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12005
 
이전 포스트에서도 적었지만 현재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양키다. 이 바닥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기도 한데 암튼 그 사장의 책꽂이에서 이런 물건을 보았다.




바로 영문판 녹정기!!!



그런 고로 이 회사가 좋아지려고 하고 있다. 날 아시는 분이라면 내가 이번 회사는 정말 오래 몸담고 있기 위해 발버둥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실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치 않으실 것이다(…)

9월 192005
 
황금가지에서 나온 <위대한 아시아>라는 아시아의 위인들을 인물사전 형식으로 다룬 책에 실렸다는 내용. 출처는 루리루리님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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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중엽 우리가 중국 근현대 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홍콩에서는 20세기 중국 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던 이 조용한 문화 혁명은 마침내 수많은 독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학자와 교수들로 하여금 통속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게끔 강박했다. 그리고 이 혁명의 한가운데에는 다름아닌 진융의 무협 소설이 있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을 휩쓴 진융의 무협 소설은 1980년대 대륙에 상륙하였다. 중국 대륙에 불어닥친 ‘진융 열풍’은 너무나 강렬해서 이제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제 진융의 무협 소설은 ‘중국인의 정체성(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융은 1924년 중국 저쟝(浙江) 성 하이닝(海寧)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차량융(査良鏞)으로, 진융이라는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鏞)를 둘로 나눈 것이다. 말하자면 무협 소설가 진융은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차량융의 분신인 셈이다. 차량융은 1989년에는 정계에서 물러나고, 1992년에는 자신이 창간하여 홍콩 최대의 언론으로 성장시킨 <명보(明報)>를 매각하는 등 서서히 그간의 활동을 정리했다. 그러나 무협 소설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았고,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2002년 7월에는 홍콩 명하사(明河社)에서 대자판(大字版)으로 3차 개정본을 출간했다. 이렇게 보면 무협 소설 작가인 진융은 언론인 차량융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항일 전쟁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진융은 1941년 충칭(重慶) 국립 정치 대학 외문계에 입학하여 서구 문학을 섭렵하였고, 쑤저우의 동오(東吳) 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했다. 종전 후 <동남일보(東南日報)>의 기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후 1948년 당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대공보(大公報)>에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편집과 영어 국제 방송 청취 일을 맡아 일했다. 같은 해 <신만보>복간을 위해 홍콩으로 파견되었던 그는 중화 인민 공화국이 건국되고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홀로 홍콩에 남게 된다. 이 일로 그는 결혼 생활에 파경을 맞았고, 고향에 남은 아버지 차수칭 역시 반동 지주로 몰려 모진 탄압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영화 각색과 감독 일을 맡아 하다가 1959년 마침내 <명보(明報)>를 창간하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신문에 <신조협려>를 연재하여 <명보>의 지위를 안정시키는 한편 ‘왼손으로는 신문 사설을 쓰고, 오른손으로는 소설을 쓰는’ 필력을 과시하여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후 진융은 16년간 열두 편의 장편과 세 편의 중편을 발표하면서 대협(大俠)이라는 칭호까지 받을 정도로 작가로서 승승장구한다. 1974년 그는 돌연 봉필(封筆)을 선언하여 세간을 놀라게 한다. 그 후 십 년에 걸쳐 진융은 일반인의 고정 관념을 깨고 신문에 연재할 때 미비했던 점들을 하나하나 수정한 끝에 1994년에 그의 작품집 서른여섯 권을 베이징 삼련(三聯) 서점을 통해 출판한다.

이때쯤에는 그의 작가로서의 명성도 절정에 올라 같은 해에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 교수직을 수여받고, ’20세기 중국소설 대가’ 서열에서 루쉰(魯迅), 천총원(沈從文) 등에 이어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베이징 대학 중문학부에 ‘진융 소설 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기까지 했으니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영예는 다 누린 셈이다.

