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062007
 

Wizardry IV : Return of Werdna
일반적으로 PC용 RPG의 양대산맥으로 꼽는 시리즈가 Ultima 시리즈와 Wizardry 시리즈이다. 울티마 시리즈가 탑뷰방식의 2D맵 RPG의 원조라면 위저드리 시리즈는 1인칭 시점 RPG의 원조다. 현존하는 모든 PC 내지 콘솔용 RPG는 울티마나 위저드리 둘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의 영향에 있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오늘날의 1인칭 시점 게임들처럼 픽셀단위로 세세하게 움직이는 묘사는 당시에는 불가능했기에 초기의 위저드리는 1 cell씩 전후로 이동하면서 동서남북의 4방향으로 회전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위저드리 시리즈의 네 번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몇 가지 특이점을 지닌다. 첫째로 주인공의 존재다. 이 작품의 전편이라든지 당시의 서양 RPG들이 캐릭터메이킹을 통해 플레이어의 고유한 캐릭터를 만들게 하던 것에 반해 이 작품에는 주인공이 정해져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정의의 히어로가 아닌 1편에서 Trebor가 보낸 모험자들에게 무너진 사악한 대마법사 Werdna라는 점이다. (여담이지만 Werdna는 Andrew C. Greenberg, Trebor는 Robert Woodhead의 이름을 뒤집은 것이다. 초기의 위저드리 시리즈의 개발자들이다.) 전편에서 무너진 이 마법사는 이번 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게임은 그가 지하 미궁의 가장 깊은 곳(지하 10층)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 번째 특이점은 몬스터 파티 시스템이다. 이 작품에서 Werdna는 최대 3종의 몬스터를 자신의 파티원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전투를 돕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미궁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점차 강한 몬스터를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된다. 다만 몬스터인 만큼 어떤 감정이입이나 성장을 시킬 여지는 없으며 도중에 몬스터가 죽으면 미궁의 각 층마다 존재하는 Pentagram을 통해 보충하면 될 뿐인 철저하게 소모품적인 존재다.

세 번째 특징은 이 게임에는 경험치 축적을 통한 레벨업이라는 개념이 존재치 않는다는 점이다. 전편에서 악의 대마법사였던 Werdna는 도주의 과정에서 힘을 잃어 극도로 쇠약해져있고 최초에는 약한 체력과 초보적인 마법을 지닐 뿐이다. 이를 몬스터의 도움을 얻어 미궁의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각 층에 존재하는 Pentagram에 접촉할 때마다 상위 레벨의 스펠과 몬스터를 얻을 수 있게 될 뿐이다. 물론 다음 층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Pentagram을 찾기까지의 험난함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인공이 악의 존재에 경험치라는 개념이 없고 파티원 대신 몬스터를 끌고다닌다는 점은 개념들은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드물지 않게 됐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통념을 크게 일탈한 개념들이었다. 이러한 실험성들이 후일 다른 RPG들에 영향을 끼친 바가 크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금에 와서도 뇌리에 남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극악한 난이도에 있다.

이 작품은 어렵다. 너무도 어려워서 필자조차도 어린 시절 얼마 가지 못해 포기한 기억이 있을 정도다. 오토매핑 같은 개념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나온 3D 던전 RPG라는 점은 이 작품이 어려운 이유에 끼지도 못한다. 극악의 전투 난이도, 점차로 복잡해지는 미궁의 퍼즐구조, 곳곳에 깔린 함정들, 다음 층으로 올라가 더 강한 적들을 만나고 새로운 펜타그램을 발견할 때까지의 위험천만한 행보 등등. 게다가 경험치가 존재치 않기에 레벨업도 정해져있어서 무한한 레벨업을 통해 플레이어를 강화시켜서 클리어한다는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개발자의 플레이어에 대한 도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최초로 접한 Wizardry 시리즈가 바로 이 4편이었고 덕분에 아직도 위저드리 시리즈와는 그다지 친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여러 특징적인 요소들과 그 요소들이 후세에 끼친 영향들을 생각해본다면 이 작품이 게임사에서 지닌 가치에 대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덧. 여담이지만 첨부한 타이틀화면의 스샷에 있는 4명의 인물은 전작(Wizardry 1)에서 설정상 Werdna를 무찌른 파티다. 파티명은 Softalk All-stars. 참고로 좌측에서 두 번째의 닌자의 이름이 Hawkwind, 이 작품의 실질적인 최종보스이자 그만 따로 떨어져 행동하고 그가 빠진 파티의 이름에는 less one이 붙는다. 나름 양키센스(…)  Softalk란 80년대 미국 게임잡지 이름이고 파티원의 명칭도 그 편집자들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8월 302005
 
