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082021
 

신작이 나와도 발매 직후에 소화를 못하고 시간이 지나 클리어하거나 아예 방치상태로 놔두는 빈도가 늘어가는 게 아재 게이머의 슬픈 점이다.

전작 사쿠라대전 5가 발매되고 14년이 지나 발매된 신작. 이제 와서 이 작품을 새로이 시작한다는 건 어설픈 예토전생과 의외의 명작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발매 전부터 가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0점 만점에 75점 정도는 줄 수 있는 퀄리티다. 전체적으로 나쁜 게임은 아니지만 전작들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고 스토리는 불완전연소로 끝나서 작중에 투척한 중요한 떡밥들이 해결되지 않았다. 게임의 볼륨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주요 인물들 한정으로는 깔끔하게 완결지었고 전투의 손맛은 나쁘진 않기에 즐기기에는 괜찮은 게임이다.

어드벤처 파트 한정으로는 전작들 못지 않은 재미를 줬다는 점에서 합격점을 줄 수 있다. 특히 시리즈 특유의 뜬금 개그와 LIPS시스템에 의한 시간제한 선택지가 주는 긴박감은 여전하다. 다만 어드벤처 파트의 시간 제한을 없애고 각 챕터에 존재하는 모든 이벤트를 한 번에 소화할 수 있게 만든 점은 게임의 난이도를 지나치게 쉽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다나카 코헤이 선생이 담당한 음악은 여전히 눈물나게 좋다. 전작의 타이틀곡 격 제국화격단을 어레인지한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구작을 생각나게 하는 극장의 BGM들, 새로 들어간 보컬곡들 등등 버릴 곡이 거의 없다.

문제는 전투다. 턴제 전략을 채용했던 기존 시스템과 달리 무쌍식 액션 전투를 채용했다는 점은 이 작품을 기존 시리즈와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이게 뭐가 문제인지 알기 위해선 기존 사쿠라대전 시리즈의 호감도와 전투시스템의 연계방식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쿠라대전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으로 어드벤처파트에서 호감도를 쌓으면 턴제 전략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전투파트에서의 해당 캐릭터의 능력치가 올라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스토리 진행은 챕터별로 구간이 나뉘어 진행되고 그리고 각 챕터에는 해당 챕터의 주역이 되는 히로인이 존재한다. 그 챕터 내에서 해당 히로인과의 호감도를 최대한 올리는데 성공하면 전투에 들어가서 그 히로인은 압도적인 능력치로 다른 캐릭터들과 차별화되는 독보적인 활약을 하게 되며 해당 히로인과의 합체기가 사용 가능해진다.

이 챕터별 주인공 + 턴제전략 + 능력치 상승 + 합체기라는 점이 왜 중요하냐 하면 이 시리즈가 어드벤처 모드에서의 플레이어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전투를 통해 부여한다는 게임사에서 유례가 없는 혁신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게임 내 등장인물과의 상호작용을 시도한 게임은 많지만 보통은 시나리오 내에서의 상호작용만으로 그칠 뿐 그 영향이 전투로 이토록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은 사쿠라대전이 최초였다고 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 인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호감도를 쌓아가고 전투에 들어가면 해당 캐릭터가 빼어난 능력치도 활약을 하게 되면서 성취감과 해당 캐릭터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합체기를 통해 내가 이 캐릭터와의 교류의 끝을 봤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신 사쿠라대전에서 전투를 액션으로 바꾸면서 생기는 아쉬움이 바로 이 기존 시리즈에서 느꼈던 어드벤처파트와 전투파트의 연계가 잘 느껴지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히로인 1명의 능력치가 특출나게 좋아진다는 사실은 턴제전투에서 여러 캐릭터들을 동시에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차별화가 돼서 느껴질 수 있게 되지만 액션 전투에서는 이런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밸런스가 좋고 손에 익게 되는 주인공 기체만을 사용하게 되니 히로인 기체를 조종할 필요도 거의 없다.

합체기를 쓰는 조건도 생각보다 까다로와서 합체기를 쓰기 위한 조건을 맞추는 것보다는 필살기 게이지가 차는대로 바로 필살기를 사용하면서 플레이시간을 단축하는 게 전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훨씬 편하다. 심지어 합체기의 존재조차 모르고 게임을 클리어하는 플레이어도 있을 정도다. 다만 시리즈 전통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합체기 연출만큼은 여전한지라 이 점은 기존 팬들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전작에선 최종 히로인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누적호감도와 챕터 내에서의 전투능력치에 영향을 끼치는 챕터별 호감도가 별도로 존재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누적 호감도만 존재한다. 스토리 진행상으로는 챕터별 히로인이 존재하는 듯 하지만 정작 그 히로인이 해당 챕터 내에서 내용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점도 아쉬움이다. 여러 모로 전작에서 느꼈던 재미들을 느끼기가 힘들다.

물론 턴제전략이라는 장르가 사멸되다시피 한 장르고 새로운 시대의 게이머들을 위해 제공한 게 무쌍식 액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쿠라대전 3 이후에 채용된 전투시스템은 턴제전략으로도 이런 전투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놀라운 게임성을 보여줬고 이를 진화시켜 나온 작품이 전장의 발큐리아 시리즈임을 생각하면 기존 시스템을 계승발전하면서도 충분히 플레이어에게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의 볼륨에도 아쉬운 점이 많다. 전작의 경우는 히로인별로 미니게임이 존재한다든지 클리어 이후의 특전요소들이 있다든지 하는 등 가지고 놀 거리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화투 미니게임 외의 잔재미 요소가 없다.

블리치의 작가 쿠보 타이토가 맡은 캐릭터디자인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론 불호에 가까운 편이다. 정확히는 그의 그림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모델링을 3D로 사용하면서 2D 그림체의 매력이 별로 살아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3D 모델링을 사용함으로써 얻는 연출상의 편의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치 못할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시리즈의 오랜 팬으로서 신작이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있지만 제작진이 기존 시리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제작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게 아쉬운 부분이다. 게임의 볼륨이 모자라고 풀더빙이 안 된 점을 보면 예산을 많이 커트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도 할 수 있다. 많은 우려에도 18만카피 판매를 기록한 걸 보면 시리즈의 지명도는 건재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과연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도 후속작이 나와준다면 이런 문제점들을 다시 해결한 작품으로 거듭나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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