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2006
 
필자는 무협소설을 대부분 소설처럼 인성(人性)을 쓰기 위해서 쓴다. <소오강호>를 쓰는 그 몇 해 동안에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권력쟁탈전이 한참 백열전에 처한 상태였다. 집권파와 모반파들이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안 쓰는 게 없어 인성의 추잡함이 집중적으로 드러났다. 필자는 날마다 <<명보(明報)>>에 평론을 써주고 있던 참에 정치의 더러운 소행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자연히 매일 써내는 무협소설에 반영되었다. 이 소설은 결코 의도적으로 문혁을 은근히 비판한 게 아니라 책 중 일부 인물들을 통해 중국 삼천여 년 이래로 정치 생활 중의 일부 보편적 현상을 그려내려고 한 것이다. 은근히 비판하는 소설들을 결코 큰 의미를 가진 것이 못 되고 정치 상황도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인성을 묘사해야 비교적 오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무릅쓰는 권력 쟁탈은 고금 중의 정치 생활이 가지는 기본 상황이며, 과거 수천 년 이렇게 왔으며 앞으로 몇 천년도 여전히 이렇게 될 것이다. 임아행, 동방불패, 악불군, 좌랭선 등은 무림고수보다는 정치인물로 구상하였다. 임평지, 향문천, 방증대사, 충허도인, 정한사태, 막대선생, 여창해 등의 인물도 정치인물이다. 이러한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왕조마다 있으며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용이 쓴 소오강호 후기의 일부이다. 소오강호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은 무협소설의 형태를 취한 한 편의 정치풍자소설이다. 최근 경질된 유진룡 전 문광부 차관이 썼다는 이임사에서 저 소오강호에 대한 언급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옛날에 소오강호가 한참 인기리에 연재될 당시 동남아 어딘가의 의회에서 한 의원이 자신의 정적(政敵)을 좌냉선(야심가)에 비유하며 공격하자 그 상대가 그럼 당신은 악불군(위군자)이라면서 맞받아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소오강호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다양한 유형의 정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 양상은 어느 나라의 어느 정치판에 갖다 대봐도 어느 정도 들어맞으니 이 또한 김용 대종사님의 세상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유 전 차관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 아는 바 없고 그가 스스로 자신이 경질된 이유라고 밝힌 청와대 인사청탁 거부가 정말 있던 사건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비록 ‘심심풀이’정도의 의미밖에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걸리지만 그래도 정치판에 소오강호를 비유할 줄 아는 센스를 지녔다는 점만으로 어느 정도 저 사람에 대한 지지도가 반 푼정도 생긴 건 사실이다.

덧. 유 전 차관이 썼다는 이메일 전문
◆유진룡 전 차관이 남긴 이메일

정든 문화부를 떠나며….
드디어 정든 문화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우리 부에 들어와 어리둥절하며 일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십 년이 훨씬 넘은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가 닥치니 조금은 아쉽군요.

하지만 우리 부 가족 한 분 한 분에 대한 저의 믿음이 크기에 큰 걱정 없이 현직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부가 훌륭한 지도자들과 열의를 가진 직원들이 힘을 모아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저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우리 부가 그동안 쌓은 역량과 화합을 바탕으로 더욱더 많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공공의 일꾼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떠나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습니다.

3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치고 나가는 저 자신의 마음은 지금 한편으로 많이 후련합니다. 이제 제가 하고 싶던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동안 저의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문화부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국가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조용히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고 가려 합니다.

농담이지만, 오래전 심심풀이로 읽었던 대중 무협소설의 제목이 머릿속에 떠오르는군요. 제목이 ‘소오강호(笑傲江湖)’였던가 싶네요.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그동안 저를 믿고 아껴주시며 함께 많은 일들을 기꺼이 그리고 신나게 해 주셨던 선배, 동료, 후배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유진룡 올림
4월 062006
 
2004년 대만 음악차트에서 1위를 기록한 바 있다는 곡. 가사가 실로 심금을 울리는지라 이런 건 포스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타면서 올려본다. 번역은 웹에 떠돌아다니는 걸 일부 수정한 것이고 누가 했는지는 잘 모르겠음.