그의 무협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의 역사 사건을 강호(江湖)라는 가상의 세계와 결합시켜 그 속에서 생활하고 성장한 실제에 가까운 형상들을 그려낸다. 예를 들어<영웅문 3부작>의 주인공인 곽정과 황용, 양과와 소용녀, 장무기와 조민 등은 송-원 교체기로부터 원-명 과도기라는 역사 배경과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으로 이어지는 무림의 대종사(大宗師)들이 웅거하는 강호의 환경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역사 강호 인성’의 삼중 구조는 진융 소설의 특징적인 면이다.

그의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강호와 협객(俠客)들이 근현대적인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대 중국인의 복장을 입고 과거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현대인들과 유사하게 사유하고 행동한다. 그들에게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우환(憂患) 의식과 20세기 인류 문명이 지닌 비관주의와 회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로 설정된 점은 위의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모두 진융만이 가진 품격과 특색이 잘 드러나 있으며, 또한 작품 하나하나가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빛나고 있다. 협객의 형상만 살펴보더라도, 초기의 유가 협객(진가락, 원승지, 곽정)으로부터 도가 협객(양과, 장무기), 불가 협객(석파천, 단예)을 거쳐, 비협(非俠)의 경지(적운, 이문수)로 점점 모습을 달리하다가 심지어 반협(反俠)의 형상(위소보)도 등장한다. 이 점만 봐도 그의 열다섯 편의 작품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의 반복이 아닌, 각자 독특한 형상과 플롯을 지닌 독립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진융의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는 통속 문학과 순수 문학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버림으로써 무협 소설을 순수 문학의 전당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 진융은 이름 있는 학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에 관한 전문 연구서가 속속 출판되고, 국제 규모의 ‘진융 학술 토론회’도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금학(金學)’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이다. 진융은 단순한 저널리즘적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까지 꾸준히 그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신시기(新時期) 전기에 있었던 ‘왕쑤어(王朔) 현상’이나 ‘페이두(廢都) 현상’과는 맥을 달리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진융의 작품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타이완과 홍콩, 대륙은 물론 구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인이 있는 곳에는 진융의 작품이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중국인들이 진융을 매개로 하여 다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진융 현상’이라고 이름 붙이며, 국민 문학으로서 진융의 소설이 가진 가능성이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진융의 작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단순한 재미 외에 더욱 근본적인 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융이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 본토 문학’의 집대성자라는 점이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대륙에서 그동안 5 4 신문학에 의해 억압되었던 ‘본토 문학’에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돌리게 된 것도 그의 작품이 가진 ‘본토 문학’ 형식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이제는 진융의 작품을 재미있는 무협 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 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 1986년 ‘영웅문 3부작’이 번역 출간된 이후 삼 년 만에 <월녀검>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번역 또는 번안되었다. 베이징 삼련본이 서른여섯 권으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단시일에 엄청난 분량이 번역된 것이다. 당시 국내 무협 소설계의 열악한 현실 때문에 진지한 번역보다는 줄거리 위주의 각색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영웅문>만 하더라도 삼련서점의 판본들과 차례를 대조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무협과는 무관하지만 진융 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분이 대부분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진융의 진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번역이 새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춘성 (목포대 교수)

9월 132005
 

딜버트의 저자 스코트 애덤스가 쓴 유쾌한 직장생활 가이드. 귀찮아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경영진들의 거짓말에 대해 다룬 챕터로부터 한 구절만 인용한다.


우리는 모험을 감행하는 사원들에게 상을 내립니다

  정상적으로 볼 때 모험을 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은 바보들도 마찬가지이다. 실생활에서 그 둘을 구분하기란 어렵다.

  모험을 감행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바보들이며 그들로 인해 상사가 경영진들로부터 한 번 이상 문책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실패작들에게 상을 주겠다는 경영진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가?

  아니면 실패자들은 품질향상팀으로 배치될 것이고, 성공자들은 치타가 샐러드 바를 빠져 나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회사를 떠날 것이라는 말이 더 그럴 듯하게 들리는가?

보너스 질문

  성공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고 난 뒤 다른 회사에서 돈을 더 많이 벌까, 더 적게 벌까?


아직도 딜버트를 안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마침 야후에서 한글로 된 번역본이 매일 연재중이니 가서 보라. 번역의 퀄리티가 조악할 때가 종종 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아니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직접 볼 수도 있다.