Starcraft
제작사 : Blizzard Entertainment                발매일 : 1998년 4월

1. 개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게임이기에 더 논할 필요도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게임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을 꼽으라면 바로 이 스타크래프트일 것이다. 한국 게임시장에서 역대 최고의 판매량으로 대변되는 이 작품은 게임적으로 보나 그 의의로 보나 아직도 고찰해봐야 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스타크래프트가 갖는 의의와 이를 통해 국내 게임에서 아직도 부족한 측면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도록 한다.

2. 시장에서 지니는 의의

그렇다면 스타크래프트가 한국 시장에 미친 영향에는 어떤 게 있는지 잘 알려진 사실들이 위주가 되겠지만 하나하나 되짚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 작품이 발매됐을 당시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이 발매된 1998년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판매량은 그다지 폭발적이진 않았다. 발매 전부터 매니아들로부터 높은 주목도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1998년 내내 약 12만 카피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으니 PC용 패키지게임의 일반적인 판매량을 고려해보면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998년에 한국에는 IMF라는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고 많은 직장인들이 정리해고를 당했으며 자영업자들 또한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유력하게 떠오른 새로운 업종이 바로 PC방이었는데 아직 고속 인터넷보다는 전화선을 이용한 56k 모뎀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시절, 모뎀보다 훨씬 빠른 인터넷 환경을 고사양의 PC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모뎀을 통해 네트워크 플레이를 즐기던 일부 게임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초창기의 PC방은 그러한 게임 매니아들의 모임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PC방의 수가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 PC방의 입장에서나 일반적인 사용자의 입장에서나 함께 모여서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당시 PC방에서 활성화된 게임이 리니지 등의 초창기의 MMORPG와 더불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플레이어들 간에 ‘대전’ 내지 ‘팀플레이’가 가능하며 20분 전후의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끝마칠 수 있는 게임이었다. PC방 초기에는 그렇게 몇 가지 게임이 경합을 이루는 분위기였지만 대세는 순식간에 스타크래프트가 평정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치솟았고 PC방을 개업하는 업주는 PC의 대수에 맞춰 스타크래프트의 정품을 구입해야 했으며 이는 스타크래프트 판매량의 엄청난 증가를 불러왔다. 이렇게 일어난 스타크래프트의 붐은 다시금 PC방의 창업을 유도했고 PC방 창업은 다시금 스타크래프트 판매로 이어졌다. 98년 12만개에 그쳤던 판매량은 99년에 100만 카피 이상의 한국 게임계 사상 최초의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불러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개인 사용자들 또한 집에서 네트워크 플레이를 쾌적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고속 인터넷을 설치하기를 원하게 되고 이는 한국에서 고속 인터넷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유례 없이 빠르게 보급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 한국의 게임시장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아류작이 범람하게 된다. 임진록, 아트록스, 쥬라기원시전, 킹덤 언더 파이어 등의 광고문구에서도 ‘스타크래프트보다 XX한’, ‘스타크래프트만큼 YY한’ 등을 내세우며 실시간 전략게임(이하 RTS)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 어느 것도 스타크래프트의 아성을 뒤엎지 못하고 단순히 인기 있는 작품의 아류만으로는 시장에서 먹히기 힘들다는 전례들을 남기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어쨌든 게임 개발에 있어서는 몇몇 선구자적인 업체들이 있긴 했어도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벤처 붐과 함께 이만큼의 게임 개발 업체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번 탄성을 받기 시작한 게임회사 창업의 붐은 계속 이어져서 당시에 생겨난 업체들이 지금도 국내 게임업체들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일어난 스타크래프트 붐도 2002년 무렵에는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PC방의 거품도 꺼져가서 경쟁력이 없는 업소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아갔으며 2000년 이후에도 매년 4~50만개의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던 스타크래프트의 판매량도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를 전후해서 다시금 스타크래프트의 붐을 불러 일으킨 것이 프로게이머, 바로 e-sports의 출범이다. 당시 Game-Q와 같은 인터넷 VOD를 통해 고수들 간의 대회를 중계하는 업체들이 하나 둘 생겨났는데 이 방송이 예상 이상의 높은 반응을 얻어냈으며 여기에 주목한 온게임넷 등의 유선방송에서도 스타크래프트의 방송경기를 본격적으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임요환과 같은 스타급 게이머가 탄생하고 이는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하여 스타크래프트의 판매량은 400만 카피에 육박했고 아직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플레이하고 있으며 게임방송 또한 다수의 프로게이머들이 각각 프로게임팀에 소속돼서 팀간의 리그전을 펼치는 수준까지 활성화돼있다. 이는 해외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국에서만 독자적으로 발전한 특이한 케이스이며 하나의 게임이 바둑이나 장기와도 같은 국민적인 유희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기도 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하나로 인해 PC방이라는 새로운 업종의 창출, e-sports의 탄생과 활성화, 고속 인터넷의 보급, 게임 산업의 성장 등 IT업계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셈이니 실로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게임으로서의 의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스타크래프트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지만 그러한 영향력이 거저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스타크래프트의 무엇이 이토록 대중적이면서도 장기간에 걸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인지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로는 뛰어난 기획력을 들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에는 프로토스, 저그, 테란이라는 3개종족이 등장한다. 고도의 정신문명을 지닌 프로토스, 놀라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번식력, 그리고 투쟁본능을 지닌 저그, 개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의 힘과 과학문명을 이용해 이를 극복해온 인간종족인 테란이라는 3개종족의 설정은 마치 SF버전의 삼국지를 보는 것처럼 플레이어에게 흥미로운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거기에 단순히 시나리오적인 설정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게임에 등장하는 유닛이나 건물 하나 하나에 부여한 특성이 이러한 종족의 특성들을 잘 나타내고 있기에 플레이어에게 자신이 플레이하는 종족에 대한 이입감을 부여한다.