참고링크 : 시나닷컴의 왕용 정보 페이지



我不是?蓉
나는 황용이 아니야

我不?武功
나는 무공을 못해

我只要靖哥哥
내가 원하는 건 곽정오빠와

完美的?情
완벽한 사랑

我不是?蓉
난 황용이 아니야

我整天做?
나는 항상 공상을 하지

在夜里唱情歌
밤에는 사랑노래를 불러

失?也英雄
실연도 영웅같이

我?有香香公主的美?
난 향향공주처럼 아름답지도 않고

也?有建?公主的?利
건녕공주같은 권력도 없어

我希望?到老?的郭靖?人???事精明
곽정처럼 다른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리에 맞게 행동하는 진실된 남자를 찾고 싶어

他不要像?小?多情也不要像??般冷冷??
위소보 같은 난봉꾼은 안 돼, 양과처럼 시름에 차있어도 안 돼

直到我??花白牙?掉光?到我??在在的?情
백발이 될때까지 함께할 진짜 사랑을 원해

我不是?蓉
나는 황용이 아니야

我不?武功
난 무공을 못해

我只要靖哥哥
내가 원하는건 곽정오빠와

完美的?情
완벽한 사랑

我不是?蓉
난 황용이 아니야

我整天做?
난 항상 공상하지

在夜里唱情歌
밤에는 사랑노래를 불러

失?也英雄
실연도 영웅처럼

那天我看到?便?定?手机
그날 널 봤을때 핸드폰을 바꾸기로 결정했어

打扮得翩翩美??面前晃?晃去
예쁘게 차려입고 니 주위를 맴돌지

那天我看到?便想起神雕??
그날 널 봤을때 신조협려를 떠올렸어

?世?情?何物直?人生死相?有道理
세상에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함께하게 한단 말인가.. 맞는 말이야.
9월 242005
 
참고 : 신조협려의 추억 from 더러운 욕망 이글루 분점

이번에 대륙에서 신조협려의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인 신조협려 2005를 제작한다고 한다. 위 링크를 클릭해서 가보면 알겠지만 양과역에 황효명, 소용녀역에 유역비라는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는데 이 두 배우의 비주얼이 꽤 괜찮다. 누가 뭐래도 양과와 소용녀는 선남선녀커플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캐스팅에 있어서 제일 난관은 일단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곧 보게 된 것이 바로 다음의 신조협려 2005 뮤직비디오 천년지련인데 이게 또 은근히 느낌이 좋다. 특히 칼 위에 올라타신 소용녀님의 자태가 아름다우시다.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가 무럭무럭 상승하는 중이다. 보실 분은 아래를 클릭.





마지막 저작권문구 바로 전에 나오는 시구, 무슨 뜻이고 어디서 나왔던 건지 알아보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동지를 찾아야겠음(…)
9월 212005
 
이전 포스트에서도 적었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양키다. 이 바닥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기도 한데 암튼 그 사장의 책꽂이에서 이런 물건을 보았다.




바로 영문판 녹정기!!!



그런 고로 이 회사가 좋아지려고 하고 있다. 날 아시는 분이라면 내가 이번 회사는 정말 오래 몸담고 있기 위해 발버둥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치 않으실 것이다(…)

9월 192005
 
황금가지에서 나온 <위대한 아시아>라는 아시아의 위인들을 인물사전 형식으로 다룬 책에 실렸다는 내용. 출처는 루리루리님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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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엽 우리가 중국 근현대 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홍콩에서는 20세기 중국 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던 이 조용한 문화 혁명은 마침내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학자와 교수들로 하여금 통속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박했다. 그리고 이 혁명의 한가운데에는 다름아닌 진융의 무협 소설이 있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을 휩쓴 진융의 무협 소설은 1980년대 대륙에 상륙하였다. 중국 대륙에 불어닥친 ‘진융 열풍’은 너무나 강렬해서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제 진융의 무협 소설은 ‘중국인의 정체성(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융은 1924년 중국 저쟝(浙江) 성 하이닝(海寧)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차량융(査良鏞)으로, 진융이라는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鏞)를 둘로 나눈 것이다. 말하자면 무협 소설가 진융은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차량융의 분신인 셈이다. 차량융은 1989년에는 정계에서 물러나고, 1992년에는 자신이 창간하여 홍콩 최대의 언론으로 성장시킨 <명보(明報)>를 매각하는 등 서서히 그간의 활동을 정리했다. 그러나 무협 소설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2년 7월에는 홍콩 명하사(明河社)에서 대자판(大字版)으로 3차 개정본을 출간했다. 이렇게 보면 무협 소설 작가인 진융은 언론인 차량융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항일 전쟁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진융은 1941년 충칭(重慶) 국립 정치 대학 외문계에 입학하여 서구 문학을 섭렵하였고, 쑤저우의 동오(東吳) 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종전 후 <동남일보(東南日報)>의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1948년 당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대공보(大公報)>에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편집과 영어 국제 방송 청취 일을 맡아 일했다. 같은 해 <신만보>복간을 위해 홍콩으로 파견되었던 그는 중화 인민 공화국이 건국되고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홀로 홍콩에 남게 된다. 이 일로 그는 결혼 생활에 파경을 맞았고, 고향에 남은 아버지 차수칭 역시 반동 지주로 몰려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영화 각색과 감독 일을 맡아 하다가 1959년 마침내 <명보(明報)>를 창간하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신문에 <신조협려>를 연재하여 <명보>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한편 ‘왼손으로는 신문 사설을 쓰고, 오른손으로는 소설을 쓰는’ 필력을 과시하여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후 진융은 16년간 열두 편의 장편과 세 편의 중편을 발표하면서 대협(大俠)이라는 칭호까지 받을 정도로 작가로서 승승장구한다. 1974년 그는 돌연 봉필(封筆)을 선언하여 세간을 놀라게 한다. 그 후 십 년에 걸쳐 진융은 일반인의 고정 관념을 깨고 신문에 연재할 때 미비했던 점들을 하나하나 수정한 끝에 1994년에 그의 작품집 서른여섯 권을 베이징 삼련(三聯) 서점을 통해 출판한다.