자살토끼

세상 살기 싫은 토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무척이나 무의미해보이는 책. 어쨌든 영국같은 괴이한 나라에서나 나올 물건. 닥터후 관련이라든지 각종 영화들의 패러디들이 넘쳐나는 게 유쾌하니 한 번쯤 볼만. 아래는 몇 가지 장면들.











5월 242005
 
<해외화제>무협소설 대가 진융 케임브리지대 유학

(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 중국 무협소설의 대가 진융(金庸)이 81세의고령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고 관영 신화 통신이 23일 홍콩의 대공보(大公報)를 인용, 보도했다.
자신의 무협소설 천룡팔부(天龍八部)가 중국 고교 2학년 어문독본 교재에 실리기도 했던 진융은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서 역사, 고고학, 세계사 등을 연구한후 평생 염원인 중국사를 저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 영국으로 가 케임브리지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 진융은 “아직 학문이 부족하고 공부를 더 하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겸손을 보였다.

진융의 케임브리지 유학은 그의 무협소설 녹정기(鹿鼎記)에 열광한 이 대학 총장의 적극적인 주선으로 성사됐다.

홍콩 출신의 진융은 범중국 최고 문장가의 한명으로 천룡팔부, 녹정기이외에 `사조영웅전’과 `의천도룡기’, `영웅문’, `소오강호’등을 집필, 해적판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수억부가 팔렸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 진융의 무협소설 돌풍을 일었었다.

할 말이 없다. 그저 대종사님에 대해 경배할 따름. 나는 81세에 저럴 수 있을까.

2월 192005
 
http://www.baduk.or.kr/news/homenews_view.asp?gul_no=506166&gdiv=3

김용소설 속의 바둑 묘사에 대해 흥미를 느끼셨던 분이라면 읽어볼만한 글.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인상적이었다.

(전략)

당시 중국의 최정상 고수였던 천주더와 김용의 대국은 4점 치수로 이루어 졌다. 천9단은 김용의 기력을 아마5단의 실력정도라고 평가했으며 다른 기사들도 김용의 기력은 아마4단에서 5단사이라고 말했다.

후에 천9단은 이에 관해 웃으면서 “김용은 덕망이 높으며 바둑에 대한 공헌도 적지 않으니, 1,2단 정도 더 보태도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중략)

하지만 녜9단을 당황하고 어쩔줄 모르게 만드는 것이 있다. 매번 대국시마다, 김용은 다 두고 나서 주머니에서 작은 편지봉투를 꺼내고는 두 손으로 건네는 것인데 그 안에는 약간의 지도 대국료가 들어 있었다.

“받지않으면 안됩니다.”

김용의 태도는 아주 진지했으며, 그는 “프로기사는 이것을 업으로 삼기 때문에 지도료를 받지않는 것은 규율을 깨뜨리는 것이 된다.”라고 말했다. 녜9단은 “이뿐만 아니라 김용 선생은 또 다른 취미가 하나 있다. 기력이 그보다 높은 기사이기만 하면 그는 매번 스승으로 모시고 아주 예의를 깍듯이 하고 선물 등 을 준다. 이러니 김용 선생의 스승은 천하에 수도 없이 널렸으며 모두 합치면 100단도 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중략)

부인이 장고를 할 때 리우9단은 “나는 기다리는 것이 짜증이 난다. 참지 못하고 부인보고 빨리 두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김용은 언제나 조급해 하지 않고 우아한 풍채로 똑바로 앉아 있어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후략)
12월 242004
 
  중국의 무협소설을 보면 대체로 주인공은 억압받는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의인으로 등장한다. 김용의 녹정기에 등장하는 위소보나 고룡의 무협소설의 주인공들 같은 예외적인 케이스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꼭 근현대의 신무협이 아니더라도 고전인 수호지 같은 경우를 봐도 악한 관리에 저항하고 백성들을 보호하는 의적들을 볼 수 있고 우리나라에는 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판관 포청천의 경우도 저러한 의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행태를 보고있자면 과연 저 나라 사람들이 과연 그런 의협적인 인물들의 나라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월드컵 당시 중국의 축구팬들이 벌인 작태나 한중전에서 한국 응원단에게 벌인 난동,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되는 여러 모습들은 과연 대국을 자처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를 보자.
http://news.naver.com/hotissue/read.php?hotissue_id=279&hotissue_item_id=9900&office_id=105&article_id=0000001100§ion_id=7


