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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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 번 평을 써둬야겠다고 마음만 먹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홈도 리뉴얼했는데 뭔가 게임에 관해 진지하게 쓴 글 하나정도는 올려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여 쓰기 시작. 늘 그렇듯 플레이해본지 꽤 지난 상태에서 쓰게 되는 글이고 게임이 발매된 시점에서도 한참 벗어난 상태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거 신경써가면서 게임얘기 해본 기억은 없다.

아무튼 이 글에는 내용누설이 상당수 포함돼있고 이 게임은 내용을 미리 알게 될 경우 정말로 게임의 흥미의 90%정도는 날아가버린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아직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 글의 게임 소개부분 이상을 읽지 말기를 권장한다.

제작사 : Kid(참고로 필자가 플레이해본 이 회사의 작품은 Ever17 하나뿐이다. 따라서 이 회사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는 불가능하다.)
발매일 : 2002년 8월 29일
기종 : Dream Cast, Playstation 2(이후 윈도우판으로 이식)
게임 홈페이지 : http://www.kid-game.co.jp/kid/game/game_galkid/infinity/ever17/index_1.html

개요
서기 2017년, 수심 51미터의 바다에 건설된 해양 테마파크 LeMU. 이곳은 온갖 하이 테크놀로지가 결집된 꿈의 놀이공원이다. 그러나 2017년 5월 1일 오후 12시 31분, LeMU 내에는 갑자기 예상외의 침수사고가 일어나고 방문객들은 모두 대피했으나 미처 대피하지 못한 7명의 남녀가 고립된다.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점차 붕괴해가는 LeMU, 완전붕괴까지의 시간제한은 약 1주일. 그리고 만연하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여기서부터는 내용누설이 포함돼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으신 분은 절대로 펼쳐보지 않도록 경고한다. 이 리뷰는 정말로 게임을 플레이해본 사람만을 대상으로 쓰는 것임을 밝혀둔다. 사족이지만 아직 게임을 안 해보았고 일어를 할 줄 아시는 분이라면 꼭 플레이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Leaf의 To Heart의 상업적 성공 이래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는 주로 스토리를 중시하는 성향의 PC용 18금게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예를 들자면 Key의 ‘Kanon’과 ‘Air’, ‘Clannad’라든지 DO의 카나~여동생, Age의 ‘그대가 바라는 영원’과 같은 작품이 있다. 이들은 주로 현실적인 세계에 비현실적인 요소 – 윤회전생, 초능력, 오컬트 등 – 어떻게 보면 신파적인 최루성 요소 – 불치병, 교통사고, 기억상실 등 – 들을 적절히 융합하고 거기에 게임이기에 가능한 선택지에 의한 시나리오 분기를 통해 단순한 트렌디드라마나 환타지 라이트노벨과는 다른 감각의 감동을 플레이어에게 선사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일반인 플레이어도 즐길 수 있도록 18금 요소를 빼고 플랫폼을 PC에서 콘솔게임기로 옮긴 작품들이 나오게 된다. F.O.G의 ‘영원의 인연(久遠の絆:쿠온노키즈나)’ 같은 게임은 키즈아토에서 영향을 받은 느낌을 많이 주지만 나름대로 독자적이고 뛰어난 스토리 구성을 통해 열렬한 지지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예를 든 작품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비주얼노벨들의 전형을 답습했을 뿐 게임적으로 어떤 참신한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비주얼노벨의 상궤를 탈피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작품이 여기 적고자 하는 Ever17이라는 작품이다.

이 게임의 초반부는 얼핏 보면 일종의 재해(Disaster)물을 비주얼 노벨로 옮긴 것이 아닌가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플레이어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고립된 공간에 갇힌 젊은이들이 그 속에서 생존해나가고 결국 마지막에는 탈출해나간다는 전형적인 구조로 전개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고로 인해 밀폐된 해저 테마파크라는 공간이 나오고 거기에 덧붙여 다수의 히로인이 등장하며 플레이어는 이들을 하나 하나 공략해나가는 일반적인 패턴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게임을 플레이해가면서 플레이어는 어떤 위화감을 받게 된다. 게임 초반에 선택하게 되는 두 명의 주인공 – ‘쿠라나리 타케시’라는 청년과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두 명의 시점에서 초반을 전개하게 되는데 어느 쪽으로 가나 일어나는 사건과 등장인물은 거의 유사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르다. 밀폐된 해저도시에 갖히게 되는 인물들은 주인공인 타케시와 소년을 비롯해 해저 테마파크 LeMU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다나카 유비세이인 하루카나 – 통칭 하루카, 코마치 츠구미, 아카네가사키 소라, 거기에 타케시의 시점일 때에는 ‘야가미 코코’라는 소녀가 등장하고 소년의 시점일 때에는 ‘마츠나가 사라’라는 소녀가 등장한다.

눈치가 빠른 플레이어라면 이쯤에서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같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시점과 타케시의 시점에서 전개가 미묘하게 다르다. 양쪽에서 각각 등장하는 인물이 다르게 나온다. 종종 장황한 설명조가 되는 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게임중에 반복해서 평행세계와 다차원우주에 관한 설명이 나오곤 한다. 그리하여 플레이어는 나름대로 두 명의 시나리오는 일종의 패럴렐 월드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두 패럴렐월드를 이어주는 접점은 무엇일까 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고 나면 플레이어 – 당신은 이 게임의 제작자의 의도에 완벽하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다차원 평행우주를 끊임없이 강조해온 이유는 전혀 다른 부분에 있었으며 두 이야기는 실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차 – 17년 – 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완벽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하냐 하고 의문부호를 던질 수도 있겠지만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면 그 당위성에 대해 납득하게 된다. 그 비밀은 이 게임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초월적인 존재 – Blick Winkel(블릭 빙켈 – 제 4시점)의 존재에 달려있다.

여러 차원을 오가면서 모든 사건의 수수께끼를 알고 있고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의 경위를 체험한 존재, 게임상에서 그러한 일이 가능한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정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자신이다. 게임이란 원래 플레이어가 게임의 내용의 진행에 간섭하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게 되는 예술장르라고 이전에 쓴 글에서 서술한 바가 있지만 이 게임에선 그걸 넘어서서 아예 게임 속의 등장인물이 게임 밖의 플레이어를 스토리의 전개에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블릭 빙켈 – 플레이어 – 은 마지막에 주인공인 쿠라나리 타케시에게 모든 비밀을 알려주고 그야말로 플레이어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싶은 결말을 이끌어낸다. 중요한 사실은 정말로 이러한 전개방식은 게임이라는 표현방식이 아니었다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을 일이며 놀랍게도 여기에서의 설명만 들으면 억지로 들릴지도 모르는 결말부분이 실제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게 자연스러운 전개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부분은 사족이 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중요한 부분이기에 언급해둔다. 각 주인공 – 타케시와 소년에게는 각각 두 명의 히로인이 공략대상으로 준비돼있는데 이들 시나리오를 모두 클리어하고 나면 최종장 ‘야가미 코코’편이 발현된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플레이어는 코코가 공략대상이리라 생각하고 플레이를 시작하게 되는데 위와 같이 각 시나리오간의 모든 연계가 몰아치듯 밝혀지고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블릭 빙켈’이 돼서 주인공을 구원하게 된다. 그리고 코코는 마지막에 블릭 빙켈을 향해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긴다. ‘언제고 태어나게 될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라고.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게임 속의 히로인 공략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게임 속의 주인공이 히로인을 공략하는 과정이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이런 형태에서의 ‘공략’은 다른 게임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정말 특이한 형태라 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도 이 최종장은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위에서 적은 이야기 외에도 이 게임에는 많은 숨겨진 요소가 존재한다. 사라와 소년과 츠구미와 타케시의 관계, 어떻게 같은 인물이 다른 시대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의 수수께끼, 해저에서 발견된 치명적인 바이러스 티프 브라우와 그에 상반되는 또 다른 바이러스의 대극적인 관계, 물리학 내지는 유전공학에 관계된 소재들 등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이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최종장이야말로 이 게임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며 전반의 네 개의 챕터는 이 최종장을 위한 서장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츠구미의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내게 할 만큼 절절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게임이었기에 가능했던 그 표현양식이야말로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있기 힘든 이 게임만의 독자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이만 마치도록 한다.

7월 012003
 
2002/5/22(수)

Grandia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SegaSaturn, Playstation

이 게임이 발매된 1997년 12월 18일로부터 만으로 벌써 4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필자가 이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본 것은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1998년 10월 무렵이었다. 이 홈페이지에도 일본의 게임비평지에 실렸던 비평의 번역글이 올라와있고 나 자신도 모 게임잡지를 통해 이 작품의 비평을 쓴 일이 몇번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흘러간 게임의 비평을 또 쓰게 되는 이유는 첫째는 하고픈 이야기를 만족스럽게 전달해낸 일이 없었다는 이유일 테고 둘째로는 그만큼 계속해서 애착을 지니게 만드는 작품이 이 그란디아라는 게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몇번이고 망설이다가, 내가 이 게임을 해보고 받은 감동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주저하다가 결국 이렇게 키보드를 두들기게 된다.

모험, 희망, 꿈, 우정, 사랑. 이제는 진부한 테마이다. 수많은 동화, 만화, 기타 여러 가지 매체들 – 주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 을 통해 너무나 많이 쓰여온 테마이다. 이러한 소재에 식상한 사람들 – 여기서는 게이머 – 은 진지하고 심각한 것을 찾기 시작하고 게임들 또한 그러한 노선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게임들에서는 무겁고 진지한 테마를 다루려 애쓰게 되고 게이머들은 ‘가벼운’ 작품은 취급하려 들지도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개인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게임 업계의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그렇게 우리를 설레이게 만들었던 최초의 소재들, 모험을 위시한 그러한 이야기들은 점차 잊혀지게 된다. 그러한 와중에서 그 진부한 ‘모험’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들고 나온 작품, 그것이 바로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다.