이때쯤에는 그의 작가로서의 명성도 절정에 올라 같은 해에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 교수직을 수여받고, ’20세기 중국소설 대가’ 서열에서 루쉰(魯迅), 천총원(沈從文) 등에 이어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베이징 대학 중문학부에 ‘진융 소설 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기까지 했으니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영예는 다 누린 셈이다.

그의 무협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의 역사 사건을 강호(江湖)라는 가상의 세계와 결합시켜 그 속에서 생활하고 성장한 실제에 가까운 형상들을 그려낸다. 예를 들어<영웅문 3부작>의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 양과와 소용녀, 장무기와 조민 등은 송-원 교체기로부터 원-명 과도기라는 역사 배경과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으로 이어지는 무림의 대종사(大宗師)들이 웅거하는 강호의 환경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역사 강호 인성’의 삼중 구조는 진융 소설의 특징적인 면이다.

그의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강호와 협객(俠客)들이 근현대적인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대 중국인의 복장을 입고 과거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현대인들과 유사하게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우환(憂患) 의식과 20세기 인류 문명이 지닌 비관주의와 회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로 설정된 점은 위의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모두 진융만이 가진 품격과 특색이 잘 드러나 있으며, 또한 작품 하나하나가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빛나고 있다. 협객의 형상만 살펴보더라도, 초기의 유가 협객(진가락, 원승지, 곽정)으로부터 도가 협객(양과, 장무기), 불가 협객(석파천, 단예)을 거쳐, 비협(非俠)의 경지(적운, 이문수)로 점점 모습을 달리하다가 심지어 반협(反俠)의 형상(위소보)도 등장한다. 이 점만 봐도 그의 열다섯 편의 작품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 각자 독특한 형상과 플롯을 지닌 독립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진융의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는 통속 문학과 순수 문학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무협 소설을 순수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진융은 이름 있는 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한 전문 연구서가 속속 출판되고, 국제 규모의 ‘진융 학술 토론회’도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금학(金學)’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이다. 진융은 단순한 저널리즘적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까지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신시기(新時期) 전기에 있었던 ‘왕쑤어(王朔) 현상’이나 ‘페이두(廢都) 현상’과는 맥을 달리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진융의 작품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타이완과 홍콩, 대륙은 물론 구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진융의 작품이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중국인들이 진융을 매개로 하여 다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진융 현상’이라고 이름 붙이며, 국민 문학으로서 진융의 소설이 가진 가능성이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진융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단순한 재미 외에 더욱 근본적인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융이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 본토 문학’의 집대성자라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대륙에서 그동안 5 4 신문학에 의해 억압되었던 ‘본토 문학’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된 것도 그의 작품이 가진 ‘본토 문학’ 형식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이제는 진융의 작품을 재미있는 무협 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 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 1986년 ‘영웅문 3부작’이 번역 출간된 이후 삼 년 만에 <월녀검>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번역 또는 번안되었다. 베이징 삼련본이 서른여섯 권으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단시일에 엄청난 분량이 번역된 것이다. 당시 국내 무협 소설계의 열악한 현실 때문에 진지한 번역보다는 줄거리 위주의 각색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영웅문>만 하더라도 삼련서점의 판본들과 차례를 대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무협과는 무관하지만 진융 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대부분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진융의 진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번역이 새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춘성 (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