습득 현찰 돌려줬다가, 이혼 당한 남자

[팝뉴스 2004-12-23 12:05]  

습득한 돈을 돌려준 한 남성이 가정 파탄을 맞게 되었다.
22일 DPA 통신이 ‘차이나 데일리’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럭 운전을 하는 한 중국 남자가 길에서 가방을 주었다.

그 속에는 휴대폰과 한화 360만원 가량의 현찰이 들어 있었고, 남자는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다.

하지만 난징에 거주하는 이 소박한 남자의 선행이 가정 불화를 야기했다. 아내와 가족들은 그 돈으로 빚이나 갚지 왜 굴러온 복을 차버렸냐고 쏘아붙인 것. 특히 아내는 남편에게 멍청하다 비난했다고 한다.

부부의 갈등은 6개월간 지속되었으며 아내는 ‘견딜 수 없이 멍청한’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버렸다.

팝뉴스 김민수 기자


  저 남자는 돈을 잃어 곤란해하고 있을 사람을 위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의협(義俠)의 개념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도 아내에게 이혼을 당했다. 즉 오히려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바보취급을 당하는 사회가 오늘날의 중국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중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며 개중에는 저 기사의 남자와 같은 사람들도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무협지의 주인공들과 같은 뛰어난 무공과 지모를 지니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조금 시각을 바꿔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협소설들에 등장하는 의리의 사나이들이 아닌 평범한 일반적인 대중들의 성격을 봐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룡팔부에서 소봉이 거란인임이 밝혀지자 그때까지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던 군웅들의 태도가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부분들, 연성결과 비호외전의 보물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조차 안중에 없는 무리들, 소오강호의 겉으로는 명문정파를 표방하면서 실은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를 벌이는 각 문파의 인물들을 들 수 있다. 저들은 작품 내에서는 독자들의 비난 내지 조롱을 받는 대상으로서 존재하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낸 것이 아닐까.

  다시 관점을 돌려 한국의 무협을 살펴보자. 한국 무협소설들은 중국 무협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지만 그 성격은 매우 다른 한국인들만의 정서가 담긴 독특한 형태로 발전돼온 장르라 할 수 있다. 한국 무협이 중국 무협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을 들자면 중국의 무협은 주인공 개인을 중시함에 반해 한국무협은 주인공이 이끄는 조직을 중시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한국 무협에서 천애 고아인 주인공이 절정의 무공을 쌓는 과정은 그리 길게 묘사되지 않는다.  반면에 주인공이 특정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돼서 여타 세력을 흡수하고 조직을 키워나가 마지막에 숙적이 이끄는 집단을 무너뜨리는 과정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숙적과 마지막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보통 1~2페이지로 끝마치기 마련이다.