어찌 보면 당시로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자체가 ‘모험’일 수도 있었다. 앞서도 말했듯 당시 나오던 게임들은 그런 ‘무겁고 심오한’ 분위기를 주류로 하고 있었고 게다가 같은 해에 발매된 Square사의 Final Fantasy 7의 성공으로 인해 당시 업체들의 분위기는 FF7과 유사한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면 팔린다는 인식이 퍼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너도나도 그러한 타성에 젖은 아류작들만을 내놓는다면 과연 게임이란 걸 하는 재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런 어줍잖은 진지함과 무거움이 양산되는 가운데(물론 개중에는 오우거배틀 같은 훌륭한 작품도 있었지만..) 과연 할만한 게임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런 와중에서 나온 게임이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며 그러한 현실은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더이상 모험이 없으며 세계의 끝 너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설정으로 반영되게 된다. 작품의 스케일과 제작기간, 그리고 퀄리티로 볼 때 단순히 판매량만으로만 보면 100만개는 당연히 넘겼어야 한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결국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며 말하자면 ‘모험’이란 단어는 모험으로 끝났을 뿐이다. 그러나 과연 이 작품을 그러한 척도로만 평가해야 하는가? 필자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에는 단순한 상업적인 측면을 뛰어넘은, 다른 어떤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게임의 배경은 우리가 사는 현실로 따지면 대략 산업혁명을 전후한 정도의 느낌을 주는 시대가 된다. 거기에는 과거 ‘정령’과 ‘광익인(光翼人)’의 힘을 이용해 엔쥬르라는 위대한 고대문명을 이룩한 자들이 있었고 그러한 고대문명의 유적들을 발굴해내는 모험가들이 있었다. 대륙의 끝에는 ‘세계의 끝’이라고 불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 있고 사람들은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흘러가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세상엔 더이상 모험이라는 것을 할 여지는 없으며 모험가란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도중 항구도시 팜에 사는 저스틴이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위대한 모험가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이 소년은 자신은 위대한 모험가가 되겠다고 늘 큰소리치며 마을에서 말썽꾸러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소년의 가장 큰 보물은 아버지의 유물인 정령석. 그리고 엔쥬르 문명의 유적을 발굴한 할아버지와 같은 위대한 모험가가 되는 것이 소년의 가장 끈 쿰이다. 그러던 도중 어느날 가라일 군의 유적 발굴 현장에서 아렌트의 리에테라는 미소녀와 만나게 되고 세계에 ‘끝’이란 건 없다는 걸 확신하게 된 저스틴은 드디어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척 보기에도 진부해보이는 이 스토리. 실제로 플레이를 해봐도 스토리 자체에 어떤 참신함 같은 것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막상 플레이를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침식을 잊고 이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이 이 게임을 그리도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기법적인 측면에서 따져보자면 우선 그 연출력을 평가할 수 있다. 시기적절하게 나오는 동영상, 그러면서도 그 동영상에만 의지하지 않고 그 전후의 연결을 절묘하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흘러나오는 이와다레 노리유키씨의 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게다가 시스템이 참신하다. 360도로 3D 필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이곳저곳 헤매보기도 하면서 3D 필드 특유의 ‘보고싶은 곳을 보고 가고싶은 곳으로 간다’는 느낌을 훌륭하게 살리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의 전투 시스템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전투시스템 중에서는 그 어떤 게임보다도 독창적이고 훌륭하며 박진감 넘치게 디자인됐다고 감히 단언한다. 그리하여 스토리와 스토리가 연결되는 고리에서 플레이어는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게 되고 다시금 스토리가 전개되는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다시 그 적절한 연출에 감동을 받으면서 스토리를 만끽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기법적인 측면이라고만 보기에는 이 게임의 스토리는 매우 탄탄한 설정들을 바탕에 두고 있다. 고대문명, 정령석, 광익인, 가이아.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점차 이 작품의 환타지물로서의 ‘세계’를 느끼면서 그 내용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러한 탄탄한 설정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 작품은 ‘행복한’ 작품이다. 주인공 저스틴의 행동을 보고있으면 절로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웃음이 나오게 된다. 또한 소년의 마음에 동조되어 어린 시절에 품었던 ‘모험’에 대한 동경이 되살아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변해간다. 덕분에 세상은 구원받고 결국에 가서는 모두가 –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조차 – 행복해진다. 단순한 진지함이나 무거움이 아닌, 때로는 이렇게 플레이하면서 감동할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고 행복한 기분에 잠기게 된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게임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게이머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게임을 하면서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리하여 이 게임은 그러한 ‘세계의 끝’이라는 터부를 멋지게 깨부수고 플레이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Game Arts라는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근래 찾아보기 힘든 제작사, 그리고 미야지 타케시라는 뛰어난 디렉터가 아니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었을 희대의 초절명작이 바로 이 그란디아라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감동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플레이하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역대 일본 RPG 최고의 수작으로도 꼽고있는 작품이니 아직도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구해서 해보도록 하자.

모종의 인물: 늦었지만, 잘 읽었습니다. 🙂  [05/25-01:28]
룬: 맞아. 진한 감동이 밀려오지 (……다 안깬사람이 할 소리냐 이게 –;… 근데 사실인걸!)  [06/17-19:54]

5월 212003
 

1. Lunar the Silver Star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Mega CD  발매일 : 1992/6/26  가격 : 7800엔

이 작품은 세가가 당시 주력기종이었던 Mega Drive의 CD-ROM 기기인 메가시디를 발매하기 이전부터 주목을 모으던 작품이다. 경쟁사였던 닌텐도의 게임기에 비해 고정적인 팬을 확보할 수 있는 장르인 RPG가 취약했던 당시 세가의 입장에서는 간판 시리즈였던 Phantasy Star 시리즈 이외에 또 다른 간판 타이틀이 필요했던 상황이었고 따라서 메가시디의 발매에 맞춰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작사인 게임아츠사의 내부사정과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인해 발매일은 차일 피일 미루어지고 결국 발매는 메가시디 발매 이듬해의 6월, 거의 반 년 이후에나 이루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이 게임을 동시발매타이틀에 포함시키지 못한 것이 메가시디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각설하고 작품 자체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이 게임은 애초에 매체를 CD ROM으로 잡은 탓에 당시 사용자들은 화려한(당시 기준으로서는 초당 12~13프레임의 애니메이션만 나와도 화려한 것이었다.) 동영상을 기대했으나 의외로 동영상은 매우 간소한 편이었으며 비슷한 시기에 발매됐던 스퀘어의 Final Fantasy 5처럼 SD캐릭터의 액션 같은 것도 없이 게임의 진행은 대부분 텍스트 위주로 이루어진다. 당연하게도 그 점을 기대했던 플레이어는 실망감을 느끼면서 이 작품을 ‘기대 이하’로 취급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 게임의 그런 부분은 제작자의 성향에 기인한다. 즉 디렉터였던 미야치 요이치씨가 추구하는 게임의 성향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모 아는 분의 표현을 빌어 굳이 비교하자면 Dragon Quest식의, 즉 이야기의 흐름을 ‘보고 듣는’것을 통해 받아들이기보다는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받아들이는 방식을 선호했고 이러한 성향이 게임에 그대로 반영됐기에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예상 외로 비주얼신이 적었던 문제는 그러한 제작자의 성향으로 인한 문제이며 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일 뿐이지 게임 자체의 결함이라고 볼 수는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러한 ‘텍스트를 위주로 하는 전개’로서 이 게임의 시나리오 전개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간단한 작품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루나라는 세계에는 알테나라는 여신이 있으며 여신은 매번 인간으로 환생해서 세상을 다스린다. 여신은 네 마리의 용의 수호를 받고 있으며 이 네 마리의 용을 인정을 받은 이는 여신의 절대적인 수호자 드래곤 마스터가 된다. 부르그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아레스라는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전대의 드래곤마스터 다인을 존경해왔으며 자신도 언젠가 모험을 떠나 드래곤 마스터가 되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역시 부르그 마을에는 루나라는 노랫소리가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으며 아레스의 소꿉친구이기도 했다. 어느날 아레스는 친구 라무스의 꼬임에 넘어가 백룡의 동굴에 용의 보석을 얻기 위해 들어가고 이는 모든 모험의 실마리가 된다.

이상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루나라는 소녀는 알테나의 환생체이며 주인공 아레스는 드래곤 마스터가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고전적인 소재 – 즉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이다. 이 부분은 앞에서도 설명한 제작자는 매우 고전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성향을 지녔다는 부분과도 일치한다. 주인공 아레스는 많은 고난을 겪고 최후의 보스를 쓰러뜨리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원점으로 돌아간다. 세계를 구하는 것은 여신과 드래곤마스터가 아닌 ‘소녀를 생각하는 소년의 외침’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다른 게임에 비해 몇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첫째가 전투 시스템이다. 이후의 루나 EB와 그란디아로 계승 발전되면서 이어지는 이 전투 시스템은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 자체의 전투시스템은 그렇게까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후일의 작품 – 특히 그란디아의 훌륭한 전투시스템의 초석이 됐다는 사실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게다가 필드와 전투 사이에서 로딩이 없이 상당히 스무스한 연결을 이루어냄으로써 전투로 인해 게임의 흐름이 끊어질 염려를 최소화하고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음악이다. 작곡가인 이와다레 노리유키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이 게임의 음악은 CD의 오디오트랙에 미디연주곡으로 들어가있으며 게임의 세계관과 각 지역의 특색을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진 이와다레씨와 게임아츠의 만남은 놀라운 시너지효과를 일궈내면서 후속작들로 이어지게 된다.