  둘째로는 시나리오다. 게임의 시나리오의 중요성이야 말할 나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스타크래프트의 시나리오 전개는 게임 역사상 탑클래스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구성을 보인다. 각종 배신과 모략이 판치는 속에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싸우는 외계 종족들의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권력 투쟁에나 연연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사족이지만 국내 게임에서 아직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지닌 작품이 나온 사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과거에 나온 패키지 게임에 시나리오가 없던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일본이나 미국 게임의 아류에 불과했고 그렇게 체계적으로 짜인 오리지널리티 있는 시나리오를 도입한 예는 없다. 이러한 부분은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노하우가 있어야만 가능한 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게임사들은 짧은 역사 속에서 노하우가 쌓이기도 전에 패키지 시장이 침체돼버리는 바람에 온라인이 대세가 된 지금도 시나리오 부재의 단순 레벨 노가다만을 반복하는 게임들을 만들고 있다가 이제야 액션이나 스포츠게임 등 (고도의 시나리오성을 요하지는 않는)장르의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니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봐야 한다.

  셋째로는 장인정신을 들 수 있다. 언젠가 스타크래프트의 초기 개발 스크린샷이란 것이 웹에서 돈 일이 있는데 당시의 그래픽을 보면 지금의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악한 퀄리티를 보여준다. 그랬던 것이 발매일을 수 차례 연기하면서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퀄리티 상승을 꾀했고 덕분에 발매한지 8년이 된 지금에 와서도 스타크래프트의 그래픽은 그다지 촌스러워 보이지 않고 약간의 발매연기를 통해 초 장기간에 걸친 생명력을 얻게 된 셈이다. 게다가 사실 스타크래프트가 게임으로서 완벽한 작품성을 지녔다고 보긴 힘들다고 하더라도 꾸준한 패치를 통해 가급적 이상에 가까운 밸런싱을 맞추고자 노력했고 이 노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충분한 결실을 맺고 있다. 부실한 퀄리티의 게임을 억지로 발매한 후 약간의 버그패치만 하고 나면 게임을 나 몰라라 내팽개치던 국내의 패키지게임 업체들과는 크나큰 차이를 보여준다.

