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에 대해서 제국주의적이니 하는 해석을 부여하는 점에 대해서는 당최 이해하기가 힘들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이후 영국은 중국과 아편전쟁을 벌이게 되는 건 맞지만 이 작품에 그정도로 심각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애초에 팀버튼은 자신의 작품에 정치색을 드러내는 일은 전무했다. 그냥 그 부분은 환상세계로 도피한 앨리스가 자아를 되찾고 넓은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는 디즈니식 결말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해야지 굳이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영화적 장치에 굳이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아보려고 애쓰지 말자. 그런 해석을 내리는 분들한테 세상에 제국주의적이지 않은 영화가 얼마나 되는지 가끔씩 궁금해진다. 스파이더맨 결말에 성조기 나온다고 제국주의고 스타워즈엔 제국이 나오니까 제국주의적이란 식의 논리처럼 들린다. 게임으로 치자면 사쿠라대전 시리즈가 가상의 다이쇼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해서 조선과 아시아를 침탈하던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더 길게 쓸까 했지만 일단은 여기에서 글을 줄인다. 어쨌든 나로선 재미있게 봤고 극장에서 한 번정도 더 봐줄 생각도 있다. 팀버튼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망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디즈니니까 앨리스를 이 시대에 또 한 번 끄집어낸 거고 팀버튼이니까 이만큼 만들어낸 거다.  그 사실에 만족하면 충분하다.

덧. 여담이지만 앨리스세계의 각종 기괴한 아이템들이 하얀 여왕의 손에 의해 창조됐다는 설정은 나름 신선했다.

덧 2. 조니뎁은 이번에도 분장 덕지덕지 칠하고 나왔는데 그야말로 미친놈 연기를 너무 훌륭히 소화해냈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번에도 기괴한 역할을 맡았는데 작품 내 비중은 또 엄청나게 크다. 남편을 잘 둔 건지 잘못 둔 건지.

덧 3. 팀버튼의 차기작은 Dark Shadows라는 60년대의 TV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뱀파이어물이라고 한다. 팀버튼과 뱀파이어물이라니 이건 또 이거대로 안 볼 수가 없지 않은가.

덧 4. CGV에서 나눠주는 3D안경, 안경쓴사람은 자꾸 흘러내려서 보기 불편해 죽겠는데 안경 위에 걸칠 수 있게 설계 좀 못해주겠습니까? 아바타때도 그랬고 보는데 불편해 죽는줄 알았음. 예전에 크리스마스의 악몽 3D 개봉할 때 나눠준 안경에는 분명 안경 위에 걸칠 수 있는 물건을 나눠줬던 걸로 기억하는데…

덧 5. 늘 생각하지만 역시 팀버튼의 여배우의 매력을 살려내는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냥 예쁜 배우라고만 생각했던 앤 해서웨이가 그런 이미지로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다. 앨리스는 앨리스대로 유년기와 성년기의 경계에 서있는 느낌이 실로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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