2. Lunar Eternal Blue

제작사 : Game Arts  기종 : Mega CD  발매일 : 1994/12/22  가격 : 9800엔

전작이 게임의 세계관에 있어서 ‘루나’라는 무대를 소개하고 ‘여신과 드래곤마스터’의 존재를 소개하는 작품이었다면 후속편인 이 작품은 보다 심도있게 작품의 세계관을 소개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전편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던 푸른 별의 존재,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결의한 여신 알테나의 선택과 그 이후. 그리고 루시아.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뜻깊은 작품이다. 거의 사장세에 접어가고 있던 메가 드라이브와 메가시디의 말기에 나온 그야말로 최후의 걸작. 또한 루나라는 세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작품이 발매되던 당시 잡지에 실렸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애초에 3부작 구성으로 기획하고 있었으며 전편이 1부, 이번 편이 2부에 해당하며 작품의 말미에 애초에 기획했던 3부의 내용을 합쳐서 넣은 형식을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2부와 3부의 내용은 거의 이어지는 부분이고 그렇게 뭉뚱그려놓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그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2부 마지막의 여운을 느끼면서 감동의 대미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편에 비해 캐릭터의 개성이 상당히 비중있게 다가온다. 전편은 이야기의 구도 자체는 훌륭했지만 캐릭터의 개성을 전달하는데는 그렇게까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야기의 볼륨 자체도 짧은 편이었고 플레이어의 상상의 여지가 많아진다는 장점이 있긴 했지만 이러한 일본식의 ‘이야기’를 즐기는 RPG에서 그런 부분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될 소지가 많다. 하지만 본작에서는 그런 캐릭터 하나 하나의 배경스토리들이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그것이 단순한 배경 스토리에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큰 줄기 – 바로 루시아가 인간에게 감화돼가는 과정에 연결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점은 가레온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다. 전편에서 마법황제로 등장해서 여신을 이용해 세계를 폭주시켰던 악역이자 최종보스였던 남자. 그는 두 작품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단 두 명의 인물 중 하나이다. 백룡 나루가 평범한 인간이었던 히이로와 초인적인 존재들 – 여신과 수호룡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면 가레온은 그런 히이로를 채찍질해가면서 조파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로 키워내는, 말하자면 스스로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주인공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왜 그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개과천선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는 힘에 도취해서 이성을 잃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으며 역시 ‘힘’에 의지하려고 했던 루시아를 계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시아, 이 작품의 히로인이자 핵심적인 키워드를 지닌 인물이다. 전편에 비해 세련된 비주얼을 중시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작품의 메인테마는 고전적이다. 전편에 비해 평균연령이 높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거기에 전편처럼 여신과 드래곤 마스터라는 초월적인 존재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테마를 보여준다. 루시아는 전편의 알테나와 같은 초월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만 ‘인간’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히이로 일행과의 모험을 통해 점차 인간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히이로를 믿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푸른 별로 돌아가 버리고 히이로는 다시 루시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떠난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숨바꼭질하는 설정 같으면서도 일본에서 흔히 보이는 용사물의 패턴에서 상당히 일탈해있으며 그 덕분에 플레이어는 뻔해보이면서도 루시아라는 캐릭터에게 연민과 동정, 애증과 숭배감 등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앞의 단락에서도 언급했지만 루나 EB는 전편인 SS와 비교해서 상당히 비주얼적인 면을 중시하고 있다. 전편에서 시디롬매체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비주얼신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의식한 탓인지 본편에서는 상당량의 비주얼신이 들어가있다. 그것도 단순히 애니메이션을 동영상으로 코딩하는 방식이 아닌 프레임 하나하나를 일일이 극한의 도트노가다를 해가면서 그려내서 최대한 깨끗한 화상을 보여주고있다는 점은 제작사인 게임아츠 전통의 놀라운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본작의 전투시스템은 전편의 전투와 그란디아를 놓고 봤을 때 중간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란디아와 같은 세미리얼타임은 아니고 전편과 같은 턴제 전투를 취하고 있지만 필살기의 존재, 적의 공격패턴을 파악 후 공격 우선순위를 중시하면서 행동을 결정하는 전략적인 전투, 그리고 전투시의 영역의 활용에 따른 우열의 변화 등은 그란디아에서 보이는 전투시스템에 상당히 근접해있으면서 전작을 충실히 계승 발전한 것이다. 또한 전투의 템포가 매우 좋아서 역시 전편 못지 않은 스무스한 전개가 가능하다.

음악의 퀄리티 또한 상승해있다. 전편과 같은 오디오트랙 음원이 아닌 샘플링파일을 스트리밍 재생하고있고 16비트기기의 하드웨어적 한계로 인해 음질 자체는 열악한 편이지만 이는 작곡자 이와다레 노리유키씨가 작곡한 무려 3시간에 달하는 음악을 빠짐 없이 모두 넣기 위해 선택한 피치 못할 방법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시기의 이와다레씨의 작곡감각은 절정에 달해있었고 덕분에 장면 장면마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아지경에 몰입해있을 수 있었으며 절대 음악에 게임이 뒤덮이지 않고 게임 분위기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대단히 훌륭하다.

이후로 이 시리즈는 세가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통해 리메이크된 바 있지만 그 어느 작품도 메가시디판의 원작만한 감동을 일궈내진 못했다. 무엇보다 이식을 원 제작사인 게임아츠에서 직접 한 게 아닌 카도카와측에서 맡았다는 점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덕분에 이 메가시디로 나왔던 루나 시리즈는 팬들의 가슴 속에 그야말로 ‘환상의 명작’으로 자리잡고있는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마지막, 너저분한 몰골로 거꾸로 매달려 크리스탈을 두들기고있던 히이로의 모습은 필자의 게임인생에 있어 손가락으로 꼽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고 단언한다.

5월 212003
 

[2002/3/6]Shenmue 1장 요코스카편

이제는 쉔무라는 작품이 나온지도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드림캐스트 발표 초기부터 초특급 프로듀서 스즈키 유 최초의 컨슈머용 타이틀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으나 결국 상업적으로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한 작품이다.

왜 이제 와서 발매된지 2년이 돼가는, 그것도 이미 기존에 모 잡지와 웹진 등에 관련 글을 쓴 바 있는 이 게임의 리뷰를 또 쓰느냐 하면 답은 간단하다. 좋아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게임을 상당히 즐겁게 플레이했다. 거리 하나를 그대로 묘사해놓은 정성이 느껴지는 필드(방향치인 필자에게 있어선 한참의 시간을 들여 적응하기 전까지는 거의 미궁수준이긴 했지만..), 그리고 그곳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하나하나의 ‘생활’이 느껴진다는 것은 확실히 범상치는 않은 일이었다.

또한 이 게임은 특유의 무협소설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있다. 주인공 하즈키 료는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하즈키류 유술을 수련해왔고 이 하즈키류 유술이라는 것이 또한 타류의 기법을 폭넓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중국에서 수련을 쌓은 일이 있기에 료가 배운 무술 중에는 중국 무술에서 보이는 기술들이 상당수 보인다. 또한 중국에서 찾아온 남제라는 사내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료의 아버지를 죽이고 료는 눈앞에서 살해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다. 무협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중화’라는 소재와 ‘복수를 부르는 복수’ 라는 요소가 보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식상한 소재일지도 모르지만 게임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신선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김용선생의 작품을 비롯해 무협 작품들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기에 이런 점 또한 매우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무협’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생소한 장르이다.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 선생님의 소설이 근년에 들어서야 일본에서 번역출간되기 시작했고 아직 상당수의 일본인들은 ‘무협’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일이 드문 형편이다. 그렇기에 이 게임의 그러한 무협적인 분위기는 조금은 시기상조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이 게임에서 내세우고 있는 FREE(Full Reactive Eyes Entertainment)라는 어거지로 짜맞춘듯한 장르명보다는 그냥 ‘무협 액션 어드벤처’ 정도의 장르를 내세웠다면 오히려 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작품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기존의 일제 게임들에 비하면 획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외길 노선 따라가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업적인 성공의 여부를 떠나 아직도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스즈키 유, 그리고 세가. 이상론적인 발언이 되긴 하겠지만 세가는 이 게임의 상업적 성공보다도 ‘우리는 이런 게임을 만든다’라는 것을 보여주고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게임은 너무 긴 이야기..라기보다는 게임 자체의 시스템이 방대하다보니 한 번에 그 이야기를 담을 수가 없었기에 이 작품은 한 번에 끝낼 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시리즈화를 기획하게 된다. 그리하여 1편에서는 료가 부친의 원수를 찾아 홍콩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마무리를 짓게 되며 다음 편을 기약하게 된다. 고로 이 글 또한 쉔무 2 평론에서 이어지게 된다.

[2002/8/3] Shenmue II

전편으로부터 1년 반, 드디어 이 게임이 발매되었을 때 필자는 가슴이 설레였다. 과연 홍콩으로 건너간 주인공 하즈키 료는 어찌 되는 것일까. 무협의 본고장 중국에 한층 더 가까워졌으니 과연 어떤 내용이 전개될까. 히로인 레이셴화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등등. 역시나 발매되고 플레이한지는 상당시간이 지난 작품이지만 필자는 절대 최신작을 위주로 게임 평론을 쓰는 성격은 아니기에 늘 그렇듯이 무책임하게 키보드를 두드려나간다.

일단 시스템적인 면부터 살펴보면 플레이어의 편의를 상당히 고려한 부분들이 보인다. 인터페이스가 상당히 친절해져서 전편보다는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이다. 전작에서 길을 헤매느라 고생한 플레이어들을 위한 배려인지 길 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면 길을 안내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각 구역마다 거리의 지도를 구입할 수 있게 만들어서 보다 길을 찾는데 편의를 도모하고있다. 특정한 시간에 벌어지는 이벤트를 위해 자동으로 시간을 보내주는 기능도 생겼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보다 친절설계를 도모하고있기에 플레이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또한 게임의 엔진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이미 전작만으로 드림캐스트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내고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그래픽 측면에서 큰 발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래픽 처리는 대단히 훌륭하다. 특별히 따로 동영상 등의 이벤트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거리를 돌아다니고있는데 길거리에 보이는 노인이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으며 그 모션이 굉장히 자연스럽다고 생각해보라. 3D CG에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인체의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에서는 그걸 보란듯이 해내고있다. 굉장하지 않은가.

내용 또한 훌륭하다. 전작은 그야말로 서장으로서의 성격밖에 지니지 못했기에 시나리오상으로는 크게 논할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무대가 보다 중국에 가깝다. 고로 보다 무협적인 분위기를 훌륭하게 연출해낸다. 관제묘에서 義의 마음가짐을 배울 때의 연출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뻔한 것이었지만 거기서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술한 노인에게 태극권의 소금타라는 초식을 전수받고 나서 주인공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초식을 시전해냈는데 단풍나무를 가격하자 나무에서 단풍이 우수수 떨어진다. 뭔가 흐뭇해하고있는데 노인이 나무에 손을 대고있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떠나가고 잠시 뒤에 주인공이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풍이 무성하게 떨어져내린다. 상투적인 연출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무협세계에서 볼품없는 인물이 실은 숨겨진 고수였다는 점을 피력하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연출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연출을 보고 감동하지 말라고 하면 그게 더 무리일 것이다.