  이렇듯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의 저변에는 이 작품 자체가 지닌 근본적인 뛰어난 작품성과 제작사의 투철한 장인정신이 있었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도 명작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홍보의 힘이나 겉보기의 화려함 만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성과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이 사실이 오늘날의 개발자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7월 312005
 
Culdcept 2nd Expansion
제작사 : 오미야 소프트        발매일 : 2002년 9월 26일        플랫폼 : Playstation 2

  컬드셉트란 1997년에 세가새턴으로 발매된 트레이딩 카드게임(이하 TCG)과 보드게임을 융합한 형태의 독특한 게임 시스템으로 일부 게임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게임이다. 이후 1999년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이식판이 발매된 바 있으며 2001년에 드림캐스트판 후속편인 컬드셉트 세컨드가 발매됐고 2002년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이식판인 컬드셉트 세컨드 익스팬션이 발매됐다.

  컬드셉트의 특징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무엇보다도 TCG와 보드게임의 융합이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모은 카드에서 50장을 선택해 ‘북’을 구성해서 게임에 임하게 되며 게임이 시작되면 매 턴마다 자신의 북에서 카드를 뽑아 스펠을 사용하거나 땅에 크리처를 배치해 자신의 영지로 만들거나 크리처간의 전투에서 아이템을 사용해 크리처를 강화할 수 있다. 모든 카드의 사용에는 마력이 필요하며 맵을 일주하거나 특정 스펠을 사용하거나 자신의 영지에 상대방이 멈추고 자신의 영지를 상대방이 빼앗는 데에 실패하면 마력을 얻을 수 있다. 영지에는 마력을 투자해 레벨업을 할 수 있고 고레벨의 영지는 더욱 많은 마력을 빼앗을 수 있다. 반면 크리처간의 전투에 패배해서 영지를 빼앗기면 그만큼 큰 페널티를 입게 된다는 리스크도 항상 존재한다.