  이상이 한국 무협의 클리셰이지만 여기에서 왜 한국 무협이 이런 형식을 취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주인공이 조직의 우두머리가 된다 – 조직을 이끌어 키워낸다는 과정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뛰어난 통솔력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인 발언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나라는 전통적으로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나고 자기 발전에 대한 열의도 높은 반면 그들이 조직으로서 뭉칠 때는 그다지 좋은 화합을 이룬다고 보긴 힘들었으며 특히 통솔자의 리더쉽은 여기에서 언제나 항상 문제시돼왔던 부분이다. 그렇다고 집단이기주의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특성 또한 일장일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종류의 얘기는 여기서는 접어두도록 한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뛰어난 리더를 갈망해왔지만 그러한 염원이 실현된 일은 역사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이웃나라인 일본은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무협이라는 장르는 없지만 대신 자신의 이상을 부르짖으며 싸운 사무라이들의 이야기와 우정과 근성을 부르짖는 열혈물이 있다. 그러나 저 나라 또한 역사적으로 볼 때 만만치 않게 배신과 암투로 점철된 역사를 자랑한다. 좁아터진 땅덩이가 수십개의 다이묘들의 세력으로 갈려 백여년간의 전란을 치렀던 전국시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시대 종식을 목전에 뒀지만 부하인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배신당해 죽었으며 아케치 미츠히데는 다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토벌당한다. 토요토미의 천하로 결말이 나는가 싶더니 후계자가 어리다는 빈틈을 탄 도쿠가와에 의해 다시 한 번 반전이 이루어진다. 그런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그들에게 있어 신선조나 쥬신구라 같은 이야기들은 더욱 값져보인다. 지난 월드컵의 예를 들어봐도 정작 한 편의 열혈물 같은 스토리를 실현한 것은 우리나라였지 일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의 스포츠물에는 언제나 그런 감동적인 드라마들이 나오지만 현실의 일본 국민들이 월드컵에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있어 이런 열광은 일상일지도 모르지만 일본 국민들에게 있어선 자신들이 갖지 못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보면 왜 중국의 무협에서 이토록 많은 의협지사가 등장하는지의 답이 명약관화해진다. 의와 협이야말로 대개의 중국인들이 갖지 못한 특질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이러한 의협지사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말한 오늘날의 중국인들의 모습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더욱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반드시 중국인이 나쁘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중국인들 중에도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좋은 사람들은 있을 것이며 다른 나라에도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사람들이 주류에 속하느냐 비주류에 속하느냐에 따른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협지사들이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는 중국사회였기 때문에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이상적인 의협지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12월 022004
 
오늘은 문답의 날인가, 이런 걸 발견하고 안 해볼 수 없다는 생각에 해보는 김용소설 문답.
출처는 http://hyunmu.egloos.com/604574

1. 귀공을 김용무림으로 이끈 입문서는?
영웅문 1~3부 (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

2. 언제, 어떻게 입문했는가?
중학교때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돼서.

3.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복수가능) ?
안 좋아하는 작품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천룡팔부와 녹정기

4. 가장 재미없었던 작품은?
세상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5. 소장하고 있는 김용작품은?
고등학교때만 해도 전질을 갖고있었지만 세월의 무상함에 못견디고 군대간 사이에 책의 절반이 사라져있었다. 지금 가지고있는 건 김영사간 정식판 사조영웅전. 그 외에 설산비호(설산객 버전, 백마소서풍&원앙도 포함), 연성결, 벽혈검, 천룡팔부, 중문판 설산비호+백마소서풍+원앙도, 일어판 연성결, 일어판 설산비호+백마소서풍+원앙도

6.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남녀불문,복수가능)
소봉, 무진도장, 소림의 무명승, 영호충, 황약사, 강남사우(황종공, 독필옹, 흑백자, 단청생), 위소보, 쌍아, 양과, 조민,

7.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남녀불문,복수가능)
진가락. 구양극만도 못한 놈. 적어도 그는 황용을 위해서는 진심을 보였다.

8.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또는 장면은?(복수가능)
신조협려, 화산에서 홍칠공과 구양봉이 얼싸안고 죽는 장면
의천도룡기, 조민이 장무기의 결혼식장에 난입해서 연적과 맺어지는 걸 저지하는 장면
녹정기, 위소보가 상결과 그 사제들로부터 구난을 구출하는 장면
녹정기, 위소보가 신룡교를 포격하고 홍교주에게 잡혔다가 살아나는 장면
녹정기, 네르친스크 조약 체결 전반
녹정기, 이자성과 오삼계의 재회
천룡팔부, 단예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
천룡팔부, 아주의 최후
천룡팔부, 소봉의 최후
비호외전, 무진도장과 호비의 대결
연성결, “나는 당신을 이곳에서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나는 벌써 당신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사조영웅전, 황용이 주자류가 낸 시제 ‘금슬비파 팔대왕일반두면’으로 남녀유별함에도 황용과 곽정이 착 달라붙어 금슬이 좋음을 풍자하자 ‘이매망량 사소귀각자두장’으로 일등대사의 사대제자가 집요하게 자신들을 방해하는 모습이 꼴사나움을 풍자해서 맞받아치는 장면.
연성결, 밤마다 벽돌을 쌓는 만진산
백마소서풍, “다 좋은 사람들이야. 허나 내가 좋지 않은걸.”
월녀검, 서자봉심의 유래


9. 가장 갖고싶은 무기는?
위소보의 비수. 의천검이나 도룡도는 현실적으로 들고다니기 빡세다. 무기는 아니지만 위소보의 보의도 탐난다.