무엇보다 쉔무2에서 성공하고 있는 부분은 연출이다. 전작의 연출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이야기의 스케일이 주는 특성도 있기에 그런 부분을 가볍게 능가한다. 특히 디스크 3 마지막의 빌딩 잠입이벤트에서 주는 점점 상승해가는 긴박감은 그야말로 클라이맥스를 표현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두우와의 대결에서 펼쳐지는 장면 – 헬기에서 부모의 원수가 사다리에 매달려 지켜보고있고 빌딩의 옥상에서 이번 편을 통틀어 몇번이고 주인공을 물먹인 숙적과 대결을 펼친다 – 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동영상 같은 것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드캐 본체에서 실제 리얼타임 CG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더욱 높게 평가해줄 수 있다. 게다가 이 게임의 제작자인 스즈키 유는 그런 장면에서 어떤 카메라워크를 잡아야 최대한 연출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 알고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정말로 훌륭한 연출이다.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의 임팩트 또한 좋았다. 조금은 비열한 소인배의 이미지로 등장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주인공을 도와주게 되는 인무응, 처음에는 소매치기노릇을 하지만 역시 불의에 맞서나가는 주인공에게 감화받는 헤븐즈의 소년 예현옹. 역시 낯선 땅에서 료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소녀 죠이와 훈방매, 드디어 등장한 히로인 영사화 등등. (편의상 한자 이름은 모두 우리나라 발음으로 읽었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역시 쉔무 2의 백미는 홍수영누님인 것이다! 푸른 차이나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면서 팔극권을 수련하시던 그분의 모습은 쿨하고 아름답다! 깡패들에게 패배해서 얻어터지고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자 홀연히 나타나서 깡패들을 쓰러뜨리고 주인공을 구해가는 누님의 모습! 멋지다! 무엇보다 백미는 문제의 외문정주! 이건 해보지 않으면 차마 그 감동을 짐작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번 편도 아쉬움은 많이 남긴다. 마지막의 광학레이저부분은 그렇다 쳐도 어쨌든 또다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게다가 드림캐스트는 거의 사장되어가는 상태. 그러나 쉔무 2의 엑스박스판 동영상이 공개된 상태이고 이로 미루어보아 쉔무 3는 엑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농후해보인다. 무엇보다 드캐보다는 훨씬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을 지닌 엑박이기에 여기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하즈키 료는 드디어 영사화와 만나고 이야기는 슬슬 본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는 다음 회를 봐야만 알 수 있는 노릇이다.

5월 212003
 
제 목:[피나] 그란디아 게임비평 기사 관련자료:없음 [248]
보낸이:채유나 (넓은 ) 1999-07-16 02:33 조회:63
아래 글은 게임비평 1998년 3월호 12~13페이지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히이로님이 올리신다는 대담과 다른 것이길래 해석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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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을 향항 제작진의 신념(こだわり)이 돋보이는 양작

~ 제작기간 4년과 7억엔의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게임아츠의 신작RPG
곳곳에 장인정신이 어린 신념의 사상을 볼 수 있다 ~

▷ FF7에 대항한 신념의 RPG

표현력이 풍부해진 하드에서 제작자의 상상력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RPG분야의 경우는 “영화와 게임의 융합”이라는 명제가 최근 수년간
주창되어지고 있다. 그 최전방이 FF7을 필두로 한 스퀘어RPG군으로,
지금의 RPG는 표현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가 되었다.
그 결과 제작비용이 급등하였고, 많은 메이커에게 있어서 도전하기
힘든 장르가 되버린 것도 사실이다. 포켓몬스터의 성공으로 시스템을
중시한 RPG가 재평가받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계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배경속에서「그란디아」는 대작을 지향한 FF7과
같은 지표에 서면서 전혀 다른 수법을 사용하여 하나의 회답을 제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세계의 끝’의 발견으로, 모험이라는 말이 퇴색되어가던
시대. 그럼에도 고대유적에 얽힌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인적이
닿지않은 땅을 향해 떠나는 모험자들이 있었다… 이것이「그란디아」
의 기본설정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순진하고 정의감에 가득찬 소년이
모험도중에 많은 동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정신적인 성장을 이루면서,
고대유적의 수수께끼를 밝혀내 세계를 파멸로부터 구해낸다는 것.
그야말로 전통 모험활극의 재현이다. 거기에 그려져있는 것은
「사랑과 용기와 꿈의 모험의 여행」으로, 영화와 소설등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창피해서 보고 있을 수 없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패드를 쥐고 있는 입장에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않은 채 그저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가 버린다. 게임의 완성도와 함께, 인터랙티브
미디어라는 이야기의 힘을 다시한번 깨달은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제작자인 게임아츠의 작품 중에서도 「기운넘치는 남자아이의 이야기」
로서는 오랫만의 쾌작으로, 시대에 굴하지않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성실히 만들어내간 것이 결과적으로 양작을 낳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제시한 것으로도 느껴진다.
작품의 세부에 대해서는 높은 기술력으로 뒷받침된, 원점회귀적인
추구방식을 평가하고 싶다. 이 게임에서는 배경을 리얼타임폴리곤으로
그리고, 그 위에 2D캐릭터를 도트로 그린 것을 겹침으로서, 완벽하게
동조를 이루게 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전투시등에 카메라의 이동에
따라 화면이 부드럽게 확장하는 점은 그야말로 게임아츠의 기술력이
남김없이 발휘된 부분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드라마부분은 도트에
의한 애니메이션 연기로 그려져있다. 화면상에 캐릭터의 얼굴창이
표시되고 목소리를 통한 연기도 있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일
뿐이다. 이 애니메이션이 정말 잘 그려져 있기때문에, 지금의 폴리곤
캐릭터들은 낼 수 없는 따스함이 넘치고 있다. 특히 “쟁반촙”과
“응원간바”등은, 도트화의 절묘함을 살린 멋진 연출이다. 이것들은
메가CD시대와 아무런 차이 없이 자신들의 기반을 다져간 결과,
보편적인 표현에 이르렀다는 인상마저 받게한다. 그 결과「그란디아」
의 세계는, 마을부터 사람들까지, 모든것에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또「주인공은 너다」라는 낡은 프레이즈를, 끝까지 추구한 점도
평가하고 싶다. 국산RPG, 특히 스토리성을 중시한 작품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플레이어와 캐릭터의 일체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고심해왔다. 「그란디아」에서는 이 점, 주인공 져스틴의 독립된
인격을 인정하면서 내면을 확실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관객의 시점에서
플레이어에게 감정이입을 느끼게 만드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그 위에 많은 동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작품은『이별』을 그린
작품으로서도 이색적이지 않을까), 파티를 감싸는 따스함, 더욱이
주인공의 존재의의를 파헤쳐가는 이야기의 구성에 의해, 주인공과
플레이어의 관계를 보다 확고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해 준비된 대사량은 일반 RPG의 수준을 가볍게 제치고 있다.
세계의 위기와 져스틴의 정신적인 성장을 이벤트에 의지하지않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실하게 그려넣는 것으로「그란디아」는
피상적인 말의 나열에 이르는 일 없이, 플레이어를 이야기속으로
끌어들였다.

▷ 인간찬가로 가득찬 메시지성

「그란디아」의 모험은「세계의 끝」을 넘어, 낯선 땅을 밟으며
나아가는 발견의 여행이다. 그 앞을 항상 근대장비를 갖춘 가라일군이
먼저 도달해 앞을 막는다. 세계는 모험자의 발이 아닌, 기술이 개척하는
시대를 맞이하여, 져스틴은 뒤쳐진 히어로. 말그래도 돈키호테인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세계를 구하는 것은 최신기술이 아닌 돈키호테의 마음.
말하자면, 가라일군은 오랜 사회질서로, 주인공은 그것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어리석지만 강한 젊은이의 상징일 것이다. 그리고
오랜 관습에 통풍구를 뚫는 것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힘이라는 점에,
「그란디아」의 끝없는 인간찬가와 주요 유저층일 학교와 학원으로
정신이 없는 어린이들을 향한 메시지가 있다. 그것과 동시에, 게임산업의
확대에 의해, 크리에이터의 무한의 상상력이 명작을 낳는다는 개척자정신이
소실되어가고 있는 요즈음, 그래도 명작을 추구하여「세계의 끝」에 도전한
감독 미야지씨를 비롯한 제작진의 모습을 겹쳐보는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어찌됐건 스토리주도형RPG라는 틀속에서, 이야기를 게임에 정면으로
밀어넣은(直球勝負で落としこんだ) 쾌작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그때까지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이것도
이야기의 완결방식에 대한 작가의 시점이며, 제시되지 않았던 선택기로서
그 틈을 상상해보는 쪽이 좋을듯하다. 그렇다곤해도 져스틴은 어떤 얼굴로
어머니에게「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을 했을까. 모든것이 끝난 지금,
그것이 궁금하다. (편집부 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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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사를 해석해봤습니다. 미숙-_-
html파일로 원본이 있으므로 원하시는 분은 보내드리죠^^;

기사의 비유가 재밌네요. 돈키호테라..O_O

『その强さがあれば,すべてを守れると思った…』

< ジョウイ アトレイド >

■幻想水滸傳 2■

Starless: 지금은 제가 시삽을 맡고 있는 하이텔 게임아츠 소모임에서 채유나님(Tailto)이 번역해서 올려주셨던 글입니다. 꽤 마음에 들었던 글인지라 염치없이 부탁을 해봤는데 이 번역글을 게재하는 걸 흔쾌히 허락해주신 유나님께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12/19]
허우영: 하다보면 열라 감동적인 부분이 많지. (언제봐도 처음 출발때의 그 모습은 감동이지)   [04/02-18:42]
허우영: 지금 뒤늦게 플레이중이기는 하지만 시간관계상 대사부분을 직접 해석하지 않고 매뉴얼을 보는거 말고는 다 똑같은데…나름대로는 징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게임…내가 붙잡은 게임 치고 진짜 진지하게 한 몇 안되는 게임이기도 하고…기사도 괜찮구먼.  [04/02-18:43]

5월 202003
 
팬터그램사에서 오랜 발매연기를 거쳐 드디어 등장한 국산 대작 RTS게임, 과연 Blizzard사의 작품들의 잡탕에 불과한가?