  이 룰들이 실로 미묘하다. 매 턴마다 사용할 수 있는 스펠과 크리처와 아이템 카드는 각각 한 장으로 제한돼있으며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크리처를 배치할 것인가, 혹은 크리처를 배치하지 않음으로써 마나를 절약하거나 손에 든 크리처를 다른 지역에 배치할 것을 노릴 것인가. 스펠을 상대에게 써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더 스펠을 유효하게 활용할 것을 노릴 건가. 보드게임처럼 주사위가 나오는 눈만큼 이동하게 되지만 여기서도 맵에 각종 시설물이 있다든지 갈림길이 있다든지 해서 단순히 운만이 아닌 플레이어의 선택, 즉 실력에 따라 게임 진행이 호전될 수도 있는 여지를 만들어둔다. 굳이 게임이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는 시드 마이어가 한 말이 아니더라도 이렇듯 플레이어는 계속해서 다음의 행동을 선택해야 하며 이를 통해 계속적인 긴장과 흥미를 얻게 된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는 카드를 컬렉팅하는 즐거움. 모든 카드에는 TCG처럼 희귀도에 따라 Rare, Special, Common의 등급이 정해져있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성적에 따라 새로운 카드를 받게 된다. 이 카드를 하나 하나 채워나가게 됨에 따라 플레이어는 카드 컬렉팅을 완성하는 성취감을 얻게 된다. 둘째로는 컬렉팅한 카드를 이용해 자신만의 북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북은 총 50장으로 한정돼있으며 이를 얼마나 잘 구성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린다. 지나치게 강한 카드만을 넣다가는 마력부족으로 초반에 말리게 되는 건 일반적인 TCG와 다를 바가 없다. 마찬가지로 약한 카드만으로는 상대와의 결정적인 한 판 승부를 벌일 수 없다. 적당한 조화를 통해 확률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상대에게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구성한 북을 운영해서 직접적으로 대전을 펼치게 되는 과정의 즐거움이다. 플레이어는 아무리 강한 카드들이 잘 조합된 북을 들고있어도 미숙한 운영으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카드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됨으로써 상대와의 싸움을 보다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해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이 게임이 지닌 최대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측면 모두 플레이어의 숙달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있어서 플레이어는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즉 플레이어가 노력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구조가 명확하게 이루어져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재미있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대중적인 작품은 아니다. 우선 TCG라는 장르부터가 근본적으로 광범위한 플레이어들에게 호소력을 갖는 작품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으며 게임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점, 초심자가 상급자에게 이기기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는 점 등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그렇게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판매량 또한 폭발적인 편은 아니어서 각 기종별로 시리즈가 발매될 때마다 5만카피 전후의 판매량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게임은 보드게임의 콘솔게임화 내지 온라인화에 있어서의 하나의 전범(典範)을 제시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다인수 대전에서 보다 다양한 전략 전술을 짜낼 것을 유도함으로써 플레이어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제시한다. 이 작품이 소위 우정파괴 게임이라고 불리는 배경에는 그러한 부분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 작품이 완벽하게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존에도 Magic : the Gathering으로 대표되는 TCG는 얼마든지 있었으며 보드게임의 역사 또한 그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오래됐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장르를 이렇듯 뛰어나게 융합해냈다는 사실은 하늘 아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진리에 비추어볼 때 기존의 장르의 계승발전을 통한 하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우리는 이 작품의 독특한 게임성이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5월 192005
 

Copyright Innocent Grey/gungnir All Rights Reserved.

발매원 : Innocent Grey
발매일 : 2005년 4월 28일
장르 : 일본풍 사이코 미스테리 어드벤처
가격 : 세금포함 9240엔

줄거리 – 시대는 2차대전 종전 후 약 5년, 주인공 타카시로 슈고는 과거에 형사였으나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방식에 환멸을 느끼고 경찰을 그만둔 전력을 지녔으며 현재는 유곽에 얹혀 살고 있는 신세다. 그런 그에게 과거의 상사였던 아리시마 카즈마는 종종 경찰이 관여하기 곤란한 사건의 의뢰를 하고 슈고는 이를 해결하는 일종의 탐정에 가까운 일을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형편이다. 그런 어느날 슈고는 실종된 인물의 수색을 맡게 된다. 실종된 인물은 코즈키 유라라는 여성이었다. 유라의 쌍둥이 여동생 카즈나가 언니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아버지인 케이이치로에게 언니를 찾아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그래서 케이이치로는 사건을 의뢰하게 된 것이었지만 정작 케이이치로는 슈고에게 유라는 이미 죽었으니 수사는 형식적으로만 진행해서 카즈나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때를 같이 해서 우에노공원 일대에서는 연속적인 시체 토막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실종된 인물을 수색하되 찾아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의뢰와 연쇄 살인사건, 이 두 가지 기묘한 사건의 진상이란 과연..