10. 가장 익히고 싶은 무공은?
이혼대법. 이걸로 타인들을 마인드컨트롤! (…)

11 . 당신이 김용무림에 떨어진다면 가장 친구로 사귀고 싶은 인물은?
영호충. 함께 일배의 술을 나눌 가치가 있는 인물 아니겠는가.

12 .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 있는가? 있다면 누구?
위소보. 돈과 권력과 여인을 한손에 넣는다.

13. 가장 스승으로 삼고 싶은 인물은?
황약사. 그에게라면 진심으로 탄복하고 고개를 수그릴 수 있을 것이다.

14. 귀공의 생각에 최고로 여복이 터진 인물은?
말이 필요없다. 위소보.

15. 귀공은, 최고의 불운아는 누구라고 보는가?
양강.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곽정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삶을 산 데다 요절하기까지 한다.

16. 반대로 최고의 행운아는 누구라고 보는가?
허죽. 무공과 권력과 여인을 한 손에!

17. 김용무림의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된다면 누가 되고 싶은가?
위소보!!

18. 김용의 이름을 도용한 위서(僞書)중에 (여러가지 의미로)흥미로웠던 작품은?
전용(全庸)의 위소보전. 저 작가 이름만 봐도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가.

19. 게임 중 최고의 작품과 그 이유는?
그런 거 없다.

20. 게임 중 최악의 작품과 그 이유는?
플스판 사조영웅전.

21. 영상물 중 최고의 작품과 그 이유는?
김용소설 영상화에서 쓸만한 걸 찾아보기는 거의 힘들다. 드라마고 영화고 뭐그리들 망쳐놓는지. 오히려 김용소설 원작 자체와 큰 연관은 없더라도 구양봉과 황약사라는 두 인물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살려낸 왕가위의 동사서독을 최고로 쳐주고싶다.

22. 영상물 중 최악의 작품과 그 이유는?
동방불패. 아래 영화문답에서도 쓴 얘기지만 원작훼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23. 만화로 그려진 작품 중 최고/최악의 작품과 그 이유는?
최고는 이지청의 사조영웅전.
최악은 그 외의 전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24. 처음 김용무림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은?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이 잘 살아있는 사조영웅전 3부작.

25. 귀공이 김용소설을 읽고 있는걸 본 타인들의 반응은?
고등학교때 야자시간마다 들고다니면서 읽었는데 일부 전파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대체로 ‘무협지따위 왜읽냐’였다. 김용소설이 멋지다는 걸 인정해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건 훨씬 뒷이야기.

26. 귀공에게 김용무림이 끼친 영향은?
내 인생의 바이블

27. 김용 캐릭터점을 해보셨습니까? 하셨다면 결과는 맘에 드시는지요?
흑백무상 상백지 상혁지 형제..; 비중이 낮잖아!!

Omake Quiz!

1. 김용이 세운 홍콩에서 잘 나가는 신문 이름?

2. 김용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3. ‘飛雪蓮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鴛’ 의 의미는?

상식수준의 문제지만 답은 가립니다.


1. 명보
2. 생활비 벌려고
3. ‘눈이 몰아치는 날 흰 사슴을 쏘고 글을 비웃는 신비한 협객은 푸른 원앙에 기대다’
10월 11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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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림양 블로그로 트랙백
http://rurun.egloos.com/404327

내 결과는 서검은구록과 비호외전에 나오는 홍화회의 쌍둥이형제 흑백무상이었다. 무공도 꽤 강하고 개성도 있는 인물이지만 비중이 그렇게 높다고 보긴 힘든 캐릭터인지라 조금 아쉽긴 하다. 기왕이면 타편천하무적수 금면불 묘인봉이나 양과 같은 인물이 나와줬으면 했지만 뭐 어차피 재미로 해보는 거니.