블리저드사의 스타크래프트의 대성공 이후 국내 게임시장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이하 RTS – Real Time Strategy – 로 표기)게임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국산 게임들이 RTS를 표방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흐름 가운데 나오게 된 작품이 팬터그램사의 Kingdom Under Fire(이하 KUF로 표기)이다. 오랜 제작기간, 대규모의 제작비, 해외시장을 겨냥한 모든 대사의 영어더빙 등 대작을 표방하고 나선 국내 게임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발매와 함께 게이머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요지는 간단하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린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의 아류작에 불과하다는 견해와 게임 자체를 잘 만들었으니 그런 건 상관없지 않는가 하는 견해가 엇갈리는 것이다. 실제로 KUF의 구성은 일련의 블리저드사의 작품들과 구성이 대단히 흡사하다. 스타크래프트를 익숙하게 플레이 해본 사람이라면 KUF의 구성에 대단히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자원 채취, 건물 건설과 유닛생산, 그에 따라 테크트리를 올리는 균형의 조화 등이 그러하다. 일단 당장 놓고 보기에는 이 지나칠 정도의 흡사함에 ‘표절’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당장 욕부터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국내 게임시장의 영세성을 우선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리 피땀을 흘려서 게임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자본력과 기술력의 부족으로 인해 해외에서 개발된 화려한 게임들에 익숙해진 유저들의 눈을 만족시키기가 힘들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불법 복사시장마저 만연해있다. 그리하여 게임은 팔리지 않게 되며 게임에 투자한 자본의 회수가 되지 않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게임잡지 번들로 넘기게 되기도 한다. 이 번들 문제 때문에 최근에 국내 유수의 게임 유통업체인 K모사가 심한 논란을 빚기도 했을 만큼 제작사에 있어서 자신들의 작품을 잡지 부록으로 넘긴다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 만큼 팔린다는 보장이 없는 게임을 무리하게 만들어내기가 어려운 현실이기에 일단은 유저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서 일단 팔리게 만들고 보는 것이 당장 국내 제작사들의 현안이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가 국민게임으로까지 확산됐을 무렵 게임 광고를 보면 ‘스타크래프트만큼 XX한’ ‘스타크래프트보다 더 XX한’이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게임 형식이 유사하다고 해서 대놓고 비판부터 하기가 힘든 것이 국내 게임시장의 현실인 것이다. 블리저드사가 최초로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가 된 워크래프트 또한 당시에는 듄의 아류작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결국 듄의 후속작은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으나 블리저드사는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연이은 히트를 통해 현재 최고의 PC용 게임 제작사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작품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구미쪽에서는 수많은 제작사들이 RTS게임을 내놓고 있고 그들은 모두 다른 게임들로부터 자신의 게임을 차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KUF는 이 점에서는 실패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해외의 평론들에서도 이 게임의 오리지널리티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곳이 있다. 기존의 국산 게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거두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점은 대단히 아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게임 자체의 질은 어떠한가.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싶다. 일단 게임 곳곳에 대단히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2D로 표시된 유닛들은 매우 유연하게 움직여주며 맵의 배경 또한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유닛 하나 하나의 특성을 상당히 잘 살리고 있다. 인간종족연합과 암흑동맹으로 구분되는 양대 세력마다 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 유닛들이 있으며 이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또한 옛날에 나온 대전략 시리즈를 해본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 개개의 유닛마다 경험치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많은 전투를 경험하고 살아남은 유닛은 그만큼 잘 싸울 수 있으며 이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신경 써서 유닛컨트롤을 해서 살리는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에는 시나리오에서만 등장하던 영웅 유닛을 일반 대전에서도 사용 가능하게 함으로써 일발역전을 노려보거나 승기를 굳혔을 때 확실한 농락용(?) 유닛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다 보면 나오는 RPG모드에서는 디아블로식의 전개를 통해 영웅을 성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진행시 RPG모드에서 성장시킨 영웅의 능력치를 RTS모드에서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참신한 발상으로 느껴졌다. 또한 세세한 면에서 보다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추구한 점 또한 좋았다. 놀고 있는 일꾼유닛을 자동으로 찾아주기, 그룹리더를 설정 후 포메이션 전개 등의 부분은 실제로 RTS게임에 대해 풍부한 플레이경험을 지닌 제작진들이 신경을 써서 배려한 부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가, 물론 아쉬운 점은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쉽게 여기는 부분이라면 전투에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스타크래프트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유닛들이 전투를 벌일 때 ‘파괴’ 라는 요소를 훌륭하게 충족시켜준다. 확실하게 부서지는 효과음과 화면효과는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껴지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KUF에서는 이 점이 부족하다. 유닛간에 전투가 벌어져도 뭔가 밋밋한 느낌이다. 그냥 툭탁거리면서 치고 박는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마법유닛의 강력한 기술을 써야 간신히 뭔가 나오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또한 많은 플레이어들이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유닛들의 AI문제가 있다. 시나리오 모드에서 중간세이브가 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게임에 싫증을 느껴지게 만드는 요소이다. 미션에 등장하는 영웅 유닛은 대단히 강력한 위력을 지녔기에 잘만 운영하면 클리어를 손쉽게 만들어주지만 영웅 유닛이 사망하면 바로 게임오버가 되며 이는 초보자에게 있어서 대단히 좌절스러운 일이다. 블리저드사의 배틀넷에 해당되는 워게이트 또한 아직 불안정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배틀넷 서버 초기의 불안정함을 생각해보면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어쨌든 팬터그램 측에서도 꾸준한 패치를 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보완할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2년여에 걸친 오랜 발매 연기 끝에 KUF가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었다. 아쉬운 부분도 많고 잘 된 부분도 많지만 팬터그램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국산 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역작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이 앞으로도 꾸준한 생명력을 지니고 살아남을 것인지 아니면 속속들이 새로 등장하는 또 다른 형태의 RTS게임들에 밀려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지는 앞으로 팬터그램측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고 본다.

관련 작품

Starcraft
제작사 : Blizzard / 기종 : PC / 발매일 : 1997년
워크래프트의 시스템을 계승한 SF RTS게임. 높은 전략성과 뛰어난 설정 등으로 인해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특히 국내에서는 게임방 등을 통해 널리 보급되어 국민게임의 영역에 자리잡은 게임.

Diablo
제작사 : Blizzard / 기종 : PC / 발매일 : 1995년
기존의 미국식 RPG 분위기에 액션RPG의 요소를 도입하고 배틀넷을 통한 네트웍플레이의 지원, 다양한 아이템 컬렉션을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재미로 큰 히트를 기록한 블리저드사의 작품.

2월 152003
 
   필자와 Ultima 시리즈

오늘날의 PC용 RPG라는 장르가 생겨날 수 있었던 원동력, 비디오게임사상 최고의 RPG 등등 그 어떤 호화찬란한 수식어를 붙여도 절대 과분하지 않을 아마도 유일한 게임, 그것이 바로 Ultima 시리즈이며 그중에서도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바로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Ultima IV : Quest of the Avatar이다. 필자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집에서 Apple 2 PC를 가지고 많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던 당시 처음에 주로 하던 게임은 단순한 슈팅이나 액션 등의 아케이드 게임 류였다. 물론 이들은 쉽고 재미있었으며 이러한 류의 게임의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당시로서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쉽게 클리어할 수 있고 금방 질려버리는 게임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이 몰입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접하게 된 이 Ultima IV:Quest of the Avatar라는 게임은 그러한 필자의 게임관을 송두리채 뒤엎어버리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때까지 접했던 단순한 ‘게임’과는 달리 뭘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뭔가 때려부수는 장면 또한 나오지 않았으며 그래픽 또한 단조롭기 짝이 없었기에(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는 후일 깨닫게 됐지만) 그야말로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분은 곧 경이로움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영어실력이 거의 전무했다고 봐야 할 그 당시(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오로지 잡지의 공략본(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부실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아주 약간의 기반지식은 얻을 수 있었다.)에 의지해서 플레이를 해가면서 각 키보드에 할당된 커맨드가 어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계단을 내려가는 명령이 할당된 키보드가 D(escend)라는 사실을 발견한 친구의 전화를 일요일 아침에 받고 기뻐서 그 친구 집으로 달려갔을 심정을 생각해보라) 게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게 돼고 동료를 하나 하나 발견해나가면서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단서를 모아나간다. 처음엔 그야말로 알 수 없었던 게임이 그때까지 해봤던 게임들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으로서 다가오기 시작한 순간 필자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의식 자체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작품은 필자가 플레이해본 가장 위대한 게임으로 남아있다. 이만하면 필자가 이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됐으리라 여기니 각설하고 이제부터 이 게임이 어째서 위대한 작품인지에 대해 논해보기로 한다.

   Ultima 시리즈란?

우선 간단히 Ultima란 어떤 작품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이 시리즈는 Richard Garriot이라는 인물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1979년 APPLE II PC를 이용해서 AKALABETH라는 간단한 환타지 RPG 형태의 습작을 만들었으며 이를 토대로 해서 그 다음 해에 최초의 2D Field형 RPG 게임인 Ultima 1을 개발했다. 그 뒤로 II와 III가 뒤이어져 발매됐는데 III에서는 시리즈 최초의 파티제도가 도입됐고 마법을 다변화하는 등 기존의 I,II에 비해 매우 탄탄한 구성을 보여줌으로써 후일 나오게 되는 IV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지만 특별히 이렇다 할만한 수준은 아닌, 여기까지의 Ultima 시리즈는 그야말로 습작에 불과했다. 진정한 Ultima의 위대함은 바로 이 Ultima IV : Quest of the Avatar로부터 시작된다.