  18금게임이라는 장르는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묘사를 비교적 자유로이 보여줄 수 있다. 덕분에 18금게임은 보통 성적인 묘사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만 그에 못지 않게 18금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을 지닌 장르가 바로 미스테리물이다. 18금 미스테리물은 다른 매체의 일반적인 미스테리 장르나 다른 전연령 대상 게임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독특한 장르(SF, 환타지, 오컬트 등)를 택하는 데에 대한 부담이 덜하고 미스테리물의 분위기에 직결되는 조금 잔혹한 내용의 묘사도 가능하며 게임 특유의 몰입감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추구해나가는 감각을 공유하기가 용이하다는 점 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카르타그라라는 작품은 그러한 18금 미스테리물이라는 장르만이 취할 수 있는 장점들을 제법 잘 살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권장하기는 힘든 적당하게 하드고어한 연출, 1950년을 전후한 일본이라는 시대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설정 등은 물론이고 원화나 음악 등의 기본적인 요소도 충실하다. 무엇보다도 각본이 탄탄하다. 완급을 조절해주면서 긴 내용에 플레이어가 질리지 않게 해주는 전개가 훌륭하다. 클라이맥스의 긴장감과 반전도 그럭저럭 합격점. 이런 류의 게임에서 배드엔딩의 경우에는 보통 그냥 피칠갑하고 죽는 식의 전개가 많은데 거기서 좀 벗어나서 제법 섬뜩하게 연출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칭찬할만 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우선 메인 시나리오에 묻혀 별 의미없이 등장했다 흘러가버리는 캐릭터들이 조금 있다는 점. 최근의 대세에 맞추는 것도 좋지만 조금 시대상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들이 종종 보인다는 점. 18금게임으로서 씬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겠지만 조금 의미없이 18금씬으로 유도되는 장면이 있다는 점 등등. 그래도 옥에 티 수준으로 봐줄만한 정도라 그렇게 개의치만 않는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이 계통 게임에서 간만에 즐겁게 플레이한 미스테리물. 그렇게 글을 길게 쓸만한 게임은 아닌 관계로 간단히 쓰고 여기서 줄인다. 플레이시간도 아주 긴 편은 아니니(10여시간) 일어가 가능하신 분에게는 추천할만한 작품.

덧. 제목은 적당히 번역한 것. 더 좋은 번역 있으면 언제든지 태클 환영.

덧 2.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캐릭터라면 주인공의 여동생 타카시로 나나. 좀 작위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이런 류의 게임에선 보기 드문 멋진 여성캐릭터. 아오키 토지보다는 이쪽이 취향이었음. 일반적인 미스테리물이라면 명탐정이 돼야 할 주인공을 왓슨역으로 밀어내고 자신이 홈즈가 돼버린다.

11월 162004
 
./files/attach/images/74660/574/081/7c6c5306ae8df049d58a123ae82ac7f6.jpg
제작사 : Alice Soft
발매일 : 2004/8/27
가격 : 8925엔

  일본의 유서 깊은 18금게임 제작업체 Alice Soft의 간판 시리즈인 란스시리즈가 번외편격인 귀축왕 란스와 소품격인 란스 5D를 거쳐 오래간만에 시리즈의 정통 후속편에 걸맞는 대작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우선 란스 하면 영토 쟁탈형 턴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의 귀축왕 란스를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이다. 5D는 논외로 쳐야겠지만 시리즈의 번외편이면서도 방대한 스케일과 수많은 이벤트, 그리고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던 귀축왕 란스의 이미지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귀축왕 란스는 어디까지나 시리즈의 번외편이고 말하자면 패럴렐 월드의 이야기 같은 성격을 지니는 작품이다. 반면 본 작품은 3D던전형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으며 시리즈의 정통을 잇는  RPG임을 유념하고 플레이해야 한다. 따라서 귀축왕 란스와 같은 영토 쟁탈형 시뮬레이션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미 기존의 Alice의 작품에 대악사나 대번장과 같은 훌륭한 귀축왕 란스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 존재하기에 이를 대체품으로 삼을 수도 있고 그와는 별도로 본작 또한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본작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템포를 매우 편안하게 배려한다. 시나리오는 크게 레지스탕스의 아지트와 3D던전 파트로 나뉘어져 전개되며 아지트에서는 캐릭터들에 각종 이벤트를 볼 수 있고 임무를 부여받는다. 3D던전파트에서는 부여받은 임무에 따라 목적지에 가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그와는 관계없이 이벤트 전개를 위한 맵 탐사를 벌일 수 있다. 하나의 임무 수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30분~1시간,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보통 1시간을 넘지 않는다. 던전에서는 원하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으며 3D던전 하면 길을 못찾아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실 분들을 위한 오토매핑 시스템이 있기에 마음 편하게 던전 탐사를 즐길 수 있다. 또한 맵별로 오토매핑시스템을 이용해 맵을 얼마나 완성했는지에 따라 보상을 줌으로써 Alice게임 특유의 보람 있는 노가다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전투에서의 긴장감은 항상 늦춰지지 않는다. Alice 게임의 시스템에 익숙한 플레이어라면 잘 아는 사실이지만 각 캐릭터별로 지극히 신경을 써가며 육성을 해야만 균형 잡힌 성장이 이루어지게 되지만 그렇게 성장시킨 캐릭터는 전투에서 들인 노력과 캐릭터의 개성에 걸맞는 활약을 펼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노력에 따른 보상구조를 안겨준다.  여기에 대악사에서부터 나온 행동력의 개념을 도입함에 따라 몇몇 강한 캐릭터에 집중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폐단도 해소하고 그리하여 플레이어는 자기만의 전투 파티 조합의 노하우를 익히게 되고 전투의 난이도가 결코 낮다고는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가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돌파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이 훌륭하다.