해보실 분은 이곳
http://www.54niuniu.com/other/happy015.html
7월 152004
 

제가 철들고 처음으로 제 돈 주고 산 피겨입니다. 올 초까지 한동안 호주에서 살고 있던 Grard 하모군이 어느날 인근 피겨샵에서 발견했다고 하기에 바로 사다달라고 부탁했던 물건입니다. 강남칠괴 + 어린 곽정 피겨 세트이고 이미지는 이지청이 그린 코믹스판 사조영웅전으로부터 나온 겁니다. 나름대로 강남칠괴 각각의 무공자세와 무기라든지 얼굴표정 같은 게 잘 살아있어서 꽤 마음에 들더군요. 회사 옆자리에 계신 분 카메라로 대충 찍은 사진이라 잘 안 나왔고 산지도 꽤 되는 물건입니다만 일단 올려봅니다.

제일 앞줄 맨 왼쪽이 마왕신 한보구, 비천편복 가진악, 묘수서생 주총. 다음줄 왼쪽부터 요시협은 전금발, 소미타 장아생, 어린 곽정, 남산초자 남희인. 제일 뒤가 월녀검 한소영입니다.

나중에 제 카메라라도 사면 개별적으로 찍어서 다시 올려볼 수도 있을 겁니다.

6월 032004
 
중국 후한시대의 조엽이라는 인물이 썼다고 하는 오월춘추라는 책은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상쟁을 기록한 책이다. 거기에는 월나라 병사들의 검술이 오나라의 병사들만 못해 늘 전쟁에서 졌지만 월녀라는 신비의 고수 여검객의 지도를 받아 월나라 병사들의 검술은 천하무적이 됐고 덕분에 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말하자면 월녀란 중국 야사에서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여협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월나라에는 아름다운 한 처녀가 살고있었다. 그녀는 남쪽지방의 인적과 멀리 떨어진 북쪽 대나무 숲속에서 자라났다.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신묘한 검술을 칭찬하였다. 월나라왕은 사신을 파견해 격금무극술을 가르쳐 달라며 후한 예물을 보내 그녀를 초청하였다. 그녀는 월나라왕을 만나러 가다가 자칭 원공이라는 한 늙은이와 만나게 된다. 원공이 그녀에게,

“듣자하니 네가 검술을 제법 잘한다는데 한 수 배워 보자꾸나.”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당당하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 소녀, 어찌감히 노선배를 속일 수 있으리오 노선배께서 한번 시험해 보시죠.”

이에 원공의 손길이 숲속에 있는 대나무에 뻗치자 마자 흡사 고목이 쓰러지듯 댓가지가 잘려져 나갔다. 그녀는 손을 뻗어 떨어지는 대나무 가지를 받아들었다. 원공은 대충대충 다듬은 댓가지를 꼰아쥐고는 그녀를 향해 찔러 나갔는데,그녀의 반응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가늘고 짧은 대나무 끝으로 반격해나갔는데 정확하게 원공의 죽간 끝을 맞추어 찔렀다.
이렇게 서로 3번씩 공수를 주고 받은 후 그녀는 다시 원공을 향해 깊이 찔러나니 원공은 이를 당해낼길이 없어 훌쩍 높은 나무위로 올라가 갑자기 흰원숭이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길게 울부짓다가 어디론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뒤 그녀는 월나라왕을 만나게 되고 왕은 장교들을 보내 그녀로부터 그 신묘한 검술을 배우게 하여 다시 이것을 보졸들에게 가르치니 월나라 군대의 무술은 그 수준이 열국 중에서 제일 높게 되었다.
(출처 : http://www.netuni.net/netropolitan/network/network.asp?id=249&City=%EB%B2%A0%EC%9D%B4%EC%A7%95 )

그리고 위의 이야기를 각색해 신비한 무협의 세계로 이끌어낸 작품이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월녀검이라는 작품이다. 월녀검은 김용의 15편의 작품 중 가장 짧은 작품임과 동시에 가장 나중에 발표한 최후의 작품이기도 하다.(탈고한 시기로 보면 녹정기가 최후의 작품이 된다.)