Ultima시리즈의 세계는 Britannia대륙이라는 가상의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Ultima IV에서의 브리타니아 대륙은 과거 사악한 마법사 Mondain, Mondain의 제자 Minax, 대지의 뱀 Exodus라는 세 차례에 걸친 거대한 위협을 다른 세계에서 나타난 용사(즉 Ultima I,II,III에서의 플레이어)의 출현에 의해 격퇴하고 Richard Garriot이 자신의 분신으로 삼은 Lord British라는 강력한 왕에 의해 과거 소규모 도시국가가 난립해있던 세계가 하나로 통일됐으며 지금은 8개의 주요 도시에서 각각 고유의 미덕과 특화된 직업을 발전시키고있으며 미덕들을 3진리로서 정립시키는 등 문물양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있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Lord British는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다시금 이세계의 인물, 즉 플레이어인 당신을 소환해왔으며 당신은 8가지의 미덕을 완성시키고 Great Stygian Abyss라는 거대한 지하미궁 속에 잠들어있다는 궁극의 지혜의 성전(Codex of Ultimate Wisdom)을 찾아내 당신 자신의 인격적 완성을 이뤄야 한다. 즉 당신의 목적은 그러한 이상적인 인간의 완성형, Avatar가 되는 것이며 이 작품의 부제인 Quest of the Avatar 또한 그러한 ‘Avatar가 되기 위한 수행’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이다.

   Ultima IV의 윤리성과 사회성

이상에서 알 수 있지만 이 게임은 그 목적조차 다른 게임들의 상궤에서 벗어나있다. 심지어 기존의 Ultima시리즈에서조차 플레이어는 세상을 구하는 용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었지 이러한 플레이어 자신의 궁극적인 인격적 완성을 목표로 하는 작품은 존재치 않았다. 물론 Ultima III에서 최종적으로 대지의 뱀 Exodus를 격퇴하는 일은 단순한 전투가 아닌 퍼즐풀이를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본작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리처드 개리옷 – 로드 브리티쉬는 초로 기존의 게임들의 상념에 벗어나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고찰을 게임상에 도입할 의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러한 의도는 본 작품에서 최초로 빛을 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특유의 철학성은 작품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캐릭터를 통해 행하는 행동에 도덕성(Morality)을 부여하게 된다. 게임의 결말은 8가지 미덕의 완성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게임 내에서의 행동에 따라 이러한 부분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전투에서 도망을 가거나 비호전적인 생물에게 선공을 가하는 행위, 거짓말을 하거나 교만하거나 눈먼 약초상인에게 약초의 제값을 지불하지 않거나 하는 행위 등을 저지르면 악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겸손하거나 정직한 대답을 하고 치료소에서 헌혈을 하거나 거지에게 적선을 하면 좋은 영향을 받는다. 물론 어떤 행동을 하든지 플레이어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지만 그에 따른 인과응보가 철저하다. 이러한 윤리성으로 인해 플레이어는 언제나 자신의 캐릭터의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된다.

캐릭터메이킹 또한 독특하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도입부에서 집시의 마차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한 집시 여인으로부터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그 질문 속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가치관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고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 도시가 결정된다. 기존의 TRPG식 주사위굴리기의 캐릭터메이킹에서 벗어난 이러한 캐릭터메이킹은 도입부에서 작품의 세계와 윤리관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그러한 윤리성과 함께 특기할만한 부분은 인물들의 사회성이다. 오늘날의 MMORPG에서는 일반적인 것이 됐지만 당시의 비디오게임에서 그러한 사회성을 구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NPC들은 여타의 RPG처럼 순순히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마을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직업, 외관 등의 일상적인 잡담을 통해 단서를 얻어내서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물론 그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지니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플레이어의 노력에 의해 알아내야 했던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MMORPG들이 추구하는 사회성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던 작품이 바로 이 Ultima IV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차기작인 Ultima V에서는 밤과 낮의 존재가 생기고 그 시간대에 따라 실제 자신의 작업장과 집 사이를 오가는 마을사람들의 생활상을 묘사함으로써 더욱 수준높은 사회성을 띄게 되기도 한다.

   Ultima IV의 세계관과 시스템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환타지물로서의 Ultima 시리즈다. 전의 3작은 이 작품에 비하면 그야말로 습작에 불과한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따라서 스토리나 세계관 또한 명확하게 체계화돼있지는 않았다. 그러한 세계관이 최초로 정립된 작품이 바로 본작이며 이후 Avatar는 시리즈의 주인공으로서 이 세계에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떠있고 그 두 개의 달의 모양에 따라 Moongate라는 세계의 각지를 연결해주는 문이 열린다. Exodus의 격퇴 이후 세계에는 대 지각변동이 일어났고 이후 Ultima시리즈에 등장하는 Britannia 대륙의 지형이 정립된다. 8개의 도시에서 추구하는 각각의 미덕과 직업이 보여주는 생활상은 무대의 세계관을 한층 빛내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고대 영국의 지명들에서 따온 도시명들과 Druid의 존재는 켈트의 신비스러움이 느껴지게 한다. 각각 다른 효능을 지닌 8가지 마법의 시약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고 이 약초의 조합을 통해 제조한 조합물을 이용해 마법을 캐스팅함으로써 환타지라는 세계감을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시스템적인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특히 이 마법시스템은 V에서 고대 켈트인들의 Rune문자를 이용한 주문 조합의 요소를 더함으로써 더욱 깊은 완성도를 보이게 된다.

사실 Ultima IV의 시스템 자체는 몇가지 요소를 제외하고는 III까지의 시스템을 집대성하고 거기에 약간의 보완을 가했을 뿐이지 어떤 획기적인 발전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 자체만을 놓고 보면 다음 작품인 V에서 놀라운 발전과 완성도를 보여주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Ultima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반열에 IV를 올려두고있으며 차기작인 V는 그 다음으로 놓는다. IV의 시스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IV에서 보여주는 시스템이 시리즈의 세계관의 정립에 직결돼있고 이후의 시리즈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대화시스템이다. 전작까지는 단순히 말을 걸면 일방적으로 몇마디의 정보를 전달받았던 것에 비해 전술했듯이 이 작품의 대화시스템은 상당히 복잡한 편이며 처음에는 뭘 해야할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대화의 요령을 터득해감에 따라 작품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게임은 물론 오늘날의 게임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플레이감각을 선사한다. 역시 전술한 마법시스템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후로 8가지 마법시약의 존재는 Ultima시리즈의 마법의 상징처럼 돼버렸으며 가장 대표적인 MMORPG로 꼽히는 Ultima On-Line에서까지 그 영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비단 마법시약뿐만이 아니더라도 기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작이 이후의 시리즈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끝으로

Ultima IV가 발매된 것은 1985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이미 18년이나 되는 세월이 흐른 지금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게임계에 있어서 이 작품은 이미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사용자 편의적인 인터페이스가 발달한 시대는 아니었고 지금 와서 플레이하기에는 불편한 면이 적지 않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얼핏 보면 단순한 고전게임에 대한 향수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측면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의 게임이라면 이 작품이 오늘날의 PC용RPG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이 작품에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은 많은 새롭고도 놀라운 시도가 들어있으며 특히 그 스토리는 정말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도입은 이 글 내에서도 몇번인가 언급했지만 특히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후속작인 Ultima V : Warriors of Destiny의 발매와 더불어 극한의 완성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Ultima 시리즈는 오늘날에도 영원한 RPG의 바이블로 남아있게 된다.

aniki: 울티마 만세!! 만세!!  [02/17-05:59]

12월 152002
 
   간단한 작품 소개

여름이 끝나갈 무렵, 주인공 카시와기 코이치(柏木耕一)는 별거하고있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해 최소한 49제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시골에 내려가있게 된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주인공의 아버지의 손에 의해 자란, 즉 주인공의 사촌에 해당하는 4자매가 지내고 있었다. 한편 주인공은 카시와기 가의 저택에 오고 나서 밤마다 이상한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꿈속에서 파괴와 살육의 충동을 느끼며 점차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기 시작하는 주인공. 그리고 때를 같이 해서 일어나기 시작한 연쇄살인 및 실종사건. 어린 시절에 남은 상처자욱 – 키즈아토 – 으로 인해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4명의 자매, 그리고 카시와기 가의 사람들이 부여받은 운명이란…

   비주얼 노벨

이 작품은 Leaf가 零(しずく)를 내놓은 이후 LVNS(Leaf Visual Novel Series)의 두 번째로서 1996년 7월 26일에 내놓았던 작품이다. 우선 비주얼 노벨이라는 장르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도록 한다. 초창기의 비디오게임 중에는 텍스트 어드벤처가 있다. 그래픽이나 효과음 같은 것은 일절 존재치 않으며 모든 것은 텍스트에 의한 설명으로 진행되고 플레이어는 키워드의 입력을 통해 게임을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텍스트 어드벤처에서 발전한 것이 여기에 애니메이션으로 움직이는 그래픽과 다양한 음악을 넣은 것이 Sierra사나 Lucasarts사의 작품들로 대표되는 그래픽 어드벤처들이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일본의 츈소프트에서는 제절초와 카마이타치의 밤으로 유명한 사운드노벨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발매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히 새로운 장르라고 하기에는 앞서 서술한 텍스트어드벤처에서 플레이어가 시나리오에 개입할 요소 혹은 번거로움을 최소화하고 약간의 이펙트를 첨가한 것에 불과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감각과 어린 시절에 읽었던 게임북을 통해 즐기는 감각의 분기 선택 등은 쉽게 플레이할 수 있으면서도 기존의 게임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형태의 재미를 선사했기에 나름대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운드노벨이라는 장르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고 소수의 매니어들 사이에서만 알려지게 된다. 위의 두 작품이 발매된 플랫폼이 주로 대중성을 지향했던 수퍼패미컴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 뒤로 이 장르의 신작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PC용 18금 게임 제작사였으며 당시로서는 일반 유저들에게 거의 알려져있지 않던 Leaf사는 이 새로운 장르에 주목하고 기존의 사운드노벨에 비해 보다 시각적인 부분 – 배경 삽화, 캐릭터 설정 등 – 에 중점을 둔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의 게임을 내놓게 된다. 이 비주얼 노벨의 첫 작품이었던 시즈쿠는 그래픽은 굉장히 열악한 편이었지만 그 충격적인 시나리오 전개와 특유의 황폐한 분위기, 그리고 뛰어난 BGM 등으로 인해 ‘독전파’라는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며 소수이지만 상당히 열렬한 지지층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환경이 가정용 게임기에 비해 상당히 매니악한 유저가 주를 이루는 PC게임시장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Leaf에서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여기에 적는 키즈아토라는 작품이다. Leaf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메이저 제작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투하트와 화이트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인한 것이지만 그 저변에는 이 키즈아토라는 작품이 지닌 탄탄한 완성도를 통해 사용자들 사이에 은근하게 알려진 인지도가 결정적인 역활을 해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작품이 나올 시기만 해도 Leaf는 아직 영세적인 마이너 제작사였기에 그래픽 자체는 전편인 시즈쿠와 크게 다름 없이 굉장히 열악한 편이었지만 그 완성도는 전편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러한 노벨 계열 게임 사상 최고의 명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투하트 이후에 후발주자로서 비주얼노벨 시리즈를 내놓았던 Key의 일련의 작품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왔던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음이 역력하게 보이는 F.O.G사의 쿠온노키즈나 같은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를 떠올려보면 이 작품이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게 된다.