  엔딩까지 가는 길도 그다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 18금게임의 특성상 시간이 얼마 없는 성인들이 플레이하게 되기 마련이고 이런 사정상 전술한 템포의 조절은 플레이어 입장에서 정말로 고마운 노릇이다. 시간날 때마다 틈틈이 플레이하면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덧 엔딩에 근접해있다. 실제로 필자는 워낙에 바쁜 스케줄로 인해 이 게임을 입수한 뒤 엔딩까지 가는데 무려 3개월이라는 기간을 들였다. 그동안 다른 게임을 전혀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생각날 때 간간히 플레이하면서도 템포를 잃지 않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근래의 콘솔용 RPG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드문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무서운 사실은 엔딩을 보고 나서부터가 이 게임의 진정한 시작이라는 점이다. Alice게임 특유의 이벤트 노가다의 특성상 중간에 못보고 지나치게 되는 이벤트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기존의 Alice 게임들은 엔딩을 수 차례 반복해서 보는 플레이를 유발하는 시스템을 채용해왔지만 이는 플레이어에게 자칫하면 짜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특히 이런 길게 이어지는 일관된 시나리오를 지닌 게임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부분에 대한 배려인지 엔딩 이후에는 본편에서 보지 못하고 넘어간 이벤트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거기에 본편에 등장하지 않았던 보너스 요소를 – 특수한 대전, 추가 미션 등 – 을 한가득 집어넣음으로써 엔딩을 보고 나서도 플레이어는 이 즐거운 시스템을 한참동안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시나리오 구성 자체는 이렇다 말할 것이 없는 평이한 구조다. 주인공 란스는 마법국가 제스에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차별받는 2급시민들을 대변하는 레지스탕스 조직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란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통한 저돌적인 밀어붙이기에 힘입어 한때 국가 붕괴의 위기까지 가지만 결국 국민들의 단합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결과가 좋으면 모두 좋다는 식의 뻔히 예측할 수 있는 결말이다. 여기에 란스시리즈 전통의 캐릭터들 – 리자스, 헤르만, 제스 각 국가의 주요인물들, 마족, 자유도시의 동료들 – 의 수많은 자잘한 시나리오들이 펼쳐진다. 란스도 오랜 기간에 걸쳐 이어져온 시리즈이다 보니 주인공 란스와 시일을 비롯한 여러 익숙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일종의 캐릭터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나리오 전개에 약간 억지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란스나 정벌의 미트 같은 어딘가 일그러진 캐릭터들을 살린다는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어울리는 전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RPG란 장르는 기근에 가깝다. 제작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잘 만들기는 힘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구조를 감수할 수 있는 자본적으로 탄탄한 제작사가 아니면 만들기 힘든 장르가 돼가고 있기 때문에 영세한 제작사에서는 어지간해서는 잘 손대지 않게 돼버린 것이다. 또한 기존의 메이저 제작사들의 RPG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기분 좋게 플레이할 수 있는 일본식 RPG가 오히려 18금업계에서 나와줬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미성년자나 이런 장르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선뜻 권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남성향 18금이라는 장르를 이해하고 일본식 RPG를 즐기는 플레이어라면 필히 한 번쯤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