이 작품은 오나라와 월나라에 얽힌 세 가지의 소재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하나는 위에서 소개한 월녀의 전설, 또 하나는 오월동주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치열했던 오나라와 월나라간의 상쟁과 그 중에서도 와신상담으로 잘 알려진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중국 사대미인의 제일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절세미인 서시와 월나라의 대부 범려의 로맨스다.

우선 월녀라는 인물이 실존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애초에 오월춘추가 정사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잡기에 가까운 기록이기 때문에 오월의 치열했던 경쟁 속에서 양념처럼 피어난 설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소설의 소재로 다루는 데 있어 그런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월녀라는 여류 고수의 기록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무협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작가는 월녀라는 캐릭터를 설정하면서 약간의 양념을 덧붙인다. 즉 소위 무협소설의 여고수라 하면 차가운 이미지로 남성을 짓밟거나 교태로운 이미지로 남성을 홀리는 형태의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는데 오월 양국의 명운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월녀쯤 된다면 대체 어떤 여성이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그 허를 찌르고 산 속에서 양을 치며 지내는 순박한 시골처녀 아청을 등장시킨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는 위의 설화의 원공을 각색한 하얀 원숭이와 매일 같이 싸우면서 절세의 검술을 이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게 검술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고 따라서 검술을 가르칠 줄도 모르기에 범려는 병사들을 그녀와 대련시켜서 모든 병사가 조금씩 그 초식을 익히게 하고 다시 서로에게 그 초식을 가르치게 해서 단 3일의 지도만으로 월나라 병사들의 검술은 천하무적이 된다. 이렇듯 캐릭터 설정뿐만 아니라 검술을 월나라의 병사에게 전수하는 방식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어서 위의 설화를 보고 일반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월녀에 대한 이미지는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월동주와 와신상담에 대한 고사는 워낙에 유명하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고 스토리 전개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이 소설은 월왕 구천의 오왕 부차에 대한 복수 이야기 같은 게 아닌 범려와 서시, 그리고 월녀 아청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범려와 서시가 이후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범려는 이후 월왕 구천의 곁을 떠나 치이자피라고 이름을 바꾸고 다른 나라로 건너가서 큰 부를 이뤘고 서시는 거기서 자결했거나 분노한 오나라 백성들에게 죽었다는 설이 있다. 반대로 범려와 서시는 서시가 오나라로 가기 전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고 이후 둘은 재회해서 태호변에서 뱃놀이를 하며 행복하게 지냈다는 설도 있다. 당연하게도 소설에서 써먹기에 매력적인 소재는 후자이고 작가는 여기에 다시 아청이 실은 범려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3각관계라는 양념을 첨가한다.

아청은 재회의 기쁨에 겨운 두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고 살의를 느껴 서시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게 된다. 이 부분만을 놓고 보자면 여느 흔한 로맨스물 같은 전개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필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부분은 바로 이 장면에 있다. 연적의 가슴에 칼을 겨누고 찌르려 했지만 서시의 아름다움을 본 아청은 그만 그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말게 되고 자신은 그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여겨 칼을 거두고 떠나고 만다. 중국의 많은 문학작품에서 서시의 아름다움을 찬양하지만 정작 그 실물을 볼 길은 없다. 작가는 여기서 서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적조차도 그 아름다움에 감복하고 칼을 거두게 만든 것이다. 대체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럴 수가 있는 것일지 독자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그리고 아청이 서시에게 칼을 겨눌 때 뻗는 기로 인해 내상을 입은 서시는 이후로 종종 가슴에 통증을 느껴 표정을 찡그리며 가슴을 부여잡게 되고 이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여서 후일 여인의 미태를 표현하는 말인 서자봉심(西子捧心)의 근원이 됐다고 하니 독자들은 그 아름다움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이었으리라 여기게 된다.

이렇듯 월녀검이라는 작품은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있던 몇 가지 실화와 설화를 작가가 적당히 짜집기하고 거기에 스스로 각색을 더해 만든 월녀라는 신비의 여성과 서시와 범려에게 바치는 오마쥬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이 작품은 김용의 작품 중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