   키즈아토

Elf의 동급생 시리즈 이후 이 계열의 게임들은 대체적으로 멀티히로인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히로인을 공략한다는 점, 혹은 여러 차례의 반복 플레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 이상의 의미는 지니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그러한 멀티 히로인 시스템 자체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며 너무나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시나리오 구성에 있어서 뛰어난 부분이 바로 이 점에 있다. 히로인 4인에게는 각각 다른 전개가 준비돼있고 거기에는 각각의 배드엔드와 해피엔드가 존재한다 – 이 자체로는 다른 게임들과 차별점을 둘 수 없다. 그러나 이 4인의 시나리오에는 각각 다른 캐릭터의 시나리오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얽혀있는 사실들이 등장하며 모든 히로인의 트루엔드를 본 이후 추가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이 게임의 한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보면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플레이어는 흩어져있는 퍼즐의 조각을 모두 맞춘 것과도 같은 극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다른 게임에서도 이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몇가지 예를 보자. F.O.G사의 쿠온노키즈나 같은 경우에는 3인의 히로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 히로인인 타카하라 마요가 시나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큰 나머지 다른 2인의 히로인을 공략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지경이다. Key의 Kanon 같은 경우는 이러한 유기적인 시나리오의 연계를 어느 정도 시도하고있긴 하지만 역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Key의 Air에서는 쿠온노키즈나와 마찬가지로 주 히로인 카미오 미스즈의 비중이 너무나 커서 게임의 중반 이후로는 다른 두 히로인의 존재 의의가 무색해진다. Topcat의 ‘끝없이 푸른 이 하늘 아래서'(통칭 靑空-아오조라)의 경우는 이러한 시나리오의 횡적인 연결 자체는 상당히 밀접하게 이루어지고있긴 하지만 정작 시나리오의 극적 긴장감 자체가 떨어져서 플레이어에게 몰입도를 제공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러한 예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시나리오의 밀접한 횡적인 연결과 극적인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며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이 키즈아토의 시나리오 구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다른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배경이 되는 계절이 가을인만큼 작품의 곳곳에서 전작인 시즈쿠의 황폐함과는 또 다른 황량한 느낌이 물씬 베어나온다. 여기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술한 속된 말로 ‘구린’ 그래픽도 한 몫을 하고 있으며 배경음악 또한 그런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하고있다. 특유의 황량함 속에서 이야기는 윤회전생물과 오컬트와 SF와 바이올런스적인 분위기가 얽혀있는 독특한 분위기로 흘러가고 이러한 분위기는 전술한 시나리오 구성과 맞물려 플레이어에게 다른 게임에서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이 작품의 음악은 소위 리프3인방 – 시모카와 나오야, 나카가미 카즈히데, 이시카와 신야 – 라는 사람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이후 화이트앨범까지 LVNS의 음악을 담당하면서(물론 이후의 작품들에 손을 안 댄 것은 아니지만 3인이 함께 작업을 한 것은 화이트앨범까지. 참고로 전작 시즈쿠에는 Key의 음악 담당인 오리토 신지도 참여하고 있다.) 이 계열에서는 보기 드물게 – 오히려 웬만한 메이저 게임 제작사의 작품들의 퀄리티를 훨씬 능가하는 – 뛰어난 퀄리티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야기의 분위기 고조에 시각적, 청각적인 효과를 함께 요구하는 이 장르의 게임에 있어서 이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맺으며

이 작품 이후로 Leaf의 작품들은 상당히 밝은 이야기를 그리는 쪽으로 노선을 바꿨지만 Leaf의 제작진들은 여전히 이 작품에 대해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올해(2002년) 10월에 Leaf에서는 그래픽을 일신한 이 작품의 리뉴얼판을 내놓았으며 실패작이긴 하지만 과거의 분위기로 회귀를 시도했던 타소가레와 같은 작품을 내놓은 일도 있다. 그만큼 키즈아토는 많은 의미를 지니는 작품인 것이다.  마지막에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의 그 복잡미묘한 기분은 글로 표현할 성격의 것이 아니며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임을 단언하며 이만 마치도록 한다.

8월 212002
 
기종 : 드림캐스트
발매원 : 세가
발매일 : 초회한정판 2001년 3월 29일, 통상판 2001년 5월 31일

“세가에 의한, 세가를 위한, 세가의 게임”

서기 2025년, 게임업계는 날로 혼미해지고 있었으며 세가는 그 속에서 아직도 게임업계 제패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세가 사내의 수퍼컴퓨터 ‘테라 드라이브'(*1)에 의해 선택된 한 소년에게 세가의 모든 미래를 거는 초 극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 이름은 프로젝트 세가가가! 테라드라이브에 의해 선택받은 소년은 지금부터 프로젝트 세가가가를 이끌어가며 스태프들을 끌어 모아 게임을 개발하고 자금을 유지해가면서 세가의 업계 점유율을 끌어 올려야한다. 당신은 과연 세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상이 세가가가의 도입부 줄거리이다. 컴퓨터에 의해 선택받은 평범한 소년이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한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유치하고 현실성 없는 줄거리이다. 게임업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가정용 게임기 사업부문에서 세가의 행보를 아는 사람이라면 어이없기까지 한 설정이다. 현실적으로 게임업계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세가는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회사이다. 그 퀄리티는 물론이고 게임들 전반에 걸쳐 깔려있는 특유의 마인드만 해도 ‘세가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멋진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가에게 감사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그래서 세가 팬들 사이에서는 세가에 대해 일종의 종교적인 숭배의 경향마저 보이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가의 경영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업계에서의 지명도와 그에 걸맞은 뛰어난 제작실력을 지녔음에도 언제나 가정용게임기 업계에서는 2인자의 자리에 머물렀던 세가. 그리고 무리하게 업계의 톱에 서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거듭하다가 결국 경영부진에 빠져 새턴을, 그리고 드림캐스트를 포기해야 했던 아픈 과거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은 그러한 ‘현실’이 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다. 세가팬들이면 한 번쯤 꿈꿔봤을,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인정받는 그날. 세가가가는 그러한 ‘꿈’의 대리만족을 위해 나온, 그야말로 세가에 의한 세가를 위한 세가의 게임인 것이다.

게임 개발 시뮬레이션과 패러디, 그리고 세가팬들에 대한 팬서비스

아마도 이 작품은 사상 최초의 ‘게임 개발 시뮬레이션’게임이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의 주인공 세가 타로(*2)가 되어 역시 프로젝트 세가가가에 뽑힌 소녀 하네다 야요이(*3)와 비서 알리사(*4)의 도움을 받아 세가를 경영해나간다. 게임은 어드벤처 파트와 게임 개발 파트와 RPG 파트로 나뉘며 RPG파트에서 시나리오를 풀어나가면서 전투를 벌여 크리에이터들을 포섭하고 그렇게 포섭한 크리에이터들을 게임 개발 파트에서 일하게 해서 게임을 개발한다. 크리에이터의 포섭에는 설득 작업이 필요하며 제한된 시간 내에 주어진 질문에 대답해서 상대를 만족시켜야 아군으로 끌어들여 제작진에 참여시킬 수 있다. 즉 이 게임에서의 전투는 물리적인 싸움이 아닌 주인공의 정열로 의욕을 상실한 크리에이터를 일깨워서 게임을 만들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게임 개발시에는 현재의 예산과 스태프들의 급료 및 체력, 그리고 발매일과 돌발사태 등에 신경 써가면서 최고의 퀄리티를 내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게임이 발매되면 그것으로 다음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획득할 수 있고 그럼에 따라서 세가의 업계에서의 점유율이 오르게 된다. 단순히 이 게임들이 세가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참신하면서도 탄탄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이 또한 ‘세가 게임 다운’ 면모를 보여주고있다. 또한 그렇게 완성된 게임은 그동안 마크3, 메가드라이브, 새턴 등을 통해 실제로 발매된 바 있는 세가의 작품들이며 어떤 스태프를 기용했는지에 따라 발매되는 게임 또한 달라지게 된다. 이러한 게임 컬렉팅의 요소를 통해 올드 세가팬들에 대한 충실한 팬서비스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이 훌륭하다.

다음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패러디의 요소를 살펴보자. 조금 매니악한 소재가 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에는 곳곳에 기존 세가게임 내지 게임업계에 대한 패러디가 등장한다. 게임상에 등장하는 히토마지리(人交) 사장은 세가의 전임 사장이었던 이리마지리(入交)의 비슷한 모양의 한자를 이용한 장난이다. 마리오에 대항하기 위한 구 세가의 마스코트 캐릭터였지만 결국 마리오를 이기진 못했고 소닉의 등장 이후 사라져간 알렉스키드는 게임상에 등장하는 게임샵의 점장으로 일하고있다. 각 개발실에는 세가의 실제 유명 스태프를 패러디한 인물들이 보인다. 특히 B개발실은 세가의 AM2연구소와 스즈키 유를 패러디하고 있으며 스즈키 유의 드림캐스트용 무협 어드벤처 쉔무의 패러디는 상당히 유쾌하다.  A개발실의 특정한 적을 잡으면 익히게 되는 기술 중 UFO와 FIRE FIRE라는 게 있는데 UFO를 사용하면 세가의 크레인게임기의 대명사인 UFO캐처의 크레인이 나타나서 적을 교섭단계 없이 바로 개발진으로 집어넣어 버리며 FIRE FIRE를 사용하면 갑자기 적에게 무수한 수의 Lock-on 타깃이 나타나더니 애프터버너에 등장하는 전투기인 F-14XX가 날아와서 거기에 모두 미사일을 때려넣고 어마어마한 대미지를 입힌다(*5). 패러디와는 조금 관계 없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업계의 점유율을 올려나감에 따라 아키하바라에 나갈 때 붙어있는 간판이 라이벌인 도그마의 간판에서 점차 세가의 간판으로 바뀌어 나가는 모습도 즐겁다.

(아래 단락부터 결정적인 내용 유출 있음.)

무엇보다 그러한 패러디뿐만 아니라 이 게임의 주요 고객층인 세가팬들에 대한 팬서비스의 정점에 달하는 것은 숨겨진 9화 ‘그리고 전설로’이다. 악의 게임업체 도그마를 쓰러뜨린 세가 타로, 그러나 지구는 이미 위기에 처해 있고 주인공은 빨리 세가 본사로 돌아가서 우주로 나가야 하지만 시간이 없다. 그러나 이때 등장하는 소닉, 그는 눈부신 속도로 세가 타로를 세가 본사로 데려다 준다. 거기서 R 720(*6)에 300엔을 넣고 우주로 출격하지만 이를 가로막는 우주의 괴물들. 그리고 이때, 걸어가는 아리사 뒤로 두 명의 남자가 따르면서 대책을 토론하고있다. 그리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결의를 하더니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자 나오는 모습은 환타지스타의 주인공이었던 알리사와 그 동료 루츠와 타이론과 먀우였던 것이다 – 여담이지만 필자는 이 장면에서 뒤의 두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설마!?’ 했다가 맞아떨어지자 감격에 어찌할줄을 몰랐다 – 그리고 여기서부터 세가 게임들의 히어로들 – 소닉, 팬저드래군, 겟베스, 배틀매니아, 다이너마이트 데카, 알렉스키드, 네이, 뮤, 파르 등등 – 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을 도와 적에게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때 흐르는 BGM은 쉔무의 메인테마. 그리고 우주로 나가면 갑자기 슈팅모드가 전개되더니 적 보스는 놀랍게도 역대의 세가가 개발했던 게임 머신들이다. SG-1000, FM음원 장착판 세가마크3, 메가드라이브 + 메가시디,+ 32X, 새턴의 순서대로 나타나 싸우게 된다. 이를 클리어나고 나면 진 엔딩이 펼쳐지게 된다. 이 9화의 일련의 연출들은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 진행되며 그러한 연출과 거기에 사용된 소재들은 세가팬들에 기막힌 감동을 선사한다. 이 9화야말로 이 게임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결집돼있는 백미인 것이다.

이 게임이 갖는 아쉬움과 의의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매우 깔끔하고 쉽게 전개된다. 게임의 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이라서 처음 하더라도 무난하게 적응해서 손쉽게 쉐어 100%를 달성할 수 있으며 RPG파트에서의 레벨업도 쉽게 쉽게 전개돼서 전투에서의 어려움도 그다지 없다. 무엇보다 줄거리 진행을 중시하는 본편(혼자서 세가가가)을 상당히 쉽게 해두고 본격적으로 게임 개발만을 추구하는 끝없이 세가가가모드(*7)를 따로 둠으로써 플레이어를 배려하고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아쉬움이라면 게임 개발 모드에서의 인터페이스 부분을 들 수 있다. 플레이어는 3개의 개발실에서 최대 21명까지의 스탭의 컨디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데 이들 중 어느 누군가에게 문제가 발생했는지가 일목요연하게 보이지 않는다. 일일이 찾아서 관리해주는 단계에서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결국 대충대충 떼우거나 아이템발로 밀어붙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보다는 게임 자체의 난이도를 조금 올리면서 일목요연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설계함으로써 보다 전략적인 운영을 유도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게임에는 세가 팬들, 그리고 세가 개발진들의 오랜 애환이 녹아 들어있다. 그런 측면에서 세가의 올드게임들을 플레이해온 사람이라면 이 게임은 필히 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가가 스스로 만든 동인게임이 지니는 성격으로 인해 비 세가팬들에게 있어서는 접하기 힘들다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있긴 하지만 꼭 세가의 올드팬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으로 간략화된 구조이긴 하지만 ‘게임 개발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서도 플레이해볼 가치는 있다. 세가 제작진의 자조적인 한숨과 세가팬들의 꿈이 뒤섞여 나온 결과물이며 동인게임의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시에 게임 개발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가치 또한 동시에 지니는 유니크하면서도 너무나 세가다운 게임, 그것이 바로 이 세가가가라는 작품이 아닐까.

*1 테라 드라이브 : 세가의 삽질 하드웨어 시리즈의 하나. 메가 드라이브와 286 PC를 일체화시켜서 게임기와 PC로서 동시에 활용 가능케 한다는 컨셉트를 지니고 나왔으나 비싼 가격과 386이 일반화된 시점에 나온 286머신이기에 실효성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 기체.
*2 세가 타로 : 말 그대로 세가 회사명에서 따온 것
*3 하네다 야요이(羽田弥生) : 세가의 본사 빌딩은 도쿄의 오오타 구(大田区) 하네다 잇쵸메(羽田一丁目)에 있다.
*4 알리사 : 세가의 명작 RPG 시리즈 환타지스타의 제일 첫 편에 등장하던 주인공. 현 체제의 이상을 감지하고 진실을 알아내려다 죽어간 오빠를 대신해 전사 타이론과 마법사 루츠와 고양이처럼 생긴 신비의  생명체 먀우의 도움을 얻어 알골태양계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5 세가의 명작 슈팅게임 After Burner의 패러디. 의사 3차원 그래픽 공간에서 플레이어는 F-14XX라는 전투기를 타고 도그파이트를 펼치게 되며 적 전투기를 타게팅해서 로크온하게 되면 ‘Fire Fire’라는 보이스메시지가 나온다.
*6 R-720 : 세가의 360도회전 체감머신이었던 R-360의 패러디. 이 R-360이라는 것은 이 기체의 모델명을 말하는 것이지 게임 자체의 타이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G-LOC은 이 R-360을 통해 유명해진 대표적인 타이틀이다.
*7 혼자서 세가가가(ひとりでセガガガ)와 끝없이 세가가가(とことんセガガガ) : 컴파일사의 유명한 퍼즐게임 뿌요뿌요에서 나오던 혼자서 뿌요뿌요(ひとりでぷよぷよ)와 끝없이 뿌요뿌요(とことんぷよぷよ)모드를 패러디한 것

3월 152002
 
  휴대용 콘솔로 나오는 게임들이란 보통은 사용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제작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작사 또한 보통 사용자들에게 친숙한 컨셉트를 기반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과거에 유명했던 게임의 리메이크, 외전 형식의 게임이 많은 것은 그런 연유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식을 깨고 간단하면서도 참신한 구성으로 플레이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 게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여기에 적는 역전재판이라는 게임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게임은 놀랍게도 ‘법정물’이라는 소재를 게임에 채택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인 변호사 나루호도 류이치가 되어 그와 초등학교 동창이며 라이벌인 천재검사 미츠루기 레이지, 그리고 그의 스승인 카르마를 상대로 그가 맡은 사건의 피고들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법정이라는 소재 자체가 무척이나 딱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게임도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여기기 쉽지만 일단 게임을 시작해보면 곳곳에 나오는 말장난과 개그로 인해 그러한 딱딱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주인공의 이름이 나루호도 류이치이다. 나루호도란 일어로 ‘과연’ ‘역시나’ 라는 뜻. 나루호도의 친구인 야하리는 ‘사건이 있는 곳에 역시(얏파리) 야하리’ 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4장에 나오는 최종보스(?)격에 해당하는 검사의 성은 카르마. 사실 카리스마라고 지어야하지 않았을까 싶을만큼 카리스마가 격렬하게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게임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져있다. 첫째로는 수사 파트가 있다. 여기서는 어드벤처게임 형식으로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재판에서 사용할 증거들을 모은다. 사실 이 부분은 조금 진부한 면이 있고 막히면 지루하게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게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재판 파트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러한 지겨움은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게 된다. 재판은 하나 하나가 그야말로 한 편의 열혈 드라마이자 서로 츳코미(*)를 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만담 대결이기도 하다. 단순한 몇 장 안 되는 컷을 사용해 연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의 있음’으로 증인의 증언에 끼어들어 재판의 흐름을 바꿀 때의 느낌이나 증거물을 제출하면서 ‘쿠라에!(먹어랏!)’라고 외치는(왜 증거물 제시하는데 그런 대사를 외치는지는 생각하지 말자.)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통쾌함을 느끼게 해주며 결국 최종적으로 재판의 결과를 뒤엎는(그래서 역전이다.) 그 때의 카타르시스는 이 게임을 해보고서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게임의 리얼리티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필자가 법조계 관련 지식은 전무한 편이기 때문에 이 게임에서 그런 법적 고증이 철저한지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다. 그저 주변인의 말에 의하면 그리 제대로 된 고증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게임상에서도 ‘무슨 법 몇조 몇항’ 운운하는 대사는 일절 나오지 않는다. 그저 논리적인 추리와 그에 대한 반박이 있을 뿐이라서 어떻게 보면 법정물이라기보다는 추리물에 가까운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공 나루호도 류이치와 라이벌인 젊은 천재검사 미츠루기 레이지의 대결구도, 그리고 동인적인 시각에서 볼 때의 그들의 야릇한 관계, 앞서도 말한 그런 재판에 승소하는 과정에서의 카타르시스, 이러한 요소 하나 하나가 이 게임의 매력을 살리고 있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그런 딱딱한 법적 고증은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 필자는 캡컴이라는 회사를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 그저 아직도 2D게임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제작사 내지 바이오해저드 류의 액션어드벤처 울궈먹기나 하는 회사라고만 생각했던 캡컴이 그래도 수많은 게임회사가 경영부진에 빠져있는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연간매출액 수위권을 달리는 회사로 남아있는 비결은 이런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을 지니고있었다는 점이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츳코미(突っ込み) : 일어로 ‘찔러넣기’라는 뜻, 만담에서 보케(ぼけ)를 상대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역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